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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훈 Aug 15. 2023

도시 가이드, 영화 ’미드나잇인파리(Midnight i

천년 도시는 어떻게 만드는가. 5

우디엘런의 복선, 영화 속에 도시마케팅

우디 앨런은 도시 가이드 같은 영화를 만든다. 여행자가 좋아하고 즐겨 찾는 명소를 활용하며,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고,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영화 판매에 이용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는 시대를 뛰어넘는 노스탤지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계산된 마케팅'이며 '파리 안내서'다. 

 

’길‘은 자꾸만 어긋나는 약혼녀 '이네즈'를 두고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한다. 우연히 종소리와 함께 1920년대로 빨려 들어가는 차에 올라타게 된다. 그리고 며칠, 밤마다 1920년대의 예술가들,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인 ‘애드리아나’와 어울린다. 

  

나의 첫 유럽은 파리였다. 삼십 초반, 혼자 찾은 파리, 한국 도시와는 판연히 다른 도심에서 충격을 먹었다.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이 파리를 개조했던 1853년부터 1870년까지의 그 구도, 고색창연한 그 건축물이 고스란히 사용하고 있었다. 영화 속의 ‘길’처럼 파리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마을길을 넓히고 지붕을 개량하는 새마을운동 도시에서 자란 내가 도시 전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얼얼한 충격이었다. 


(새마을운동 홍보 포스터, 출처, 평택시사)



나는 파리 북역에서 개선문으로, 샹젤리제 거리에서 알렉상드르 3세교, 노트르담 성당에서 몽마르트 언덕, 콩코르드 광장에서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을 다니고, 밤이면 타락과 범죄의 경계에 있는 핑크빛 물랭루주에서 헤맸다. 파리지앵은 그렇게 다니지 않을 것이다. 몇 년 후, 유럽 출장에서는 나폴레옹이 에크뮐 전투에서 개선한 쪽에서 프랑스를 횡단하며 파리로 돌아왔다. 언젠가 드골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쳤으며, 이후 유럽을 오고 갈 때 파리에서 하루 이틀 스톱오버를 하면서 틈틈이 파리에 중독되었다.





파리의 문화 경쟁력, 기억의 중첩과 스토리텔링

 

영화를 만들 때 유명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 기본 관객은 확보하게 된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제목으로 프랑스 사람과 파리 시민의 관심을 끌었을 테고, 파리를 보았거나 가고 싶거나 동경하는 사람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파리, 뉴욕, 도쿄 같은 도시로 제목을 뽑으면 나 같은 관객을 기본적으로 확보하게 된다. 

이 영화의 감독, 우디 앨런이 지정한 로케이션 장소는 발이 붓도록 걸어 다닌 노트르담 대성당, 요한 23세 광장, 팡테옹 등이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부인 칼라 부르니가 박물관 안내원으로 출연하다 주인공 '길'은 내가 걸었던 파리의 밤거리를 걷고 있다. 그곳은 위태로운 유혹이 가득 한 물랭루주로 가는 길인데, 그 골목의 홍등 아래 테이블에서는 공개할 수 없는 은밀함이 있다. 문화 수도는 금기(禁忌)까지 품어서 파리가 된 것이다. 

 

'길'은 댄스파티에 간다는 약혼녀를 보내고 밤거리를 걷다가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을 하게 되었다. 거울 속에 거울, 액자 속에 액자같이 중첩하며 사건을 이어지게 하는 장치를 미장아빔(Mise-en-abyme)이라고 한다. 영화는 파리의 골목에 작가가 설치한 미장아빔으로 시대를 넘나드는 이야기에 증식된다. 2011년 개봉한 영화는 ‘길’이 걸었던 장소에서 1920년대 예술가들을 만나게 한다. 젤다와 피츠제럴드, 콜 포터,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피카소와 아드리아나, 살바도르 달리는 비(非)리얼리즘과 리얼리즘을 극대화하는 장치이다. 파리는 루이의 절대 왕권 시절부터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던 근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장아빔(Mise-en-abyme)식 시간여행이 가능한 도시이다. 문화도시의 풍요로움은 이 같은 '시간과 장소의 재생성'에 있다.

  

(이방인으로서 혼자가 되어 파리의 골목을 걷는다면, 빠지고 싶은 환상으로 ’Midnight in Paris,‘의 도시 안내가 시작된다. 도시의 문화경쟁력은 거울 속 거울, 액자 속에 액자같이 중첩하여 이어지는 사건과 시대를 넘나드는 이야기로 증식된다. 사진출처, Jim Nix, A corner cafe in Paris, flickr)



(아래 사진은 파리 시내 기념품 가게에서 산 엽서이다. 가볍게 보면 유모인데, 이렇게 서재에 올려 놓은 것을 아내가 치워버렸다. 만약 서울시가 이런 식으로 홍보했다면, 몇몇 단체는 농성하고 여론은 난리를 냈을 것이다)



 

연애 선수 '길'이 박물관 가이드(칼라 브루니 분)를 유혹했던 것은 베르사체 스카프가 아니었다. 부산 보수동 골목의 허름한 책방에서 건져낸 듯한 책 한 권이었다. '길'은 이것을 두 번째 만난 여자에게 읽어 달라고 한다. 진정한 작업자의 수법은 이처럼 저렴하지만 효과적이다. 대전 원동의 헌책방도 진열 방법, 가게들 배열, 마케팅에 따라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헤밍웨이를 등장시키는 이유?

 

우디 엘런은 '길'과 마초 헤밍웨이를 만나게 한다. 헤밍웨이를 영화에 등장시키는 이유는? 전 세계에 영어영문학과가 있으니, 졸업생을 포함하여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었던 사람은 수천만 명이 넘는다. 헤밍웨이의 이름은 들어본 사람은 최소 수억 명이 될 것이다. 이것이 투자금을 뽑아야 하는 영화 제작자의 마케팅 전략이다. 헤밍웨이 같은 '마초 아우라'를 동경하는 육식녀와 그를 부러워하는 초식남들이 그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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