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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훈 Jul 09. 2023

첨단 포로노마노. 계승과 삭제의 사고

철학과 도시경영. 14

엑스포 과학공원, 미래 도시로서 이상을 담을 수 있었던 공간


EXPO 재창조 사업, 93 과학문화유산을 지우다. 2


만국 박람회,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 탁월한 조형과 건축 


엑스포(세계박람회)에서는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이 선보이고 뛰어난 작품이 경연한다. 탁월한 작품성을 보여주는 기념물이 박람회를 통해 특별히 고안하고 제작된다. 1889년 파리에서 개최한 만국 박람회는 130년 전에 폐막했지만, 그 기념물로 제작한 에펠탑이 주최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남아있다. 더욱이 국가와 글로벌 기업이 한 장소에서 경합하는 박람회장에서는 자국과 자사의 첨단 기술과 혁신을 선보이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래서 촉발된 창의적이고 급진적 아이디어가 건축과 시설에 반영되어 독창적인 공간이 연출된다.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 지구에는 미래 우주 도시같이 멋지고 상징적인 건축물이 가득찼다. 당시 인기 있었던 미래항공관, 우주탐험관, 자기부상열차관, 재생조형관, 전기에너지관, 테크노피아관등은 85년 츠쿠바 엑스포를 뛰어넘는 공학적 설계와 디자인 혁신을 이룬 작품들이었다. 93엑스포 이후 개봉된 우주 과학 영화 <콘택트(Contact)>와 <인터스텔라(Interstellar)>, <마션(The MARTIAN)>을 보아도 93년 대전에 설치한 과학 건축물 이상의 아이디어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 93엑스포 이후 개봉된 우주 과학 영화 <콘택트(Contact)>와 <인터스텔라(Interstellar)>, <마션(The MARTIAN)>을 보아도 93년 대전에 설치한 초현실적인 건축물 이상의 아이디어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영화, 인터스텔라, 사진 출처, www.hdwallpapers.net)




유네스코는 부여, 공주, 익산처럼 역사유적 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하지만, 브라질리아처럼 초기 모더니즘 건축물이 가득한 도시 전체를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한다. 더구나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등 선진국에서 이어온 세계박람회(EXPO)를 엑스포 역사상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개최됐다는 점에서 93대전 엑스포지구 자체가 문화역사적 가치가 큰 것이었다. 


그러나 대전시는 역세권 도시 10개를 만들 수 있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설계한 과학 유산을 ‘엑스포 재창조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대부분 철거했다. 과학도시를 외치지만 정작 살고있는 정주민도, 대전을 방문하는 외래인도 과학도시를 느낄만한 것이 그다지 없는데 말이다. 대전시가 지향하는 4차 산업혁명과 미래 도시로서 이상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은 무엇보다 엑포스 과학공원이었다. 

  

중앙 점령군의 엑스포 지구의 분할

 

당시로 돌아가 보자. 민선 6기 대전시 산하 ‘대전마케팅공사’는 시에서 결정한 사항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합법적인 행정으로 불용자산은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해도, 엑스포 과학공원 부지에 대한 분할이 문제였다. 59만 2494㎡, 대전의 가장 노른자위 땅을 여러 정부 기관이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있었다. 조선 말엽 주변 강대국이 한반도를 분할하고자 했던 것과 흡사한 꼴이었다. 

 

(아래 사진은 비 오는 날, 엑스포 타워 창문 안쪽에서 찍은 사진이라서 우울한 기분이 비친 것만 같다. 맹자(孟子)는 하늘의 때는 지리의 유리함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라고 했다. 전쟁을 지휘하는 병가에서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 지리 장소는 중요하다. 그런데 엑스포과학공원 재창조사업은 ‘과학’이라는 주제로 세계적인 엑스포 테마파크를 만들 수 있는 두 번 오지 않는 기회였다. 그러나 최고의 지리(地利) 장소는 과기정통부, 문체부, 신세계라는 상이한 점령군(?)에게 너절히 분활한 사업이 되어 버렸다. 단일 이벤트에 사상 최대급 투자를 하고, 세계 각국을 비롯한 1,450만 명이 찾은 93Expo 문화유산을 지워버리면서, 인류 도약의 길을 찾기 위해 첨단 과학문화가 경합을 벌였던 역사적 장소가 단조로워졌다. 대전시가 한 것은 엑스포 기념 잔존 구역에서 한빛탑을 남기고, 대전무역전시관을 국제컨벤션으로 늘려 지은 것뿐이었다) 



(기초과학원구원(IBS), 과기정통부는 IBS로 엑스포과학공원 중정을 차지했다. 물질의 시원과 생성, 변화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연구원이 옆에 대형 쇼핑몰이 있는 복합상업구역으로 들어올 것은 무엇인가? 중이온가속기가 있는 유성구 신동이나, 덕명동에 있는 한밭대학교 안쪽으로 들어갔다면 갔다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시너지는 커졌을 것이다) 


 

(스튜디오큐브 조감도와 측면 외벽 사진, 문체부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거대한 영화 촬영 박스인 스튜디오 큐브를 국립중앙과학관을 마주 보는 부지에 안치했다. 이것은 서울 명동 복판에 쿠팡 물류센터를 가져다 놓는 것과 같다)

  


(콘텐츠진흥원 스튜디오큐브 외벽 모습, 이런 폐쇄식 박스형 건물은 도심 한가운데 놓는 것이 아니다. 지역경제, 지역문화와 연계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지구 공간을 단절시킨다) 



(사이언스 콤플렉스. 신세계는 엑스포과학공원 부지의 5만1,614㎡ 부지에 쇼핑몰과 단조로운 43층 엑스포타워를 올려 중부권 상권을 가져갔다)



문체부는 거대한 영화 촬영 박스인 스튜디오 큐브(한국콘텐츠진흥원)를 국립중앙과학관을 마주 보는 부지에 안치했다. 과기정통부는 기초과학원구원(IBS)으로 공간 중정을 차지했다. 신세계는 설계변경을 통해 단조로운 43층 쇼핑몰(사이언스 콤플렉스)을 올려 중부권 상권을 가져갔다. 대전시가 하는 것은 한빛탑이 있는 엑스포 기념 잔존 구역에서 한빛탑을 남기고 대전무역전시관을 국제컨벤션으로 늘려 짓는 것뿐이었다. ‘과학’이라는 주제가 관통해야 할 역사적인 장소가 상이한 점령군(?)에 의해 너덜너덜해졌다. 

  

하나의 개념을 관통시킨 테마파크,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 

 

엑스포 지구 재창조 사업 핵심은 개념과 방향의 문제였다. 일례로 LA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영화를 테마로 첨단 기술을 담고 있는 영화테마공원이다. 문화 복합 파크인 도쿄 디즈니랜드는 면적이 509,904㎡로 엑스포재창조 구역 59만㎡의 약 9배다. 치바현은 이름은 도쿄에서 차용하고, 광대한 면적을 놀이동산으로 내어 준 것으로, 고용과 세수의 지역 경제를 지키고 있다. 


만약 대전시도 엑스포 지구의 주요 파빌리온을 과학도시의 상징으로 존치하고 투자를 일으켜 365일 사이언스 페스티벌이 열리는 첨단 과학공원으로 운영했다면 어땠을까. 또는 구역 전체를 국제과학공원지구로 지정하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광대형 엑스포 박물관으로 조성했더라면? 멀리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사례를 찾을 것 없이, 엑스포 공원은 차원 높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매 5년 마다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리는 지구촌에서 사라지지 않는 엑스포 비즈니스를 이끄는 사업이 되었을 것이다. 

  

(파리 디즈니랜드 리조트, 디즈니랜드 파크(Disneyland Park)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파크(Walt Disney Studios Park), 복합쇼핑몰인 디즈니 빌리지(Disney Village), 골프장인 골프 디즈니랜드(Golf Disneyland), 7곳의 디즈니 브랜드 호텔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에는 아울렛 La Vallée Village가 있다. 이처럼 한 지구를 하나의 주제로 관통시키려면, 베짱과 용기, 구상력이 필요하다. 출처,www.klook.com)



 광주시의 한 방송사 PD가 여수 해양 엑스포 이후의 유휴 시설 처리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서 말했다. 


"여수시는 엑스포 구역의 레이아웃(틀)을 유지하고 있어 고마운 느낌이다. 당시 사용했던 호텔과 싸이로와 전시장을 재활용하여 해양도시 여수의 지속성과 도시마케팅에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잘 활용하시기를 당부한다“ ”부산 해양 엑스포도 이후 활용을 생각하고 기획을 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대전은 엑스포의 당시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남기고, 엑스포 자체를 테마로 하는 세계적인 공원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한 지구를 하나의 테마로 관통시키면 이미지가 훨씬 강해진다. 선명한 이미지는 강한 도시브랜드가 된다. 그렇게 했더라면 지구촌에서 엑스포를 유치하려는 관계자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세계적인 테마파크가 되었을 것이다”

 

엑스포 과학공원은 첨단 건축의 포로노마노였다. 이것들은 100년이 넘으면 보물이 되고 1,000년으로 가면서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다. 나는 엑스포 재창조 사업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의 이사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기념비적인 건축을 철거하는 행정 절차를 진행하는 불편한 자리에 있었다. 한 시대의 과학 유산의 손실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다수결이라는 의사 결정에 무력해졌다. 


(Foro Romano, 이미치출처,Wikimedia Commons)



광역 경제, 광역 생활권을 추진한다는 중심도시 대전시의 공간 전략은 대담해야 한다. 지금의 도룡동 엑스포 지구처럼 잡다하게 섞어 놓지 말아야 한다. 옛 충남도청사도 마찬가지! 한 공간을 과학이면 과학, 문화면 문화, 상업이면 세계적인 수준으로 구상하는 담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 옛 도청을 평생교육기관으로 사용하면서, 국립미술품수장고를 유치하고도 창업자를 3D 프린트 창작센터까지 넣어 놓았다. 미있는 공간은 전체를 한 통으로 볼 수 있는 역량과 배짱이 있어야 한다. 기능은 복합(mix)시켜도 주제는 통일시켜야 한다. 지방정부와 시민은 때로는 자기 지분이라고 우기는 중앙 정부와도 맞서야 한다. 도시의 정치 행정의 안목은 100년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그 100년이 1,000년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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