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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훈 Sep 01. 2023

산내 골령골,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우리가 만든 도시에 대한 반성. 1

인권도시를 위한 기억과 기록(Remember and Memory)



산내 골령골,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참혹한 만행이 벌어진 곳이다. 99년 2월 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에 있던 <한국에서의 정치범 처형>이라는 보고서는 50년 만에 비밀에서 해지된다. 미국대사관 소속 육군 무관 에드워드 중령이 작성한 A-1급 보고서이다. 학살 현장에서 찍은 사진 18장이 첨부되어 있다. 



(UN특별보고관 대전산내골령골 방문2022.06.11,출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대전에서의 1,800여 명의 정치범 집단학살은 3일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1950년 7월 첫째 주에 자행되었다. 사진들은 미 극동군사령부 KLO(Liaison Officer, GHQ, FEC) 애버트(Abbott) 소령이 라이카 사진기로 찍고, 미 육군 무관부원이 현상과 인화를 했다.”(과거사위원회 2010년 상반기 보고서 5권 Bob E, Edwards 중령 보고문(A-1)

 

학살 명분은 ‘서울이 함락되고 난 후 형무소 재소자들이 북한군에 의해 석방될 가능성을 방지하고, 공산당 우두머리와 좌익 극렬분자를 처단한다’는 것이었다. 7월 6일부터 17일까지 벌어진 3차 학살의 희생자는 영등포와 서대문, 수원 형무소에서 가석방돼 열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대전역에서 마구잡이로 연행된 사람들과 공주·청주 형무소 재소 일반사범, 서산경찰서 보도연맹원 등으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3,700여 명이다. 학살은 육군형무소 육군이 주도했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워커>의 앨런 위닝턴 기자의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 (I saw the truth in Korea)’라는 기사로 확인된다. - 중략, 6·25 전쟁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4,000여 명이 수감돼 있었다. 정부는 이들 중 여순사건과 제주 4·3 관련 수감자 등 2,000여 명을 정치·사상범 즉, 좌익으로 분류했다. 6월 28일부터 사흘간 이들 수감자 중 여순사건 재소자와 예비검속으로 체포돼 일시 수감됐던 보도연맹원과 요시찰인 등 1,400여 명이 군·경에 의해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 7월 3일부터 사흘간은 제주4·3 항쟁 재소자를 포함해 1,800∼2,000명이 학살됐다. (출처, 월간대전이즈유,2020.12)

 

학살의 주범은 보고서 작성자 에드워드(Bob E. Edward) 중령의 표현대로, 당시 한국 정부의 ‘최고위층’과 육군방첩대(CIC), 헌병대, 경찰이었다. 그동안 산내골령골 학살에 대해서 정부는 진상조사를 외면하고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밀이 해지된 미군 문서에 의해 진상이 알려진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는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이미지출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골령골은 대전 도심과 떨어진 외곽이다. 산내를 지나 충북 옥천으로 이어지는 좁은 산골짜기에서 비극이 발생했다. 위령제를 위해 모인 ‘원불교 평화행동’ 회원들과 골령골을 찾았다. 임재근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 집행위원장은 비극의 날들에 관해 설명했다. 누가 국민을 죽였는가? 인권을 증발한 시대, 학살의 죄를 묻지 않은 시대가 부끄러웠다. 유족의 피맺힌 원한을 모른 채, 산내를 오고 갔던 지날 날이 죄송했다. 

 

골령골 비극,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대전시민이 있다. 심층 취재를 이어가는 오마이뉴스의 심규상 기자, 6.25 전쟁 민간인 학살을 시에 담는 ‘서사시 골령골’의 저자 김희정 시인, 공연으로 죽은 넋을 진혼하는 마당극패 ‘우금치’, 대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시민 단체들 ....

 

‘민주당’ 출신 민선 7기 황인호 동구청장은 한국전쟁 전후 희생된 민간인을 추모하는 '진실과 화해의 숲' 공원을 2024년까지 산내 낭월동 일대(10만㎡)에 조성하기로 했다. 영국인 데이비드 밀러씨를 국제협력 보좌관을 임명하여, 골령골 학살을 70년 앞서 보도한 영국인 종군기자 앨런 위닝턴의 유품과 자료를 확보하게 했다.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반성한 독일의 평화도시들과 협력을 구상했다. ‘국민의 힘’ 소속 민선 8기 박희조 동구청장 당선인도 "산내평화공원은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며, '진실과 화해의 숲'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산내 골령골 학살을 알리는 푯말,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참혹한 만행을 벌인 곳이다. 민간인 학살 같은 반인륜 범죄에 공소시효를 두어서는 안 된다. 사실 추적을 멈추지 말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 진실를 규명하려는 용기가 없을 때는, 역사에 체념하거나, 무지에 빠지거나, 분노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위 세 갈래 길은 모두에 위험하다)




인간의 삶은 죽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며, 역사의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메리튜더의 '공포정치'에 의해 화형당한 사람들부터 킬링필드, 세르비아와 코소보 사태에 이르기까지 종교, 이념, 민족, 권력이 부추기는 증오와 무지로 인해 인류는 인간의 가치를 죽였다. 과학자 갈릴레오에 대한 재판은 1633년 4월 12일 시작되었다.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학이 과학을 재단한 종교 재판의 과오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고문 없이 진행한 재판이었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인정받기까지 359년이 걸린 것이다. 하물며 국가폭력, 집단폭력에 의한 학살....그래서 진실를 규명하려는 용기가 없을 때는, 우리는 역사에 체념하거나, 무지에 빠지거나, 분노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역사를 대면하는 위 세 갈래 길은 인류에 위험하다. 민간인 학살 같은 반인륜 범죄에 공소시효를 두어서는 안 된다. 사실 추적을 멈추지 말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 

역사 문제에 당장의 해답이 없을 때 답답하다.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 단재 신채호 선생님 생가가 있다. 선생의 동상은 서대전광장에도 있다. 망국의 시대, 한겨레의 역사를 상고사로 올려놓으신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본다. 역사를 길게 보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고,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 실마리를 잡고 싶다. 대전은 인권 도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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