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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기술은 디자인과 사진이다. 몸을 쓰는 일도 하고 있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 두 가지다. 사진은 디자인에 비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카메라를 정교하게 다루거나 사진을 섬세하게 보정하는 기술은 모른다. 미러리스 카메라로 최대한 많이 찍고 열심히 고르고 약간의 보정만 한다. 과정에 전문성이 없긴 한데 내가 디자인할 때 고를 정도로 퀄리티를 고민하니 결과물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녹색당에서 일할 때 이 루틴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https://www.behance.net/gallery/146165425/2017-2019-Photographs-Green-Party-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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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에 입사하면 동료들과 일대일 면담 같은 것을 하는데 조직팀 동료는 화이트보드에 '조직' 두 글자를 크게 적고 그 중요성을 설파했다. 정당은 사람 모으는 게 정말 중요한 곳이구나.. 홍보팀이었던 나는 조직적 홍보를 고민하며 디자인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녹색당에서는 디자인만큼 사진 찍을 일이 많았다. 주로 행사 스냅으로 인물사진을 찍었는데, 조직적 관점으로 보면 디자인보다는 사진이 더 효과적이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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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으로 한다는 게 뭘까. 내가 한 무엇으로 사람들이 더 잘 모여야 한다. 왔던 사람이 다시 오게 만들고, 안 와본 사람은 오고 싶게 만들기. 그런 목적을 고려하면 디자인보다는 사진이 더 써먹기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어디를 갔는데 내 사진을 엄청 잘 찍어주네? 또 가야지. 여긴 분위기가 좋아 보이네? 나도 가야지. 이런 상상을 했다. 대신 그냥 사진이 아닌 정말 잘 찍은 사진. 최대한 자연스러운. 사람의 얼굴이 잡힌다면 그 표정에 한치의 어색함이 없는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순간을 잡는 사진에는 미묘한 표정이 담긴다. 눈이 살짝 덜 떠졌거나 입꼬리가 약간 돌아갔거나 얼굴 각도가 애매하거나.. 좋은 구도로 선명하게 찍은 사진이라도 어딘가 어색할 수 있다. 행사 때 사진 촬영을 거부하는 이유는 초상권도 있겠지만 이상한 나를 마주하기 싫어서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찍은 사람들이 나인 게 어색한 사진을 만나지 않도록 열심히 찍고 골랐다. 컷수는 많아졌지만 그만큼 건지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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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다 보면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진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참여하길 바래서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준다고 해도 카메라가 나를 향하면 긴장되고 불편하다. 그래서 비교적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에 준망원렌즈를 끼고 최대한 멀찍이 서서 조용히 사진을 찍는다. 주목받는 것을 피하고픈 마음도 있다. 사진 찍히는 사람이 나를 의식하면 괜히 당황하고 안 찍는 척을 하게 된다. (혹시 내가 자신을 찍고 있다고 느낀다면 모른척해주길 부탁하고 싶다.) 가장 큰 이슈는 단체사진이다. 모두가 나를 보고. 사진을 찍으세요. 사진을 찍겠습니다. 하는 상황은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한다. 보통 하나 둘 셋 하고 사진을 찍고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는데 나는 하나, 둘 할 때부터 계속 셔터를 누른다. 하나 둘 셋을 한 번만 하고 싶고 그럼에도 좋은 사진을 건지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