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을 위한 마을, 걷는 동네를 위한 보행 공간과 주자창 확보는 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내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은 구청장과 구의원이다.
사무실이 있는 대흥동에서 관찰하면 구청은 돈도 많고 쉬지를 않는 것 같다. 수시로 보도를 파헤치고, 그 보도에 블록을 다시 깔고, 도로 모퉁이을 바꾸고, 골목 골목에 감시 카메라를 덕지덕지 붙여 놓고, 심지어는 가로등이 있는 골목길에 바닥 조명까지 붙여 놓아 밤 눈을 부시게 한다. 도시에 관통하는 개념이 없으면 현상은 산만해진다.
파리를 시작으로 유럽의 도시들은 ‘15분 도시’를 만들고 있다.
15분 도시는 2016년 카를로스 모레노 소르본 대학 교수가 제안했고, 2014년에 파리의 첫 여성 시장으로 선출된 안 이달고가 재선의 핵심 공약으로 실현하고 있는 도시 정책이다.
(이미지 출처, flickr, Jacques Paquier, Anne Hidalgo)
파리 어느 곳에 살든, 주민은 학교, 직장, 가게, 공원, 보건소 같은 생활 편의시설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 ‘15분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동차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시내 주차 공간의 절반을 없애고, 파리의 모든 길을 자전거로 통행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달고 시장의 공약은 ‘15분 도시’ 외에 ‘도보와 자전거로 통행하는 푸른 도시’, ‘연대의 도시’, ‘모두가 평등한 파리를 위한 약속’ 등으로 이뤄져 있다. 공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열쇳말은 ‘생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면서 모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한겨레, 21분 도시, 이종규 칼럼 인용)
이런 개념은 최근의 산물만은 아니다. 개인용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절, 도시계획가인 페리(Clarence Perry, 1872~1949)는 뉴욕의 한 지구를 조사하다 이민자의 사회 통합에 공간 설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페리는 1924년에 주거단지계획 개념인 근린주구이론을 발표한다.
내용에는 어린이들이 위험한 도로를 건너지 않고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단지규모에서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의 조건과 주민 교류를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물리적 장치들이 담겨있다. 페리 이론의 가장 큰 특징은 성인이 아닌 어린이를 중심으로 도시를 설계한 것이다. 초등학교가 근린생활의 중심이 되는 시설이다. 그는 주민의 일차적 교류를 촉진하는 주구계획을 통하여 공동체 의식과 지역사회에 대한 주민의 관심을 끌어내고 참여를 유도하려 했다. 페리의 근린주구는 걷는 지구, 짧은 블록, 오래되거나 새로운 건물, 작고 다양한 가게들, 시선을 교차할 수 있는 거리 폭과 도시의 다양성을 강조한 후대의 행동주의 도시학자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1916~2006)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나에 이론에 변화하는 시대를 모두 담을 수는 없다. 근린주구 이론의 허점 가운데 하나는 도시 작동의 동기인 새로운 접촉에 의한 기회를 발생, 익명성이 대한 고려가 부족한 점이다. 그러나 맥락적 이해를 하면 주민 공동체와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은 의식과 관념도 공간에 담을 수 있다는 것으로, 그의 사후 70년이 지난 오늘날 사람 중심의 근린주구의 원칙은 소중하다.
근린주구 조성을 위한 페리 6가지 원칙( 출처, KRIHS 전자도서관, 국토용어해설)
첫째, 규모; 주거단위는 하나의 초등학교 운영에 필요한 인구규모를 가져야 하고 면적은 인구밀도에 따라 달라진다.
둘째, 주구의 경계; 주구 내 통과교통을 방지하고 차량을 우회시킬 수 있는 충분한 폭원의 간선도로로 계획한다.
셋째, 오픈스페이스; 주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계획된 소공원과 레크리에이션 체계를 갖춘다.
넷째, 공공시설; 학교와 공공시설은 주구 중심부에 적절히 통합 배치한다.
다섯째, 상업시설; 주구 내 인구를 서비스할 수 있는 적당한 상업시설을 1개소 이상 설치하되, 인접 근린주구와 면해 있는 주구외곽의 교통결절부에 배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