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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디자인FM _ 시즌 1

박이랑, 김도은, 이연정&이하림, 정소영, 정희연&강수영, 맛깔손

by 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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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안중에도 없던 단어가 확 다가올 때가 있었다. 디자인을 하면서 '기획'이란 단어가 그랬고, 녹색당에 와서는 '조직'이란 단어가 그랬다. '조직'하면 회사를 생각할 수 있지만, 녹색당에서 고민한 것은 커뮤니티에 가까웠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커뮤니티는 어떻게 가능할까. 녹색당은 정치적 지향이 같거나, 평등문화가 좋거나, 나에게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이지만 그런 것에 실망해 떠나기도 하는 그런 조직이었다. 책 리뷰에 이게 뭔 또라이 같은 소리인가 싶은데.. 아무튼 그래서 다른 커뮤니티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좋은 커뮤니티가 있으면 기웃기웃하면서 좀 참고하고 싶었다. 이 책은 내 기준에서 '좋은 커뮤니티'에 속하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작당했고, 책이라는 물성 있는 결과물까지 만들었다. 이 커뮤니티가 무엇인지, 어떤 작당을 한 것인지 궁금하면 아래 발췌한 내용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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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FDSC (Feminist Designer Social Club)

페미니스트 그래픽 디자이너가 더 활발히, 더 오래 활동하기 위해 정보를 나누고 서로를 돕는 온, 오프라인 커뮤니티. 2018년 7월 개설되어 현재 다양한 연차의 디자이너 12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디자인 적정 단가에 관한 토론을 열거나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개 채널을 운영하는 등 여성 디자이너가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수많은 여성 디자이너가 업계에서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뒤집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디자인FM」

FDSC에서 제작한 생활 밀착형 디자인 팟캐스트 2019년 2월, 8명의 방송국 팀이 출범하였고 2019년 6월 19일 1회 송출 시작, 8월 29일 6회를 끝으로 시즌1을 마무리하며 FDSC의 최초 외부 발신 콘텐츠가 되었다.

각 에피소드는 기존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스타 디자이너의 환상 서사에서 벗어나 직업인으로서 디자이너의 현실적 고민을 이야기한다. 현장에서 자신의 몫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여성 디자이너를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실무진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30

상대가 저를 신뢰하는 관계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나에게 이 일을 의뢰한 사람이, '아. 저 사람이 이 일을 굉장히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게 제 스킬인 것 같아요. - 이랑

40

저는 늘 보이지 않는 어떤 시각적인 바운더리, 허락되는 선을 넘는 걸 상상하면서 일을 하는데, 이게 우리가 즐겁게 해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랑

45

저의 나이와 연차에서 오는 성취감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꾸준히 궁금해하고 그 다음에 뭔가 시도하고 실패했던 것들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이제 원하는 작업을 조금 더 잘, 그러니까 원했던 방식으로 마지막까지 해내고 그게 결과물로 도출되는 경험이 예전보다는 많아졌거든요. 거기서 오는 성취감이 가장 큰 것 같고요. - 이랑

49

실질적으로 디자이너의 일이 일시적으로나마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보면 다른 업계를 들여다보는 경험들이잖아요? 그리고 다른 콘텐츠나 문맥들을 엿보는 작업이기 때문에 실제로 다른 분야로 넘어가기 굉장히 유리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도 매력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디자이너로서. - 이랑

100

자꾸 세부적으로 들어가다 보면 계속 상대방도 세부적으로 방어하게 되어서 결론이 잘 안 나와요. 그냥 어젠다를 하나 잡고 "이건 이래서 이러니까 이거 한번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상대방도 답을 하나만 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좀 더 정리가 잘 되더라고요. - 도은

145

어떤 공동체에서 너무 불안을 가지고 그거에 대해서 자꾸 이야기하고 그러면 분위기가 흐려지는? 같이 불안해지는 걸 많이 느껴서 좀 그런 건 경계하려고 해요. - 하림

154

좀 작업 스타일이 달라도 그걸 재밌게 설명하고 저희가 납득이 가면 좋더라고요. 저희가 생각해보지 못한 디자인을 들고 우리한테 막 던져줬을 때 그게 나쁘지 않게 여겨지고요. 원래는 디자인 스타일이나 이런 것들이 되게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연정

156

상대가 되어봐야 상대를 이해하고 잘할 수 있다는 건 커뮤니케이션에 자신이 없다는 말로 들리거든요. 상대가 되어보지 않고도 좀 유도를 잘할 수 있다거나, 아니면 이입을 해서 어떤 포인트를 끌어낸다거나 이런 게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부분이 아닌가.. - 연정

161

이사람 일 잘한다, 라고 감탄하게 되는 건 보통 커뮤니케이션 능력 때문이에요.

167

사실 저도 디자이너지만 디자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바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거를 막, '디자인만 바꾸면 우린 이제 어떻게 될 거야!' 이렇게까지 생각하시면 부담스러워서. 어, 이걸로 얻으시는 효과 그렇게 크지 않을거라고 최대한 먼저 실망시키고 싶어져요. - 하림

170

그러니까, 글이 좋으면 어째선지 디자인도 잘나오고 이 사람이 뭐라는지도 내가 확실히 알겠고, 더 잘해주고 싶고. - 소미

그래서 사실 글이 좋으면 이해를.. 디자이너가 이해를 더 잘하고 그게 결과물로 반영이 되는 건데, 그걸 생각보다 모르시는 분들이 좀 있더라고요. - 경희

186

디자이너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뭔가를 예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것보다는 나은 설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해결할 문제를 가져와주기만을 기다리면 그는 영원히 서비스하는 사람에 머물게 된다. 디자이너는 전략을 같이 결정하고, 이 문제가 정말 풀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회사에서 도움이 되는 결정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줄리줘는 강조했다.

187

저희는 완벽하게 수동적인 상태로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그 납작한 기분이 별로 좋지 않더라고요. 어쨌든 스튜디오를 이렇게 제가 살고 싶은 모양대로 만든 건 제가 행복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즐겁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문제도 제가 만들어내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들이 수반되면 더 즐거운 작업이 되는 것 같습니다. - 하림

271

디자인 가이드 같은 경우에는, 그게 어떤 지면이라고 해야 될까? 그 PDF나 웹페이지에 프리젠테이션되는 데서 끝나잖아요. 근데 디자인 시스템은 진짜로 그걸 사용할 수 있게 개발적으로도, 디자인 툴적으로도 컴포넌트들이 구성이 되어 있어요. - 희연

285

이 수평이 모두가 다 똑같은 발언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전통적인 조직 구조에는 위아래가 있잖아요. 여긴 위아래는 없지만 앞뒤는 있거든요. 앞에 가는 사람, 따라가는 사람. 그래서 자기가 실력으로 신뢰를 얻으면 앞으로 갈 수 있는 구조예요. - 수영

291

UI 디자인을 안 해보신 분이 UI 디자이너로 지원을 하시려면, UI 디자인을 해봐야겠죠? 제가 제일 추천해드리는 방법은 자기가 익숙하고 잘 쓰는 앱 있잖아요,, 그런 거 쓰시면서 분명히 불편한 지점이나 혹은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있을 거에요. 그걸 스스로 문제 정리를 해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을 한번 해보시는 것? 일종의 리디자인이죠. - 희연

292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는, 그래서 내가 올해 포폴 만드는 디자이너 중에서 이거 하나만은 A+. 1등 할 거야! 라고 해서 구성을 하면은, 그게 어디든 먹히게 되어 있을 거 같거든요. 그렇게 조언을 해주는 편이에요. 다 B면 안된다. 하나만 A+ - 수영

339

출근 시간 퇴근 시간을 굉장히 규칙적으로 지키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또 점심 먹는 거 저녁 먹는 거 이런 것도 레귤러하게, 잘 지키려고 하고 있거든요. 근데 이게 뭐 어떤 큰 목표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고 언제든지 큰일을 맡았을 때 제가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어야지 괴롭지 않게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많은 사람과. - 맛깔손

347

큰 규모의 일은 사실 굉장히 근성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단발적으로 뭐 2주, 3주 안에 작업이 나와서 바로 프레스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조율하는 게 굉장히 복잡하고 지리멸렬한 과정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잘 컨트롤하고 내부적으로도, 아니면 뭐 외부에 있는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때도. 그런 커뮤니케이션에 관해서도 많이, 네. 공부가 되었죠. 그래서 지금 제가 견적서 양식을 쓰고 어떤 일을 타진해봤을 때에 이걸 내가 할 수 있겠다와 없겠다, 역량을 파악하는 것도 사실 회사에서 했던 작업들에서 어떤 경험이 나와서, 결정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맛깔손

351

나를 통과하면, 내 필터를 통과하면 작업이 이렇게 나온다, 회사에서 그런 걸 훈련하기가 되게 좋거든요. 프로젝트는 게속 달라지지만 그 달라진 프로젝트 안에서도 '이게 나를 거쳤더니 이렇게 나왔다'라는 것을 내부적으로 사람들한테 꾸준하게 인식시켜줄 수 있고요. - 맛깔손

352

저한테 디자인은, 살면서 제일 신경 쓰이는 저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백화점에 가서 선물을 사는데 그 포장지가 더 신경 쓰이는 사람? 그냥 길거리를 지나다가 무슨 포스터가 붙었는데 그게 신경 쓰여서 계속 쳐다보게 되는. - 맛깔손

355

클라이언트의 제약이나 요구 사항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이 좋을 때도 있고, 그렇게 그 클라이언트를 설득해나가는 과정이 사실 재밌어서 하는 부분도 있거든요. 뭐 열 받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저는 어쨌든 그, 뭔가 이렇게 걸려 있는 게.. 마감 기한과 클라이언트가 저를 발전시켜주는 것 같아요. - 맛깔손

370

그래픽 디자인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다.

근력을 키워 강한 체력을 기르기 위한 저항훈련인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맛깔손 디자이너도 지난 5년간 디자인 에이전시를 경험한 후 꾸준한 실무를 통해 디자인 근육을 키웠다. 이런 지속적인 경험이 자신을 더 나은 디자이너이자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382

디자인FM은 뭔가를 실제로 한다는 것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새롭게 깨닫게 해준 프로젝트다. 각자가 제 몫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모르는 부분은 배우고 해야 할 일에는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것을 할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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