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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훈 Jul 13. 2023

총독부와 비스마르크, 대전 근대 도시의 기원

철학과 도시 경영. 16

충남도청 대전 이전과 조선 총독부 


대전 근현대 공간의 원형, 모방을 넘어 창의로 가자.1 


 1931년 1월 13일, 이날 저녁 충청도 신흥도시 대전은 경성으로부터 날아온 `급보'에 축제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고다마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은 긴급회견을 열어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옮긴다고 전격 발표했다. “경부·호남 양 간선철도의 분기점으로 장래 경제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전 결정의 이유였다. (중략) 갈대 무성한 들녘이던 대전은 일약 중부권 중추도시로 떠올랐고, 조선시대 4대 도시 공주는 그 후 인구가 줄면서 퇴락하게 된다. 충청도의 근대화 방향을 가늠케한 도청 파동 배후에는 철도가 있었다. 경부선 통과로 형성된 한밭 촌락은 1913년 개통된 호남선의 시발점으로 행운을 잡으며 `철도가 낳은 반도의 기린아'로 변신한다. 일본인들은 용산과 함께 대전을 일본적 경관 특징이 가장 뚜렷한 계획 시가지로 키웠다. 대전역과 선화동 도청 사이 대로를 중심으로 원동, 중동 일대를 격자형 구도로 조성하고 근대식 금융 건물과 일본의 도시주택 `마치야'를 채워 넣었다. 철도의 요충지였던 터라 만주철도 지사와 철도 사원 주택단지 또한 포진했다. (발췌, 한겨레, 1.충청도, 노형석 기자, 2002.04.04.)



식민지시대, 대전의 원형은 비스마르크의 도시

 

일본 총독부는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일본의 도시설계를 이식했다. 대전의 옛 도심권인 삼성동, 원동, 인동, 신흥동, 정동, 대흥동, 선화동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나는 정동에서 중학교(중앙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삼성동과 원동, 인동 인근을 마실 다녔다. 성인이 되어서 계획도시 대전을 설계한 조선총독부(일본인)는 어떤 도시를 원형으로 인용했을까? 라는 의문을 생겼다. 

 

어느 날, 옛 충남도청사에 있는 '근현대사 전시관'에서 오래된 대전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산업화로 들어가는 옛 독일의 도시 구조였다. 어쩐지 독일의 도시들을 걸었을 때 느껴졌던 도심 구조가 대전에 비쳤다. 철도 역사를 중심으로 가도가 펼쳐지며, 그 가로변에 상가가 들어서고 극장 같은 문화시설이 들어온다. 역사 맞은편에는 관청을 들인다. 이것이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 대전의 도시 구조다. 이런 식의 도시 구조는 독일이나 일본의 근대 도시에서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당시 도시건설의 사조였던 방식, 철도를 놓아 석탄을 운송하고, 그 교통으로 병사와 대포를 나르고 병참을 설치했던 비스마르크식 산업도시가 대전에 들어선 것이다. 그것은 조선 시대 정조와 채제공, 정약용이 만든 계획도시인 수원 화성을 제외하고는 공주, 전주, 청주, 나주 같은 조선의 전통 도시에는 없었던 교통에 도시를 얹은 구조였다. 대전에도 회덕과 유성에 송촌동 같은 유생의 선비마을은 있었지만, 대전은 지역의 생리와 생산, 전망을 담은 신개념 도시였다. 

 

(계획도시 대전을 설계한 조선총독부는 어떤 도시를 원형으로 인용했을까? 그것은 산업화로 들어가는 옛 독일의 도시 구조였다. 어쩐지 독일 도시들을 걸었을 때 느껴졌던 도심 구조가 대전에 비쳤다. 철도 역사를 중심으로 가도가 펼쳐지며, 그 가로변에 상가가 들어서고 극장 같은 문화시설을 짓는다. 역사 맞은편에는 관청을 건립한다. 이것이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 대전의 도시 구조다. 당시 근대화로 들어가는 도시들의 사조였던, 철도를 놓고, 그 교통으로 석탄과 대포와 병사를 운송하고 병참을 설치했던 비스마르크식 산업도시가 대전에 들어선 것이다. 아래 사진은 대전 목척교는 1912년 대전주둔 일본수비대의 병기 수송을 위해서 가설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옛 도청에서 열린 ‘대전 근현대사전, 근대도시 100년’에서 전시물을 찍을 찍은 것, 2018) 




이후 한국은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곧이어 한국 전쟁을 치렀다. 3년 전쟁이 끝난 이후 전후 복구 과정에서 대전은 교통의 허브인 런던과 같이 도시를 재창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는다. 워털루역을 비롯해 허브 역을 몇 개나 품고 있는 런던처럼 명품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말한다. 그러나 관선 시장과 대전의 유지들도 도시 구조와 공간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부서진 건물을 헐고 새로운 시설을 지었지만, 식민지 시대의 도시 구도를 복원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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