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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훈 Jul 28. 2023

내 청춘의 도시, 홍콩은 도시경제학

세계 100개 도시, 뚜벅이의 필드워크, 7

홍콩 트램, 현 위치에서 종점으로

 

바이어와 상담을 마친 저녁, 현 위치인 홍콩의 중앙, 센트럴에서 트램에 올랐다.

홍콩처럼 트램 노선이 복잡하고 정차역이 많은 곳에서 좁은 핸드폰 화면의 지도 어플을 보면 피곤해진다. 대신 종이 지도를 이용한다. 어떤 방향이든 처음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아니면 노면을 따라 오는 트램에 타고 끝까지 갔다가 맞은 편으로 돌아온다. 도시관찰(town watching)에 이만큼 좋은 것도 없다. 만화경을 보듯. 영화 스크린을 보듯 창밖 세상을 살필 수 있다. 

 

느린 속도와 도시여행의 입체화


트램 좌석에 앉아, 천천히 달리는 속도를 따라 도시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시티투어가 된다. 노면을 주행하는 트램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손에 들고 있는 종이 지도에 가는 방향을 맞추어 본다. 지도 지면의 선과 표식이 트램 노선 표지와 일치하면서 3차원 도시가 2차원으로 전환된다. 지도 속 도면은 시야에서 입체화된다. 스마트폰 앱으로 보면 이 재미가 생기지 않는다. 종이 지도는 도시 전체를 담고 있는 여행 지도가 좋다. 이런 식으로 도상 연습과 지상 답사를 몇 차례 해보면, 위성지도인 Google Earth 없이도 도시 전체를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 

 

트램처럼 거북이 속도로 도시를 이동하면 시선을 끄는 시설과 지형이 있다. 오랫동안 생존했거나 최근에 탄생한 프랜차이즈, 사람이 몰리고 빠져나가는 동선, 상권분포와 도시마케팅 요소 ....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성된다. 






홍콩은 참으로 다양하고 대단히 복잡하다. 그래서 복잡계의 풍경이 몇 개, 몇 번의 지구 개발로 바뀌지 않는다. 홍콩에 남아있지만 고정된 것은 없다. 오래되고 새로운 것들이 교차하면서 도시의 나이테가 생긴다. 지상의 형태는 자유롭지만, 지면에 질서가 있다. 밀집 지역에 신축하는 건물, 재건축하는 빌딩, 방진포로 둘둘 말아놓은 채 공사 중인 건물이 보인다. 홍콩 같은 도시의 구도심권에 건축의 신규 발주는 쉽지 않다. 그래서 쓰던 건물을 재단장하여 수요를 만들어 내는 개발자의 솜씨가 뛰어나다. 

 

트램 이층에서 거리가 내려 본다. 홍콩계 디스카운트스토아 웰컴(Wellcome)마트가 보인다. 나는 홍콩을 대표하는 글로벌 유통체인인 웰컴, 파큰숍, 왓슨을 통해 이 거대 시장의 상품 구성과 입점 절차, 프로모션 전술을 배웠다. Wellcome의 빨간 바탕에 흰 글씨와 노란색 한자 표식, 많은 사람은 지나치고 어떤 이에게는 관심이 없을 테지만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터에게는 홍콩은 순례지였다. 이 간판만으로도 마음이 짠 해오는 시인 박인환의 벤치 같은 것이었다.

 

(홍콩, 트램 2층에서 내려다본 홍콩 외곽. 홍콩은 도시 자체가 글로벌시장의 창(Global Market‘s Window)이다. 이러한 고밀도를 지탱하면서도 국제 무역과 금융의 허브 지위를 잃지 않으려면, 도시 경영에 특별한 솜씨가 있어야 한다. 나의 주요한 거래시장이었던 이 도시는 세계시장에 진입하는 유통과 마케팅을 알려주었다) 




도심 골목에 노점이 줄이어져 있다. 도대체 이런 곳에 소방도로는 어떻게 확보하며 화재에 어떻게 불길을 잡을지 걱정이 들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화장품 유통체인이 사사(sasa)가 보인다. 사사는 홍콩 주요 거리를 장악한 화장품 프랜차이즈로서 보디숍, 이니스프리와 싸우며 중화권 유통을 장악하고 있다.

 

트램은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견실히 도심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노란 M, 맥도널드가 보인다. 중화권에서 맥도널드는 먹거리로 휴게 공간을 제공하는 임대업에 가깝다. 지친 사람들이 걷다가 햄버거로 식사를 때우고 다시 거리로 나서기 전에 쉬어 가는 공간이다. 회전율을 중시하는 모텔과 같은 업종. 은행들도 도심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중국은행, Standard Chartered(스탠다드차타드) 은행, HSBC... 한 거리에 다 들어있다. 이들은 한국인에게는 외국계 은행이지만 한국 경제에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고교 동기 몇 사람은 HSBC에서 근무했고 한 사람은 아직도 스탠다드차타드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

 

홍콩은 도시학의 참고서 같다. 트램은 거리의 풍경을 만화경처럼 바꾸어주었다. 서서히 펼쳐지는 경관은 도시가 일정한 패턴으로 연속된 것을 보여준다. 케빈린치(Kevin Lynch)가 말하는 도시이미지를 구성하는 통로(Path)와 가장자리(Edge)와 결절점(Node), 지표물(Landmark), 지구(District)가 블록처럼 이어지고, 겹치고 끊어졌다가 다시 연결된다. 



 


홍콩이 보여주는, 소상공인이 살 수 있는 복합상권


웰컴 마트가 다시 보였고, KFC는 건물 이층으로 올라갔고, 금·은 보석을 파는 프랜차이즈 ‘주대복’과 ‘주생생’ 사이에서 살아남은 ‘만복진보’가 보인다. 홍콩 시장에 상장한 주대복과 주생생은 격화된 경쟁으로 수익을 만들기에 어려워보인다. 홍콩 보석은 홍콩인이 사는 것 보다는 홍콩으로 오는 대륙인, 쇼핑 천국으로 몰려든 외국인, 어디든지 보석을 좋아하는 여성과 그 여자들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구매한다. 일등에 이등 브랜드들이 결합하면 사람은 몰리고 상권은 활기를 띤다. 노점상도, 영세상인도 이 생태계에 살 수가 있다. 그러나 이등 상권에는 일등은 들어오지는 않는다. 상권은 생태계와 같은 것, 영세상인이 사는 길은 복합상권이 되는 것이다. 

 

큰 녀석이 들어오면 다 죽는다고 하는데, 도시를 관찰한 결과 함께 사는 방법이 있다. 서울 영등포는 신세계, 롯데, 애경 백화점, 활인마트 다 있어도 지하상가, 식당, 술집, 골목 상점 장사가 잘된다. 센 자식?들이 오지 않았다면 초라한 슬럼이 되었을 것이다. 시장이 죽는 곳은 사람이 찾지 않는 지역이다. 상권이 무너지는 곳에서 개점을 하는 것은 망하는 길이다. 대기업도 영세상인과 함께 사는 생태계를 만들기에 노력해야 한다. 홍콩의 침사추이, 오사카의 난파를 살펴보면 대·중소 상생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대전트램 45개 역은 대전시를 재생할 좋은 기회


홍콩의 교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눈에 잡혔다. 노면의 차선 중심으로 트램이 지나가고 고가에는 버스들이 달린다.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하지는 않았겠지만, 인구증가와 상가 밀집으로 이런 식의 교통 질서를 만든 것 같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 교통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홍콩 도심의 출·퇴근 시간의 교통 정체는 지독하다. 내가 타고 있는 트램은 이 골목에서만 반 시간 이상 잡혀 있었다. 그러나 트램이 거북이처럼 움직여도 승객의 짜증은 없다. 바쁜 사람은 지하철, 메트로를 탔어야 했으니까. 따라서 교통수단으로써 트램과 지하철은 성격이 다른 것이다. 

 


(홍콩 트램 종점에 도착했다. 센트럴에서 여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몇 번 노선인가? 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시발착지의 도심 구조를 살피는 것이 관심사이다. 도시의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다핵도시를 만들려면 지하철이나 트램역을 역세권 문화상업복합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전트램 45개 역은 대전시를 재생할 좋은 기회다. 역마다 근린공원을 조성하고, 주변에 개성있는 도서관, 갤러리, 작은 영화관등을 넣자. 이렇게 도심 문화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자연스럽게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는 젊은 창업자들이 모이고, 소상공인 사업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트램 종점에 도착했다. 센트럴에서 여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비도 오고 마음이 심란해서 밥 생각이 없을 것 같았는데 허기는 왔다. 트램 종점 근처 눈에 띄는 식당에서 들어가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트램의 레일을 따라 두 시간 이상을 되걸었다. 걷다 쉬다 도중에 펍에 들려 맥주를 마시고, 다시 걷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택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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