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여행
내일 오후 비행기로 집에 돌아간다. 마지막인 듯 마지막은 아닌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처음 보는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 오늘은 완차이 골목을 걸어보기로 한다. 아침을 먹고 한차례 휴식을 취하고 나왔지만 역시 쉽지 않다. 골목을 따라 이어진 타이윤 시장을 지나왔을 뿐인데 벌써 피곤하다. 화장실도 가고 싶다. 시장 건너편으로 깔끔한 건물들이 보인다. 둘러보다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앉아서 더위를 식히고 지도를 들여다 본다.
한 손으로 지도를 뒤적이고 다른 손으로는 남편 손을 잡고 있다. 새삼 남편 손을 이리저리 만져본다. 지도 위에 놓여진 우리 두 사람의 손에 시선이 머문다. 이 손을 잡고 많은 지도 속을 걷고 싶었다. 이 남자는 짐을 잘 든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도 잘 물어본다. 멋진 풍경에 감탄할 줄 안다. 내가 그 순간을 떠나고 싶어질 때까지 함께 머물러주는 사람이다. 나는 이 남자 손을 잡고 걸을때 안정이 된다. 더 사랑스러운 여자가 된다. 그런 이 남자와 많은 지도를 여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작은 지도 안에 더 작은 골목을 걷기에도 힘이 든다. 이렇게 지도를 보며 걷는 것 자체도 신혼 여행 이후 두번째다. 머리 속에서는 엄청 아쉽다는 문장이 지나간다. 그런데 마음에서는 그렇게 아쉽지는 않다. 의외다.
지도 위에 놓인 두 손을 들여다보다 남편에게 더 가까이 앉으며 팔에 안긴다. “우리 팔십 살에도 이렇게 손 잡고 있어요?” “그럼요.” 나는 이런 류의 질문을 자주 한다. 남편은 언제나 "그럼요" 라고 대답한다. 말로도 행동으로도 나를 불안하게 하는 법이 없다. 함께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작은 골목길 하나 걷기 힘든 임신부가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오래도록 매일 손을 잡고 걸을테니 괜찮은 것 같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지나간다. 나는 여행에서든 일상의 길거리에서든 이 장면을 마주하면 한참을 바라본다. 저런 시간을 갖기 위해 함께 노력할 의사가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누군가는 저절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애인이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되면 전우애로 사는거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꽤 괜찮다고 생각한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전우애로 나이 들어갈 마음이 없었다. 다행히 남편은 평생을 사랑하며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 서로를 배려해야 하는 것도 아는 사람이다. 연애시절 그런 남자라는 것을 알게된 순간이 있었다. 몹쓸 기억력. 그가 말했던 문장은 기억나지않는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놀라서 말한 나의 문장만 기억난다. 내가 생각해오던 것을 어떻게 이 사람이 말하고 있는걸까 하는 감탄의 감정에 휩쓸렸었다. 사실적 상황은 기억이 안 난다. 나라는 사람이 그렇다. 감정만 기억한다. 그래서 그가 진짜로 내가 기다렸던 바로 그 남자인 것인지 그저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렇게 콩깍지로 6개월만에 신부입장까지 마쳤다. 아직까지는 그때의 감정이 사실과 크게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이다.
“나가자.”
다시 남편 손을 잡고 골목으로 나선다. 내가 찰나의 순간에도 이렇게 오만가지의 생각을 한다는 것을 남편은 모르는 것 같다. 때로는 알고도 모른 척 해주는 것 같다. 확인해보면 정말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좋다.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할 때 온 마음으로 들어주고 모른 척 해주었으면 할 때는 모르는 이 남자가 좋다. 좀 전보다 더 손을 꽉 잡고 걷는다. 완차이에도 애프터눈 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봤다. 지도를 들고 두어 골목을 헤매다 찾았다. 셔터가 내려져 있다. 자주 맞이 하는 상황이다. 남편에게 허탕의 기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허탈해진 남편은 셔터앞에 다가간다. 그 곳에 붙은 종이에 적힌 글을 읽는다. 무슨 소송 중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덥다. 걸어오다 본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더위를 식히고 다시 숙소로 갔다. 다시 한번 휴식을 취해야 마지막 밤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