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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Mar 31. 2016

선물이 준비되어 있는 곳

나홀로 태교여행_제주


출산 휴가의 시작이 기다려진다. 그 동안 출산 휴가에 들어가는 동료를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출산 예정 45일 전. 법적으로 보장되는 최대한 빠른 시기로 휴가 시작일을 정했다. 뭐 할까 어디를 갈까. 마음이 들뜬다. 그 때만해도 임신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 몰랐던 거다. 출산 예정 45일 전에는 몸이 무거워져 멀리 가기 힘들고 비행기 타기도 어렵다고 한다. 어디든 가야 한다. 길게 멀리 가야 한다. 마음이 급해진다. 달력을 다시 본다. 임신 기간의 꽃이라는 임신 중기가 나에게는 7~8월. 성수기에 맞춰져 있다. 성수기의 긴 여행은 별로 끌리지 않는다. 늘 그랬다. 가격 대비 즐거움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9월. 출산휴가 시작 2주 전이다. 긴 휴가를 앞두고 1주일을 통째로 또 쉬겠다는 것이다. 나도 직장생활에서 눈치를 본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기 때문인가보다.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이미 여행 계획은 시작되고 있었다. 5일 휴가를 내고 두 번의 주말을 껴서 9일의 시간을 만들었다. 어디 갈지 검색을 한다. 휴양지에 가서 늘어지게 누워있다 올까 싶었다. 20주 때 홍콩을 다녀왔었다. 비행기를 네 시간도 타지 않았는데 다리가 많이 붓고 발이 아팠던 것이 기억난다. 9월이면 30주가 가까워 올텐데 서너 시간의 비행도 신경이 쓰였다. 즐거우려고 가는 여행에 무리가 되는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국내에서 어디를 가면 좋을까 찾아봤다. 공기가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확 끌리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제주. 새로운 곳을 가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여기 저기를 검색해 봤지만 제주라는 단어가 떠오르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산도 바다도 맑은 공기도 있고, 쉼도 풍경도 전부 있는 곳이다. 신이 난다. ‘아, 남편이 있었지.’남편을 깜빡했다.


“나 일주일 휴가 내고 제주도 가려구요. 휴가 낼 수 있을지 고민 안 해도 돼요. 나 혼자 갈 거예요.”

“네?”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오빠는 주말에 와요.”


통보를 마치고 숙소 검색을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게스트 하우스 중에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고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거워진 몸 때문에 계속 뒤척여 같이 자는 사람들을 신경 쓰이게 할 것 같았다. 자다 말고 화장실을 가게 되는 것도 생각하니 혼자 쓰는 방으로 골라야 겠다. 방 안에 화장실이 딸려 있었으면 한다. 검색을 하다 보니 기준이 하나 더 생겼다. 조식이 없는 곳 보다는 있는 곳, 토스트 보다는 밥을 주는 곳으로가고 싶었다. 경치가 좋은 곳, 방이 깔끔하고 예쁜 곳을 선택하는 것은 기본 조건이다. 그렇다고 10만원이 넘는 방은 싫었다. 1박에 6~7만원 정도로 예산을 정했다. 검색을 하다 보니 조식뿐 아니라 미리 말하면 저녁까지 주는 곳도 있었다. 다른 조건들도 맞았다. 하지만 한 군데만 정한다고 끝은 아니다. 혼자 머무는 시간은 총 6박 7일. 동쪽, 남쪽, 서쪽에 머물며 제주를 한 바퀴 돌고 싶다. 결국 이 모든 조건을 맞춰 2박씩 3곳의 숙소 예약을 마쳤다. 머물게 될 방과 주변 사진들을 계속 검색하며 제주를 상상한다. 내가 만났던 제주 그리고 아직 보지 못한 제주.


첫 직장은 우연한 선택이었다. 면접을 준비하며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아보았다. 예상질문과 답을 준비했다. 면접을 위해 만들어 내는 말들이 점점 나의 진짜 이유가 되었다. 이 곳에서 한번 일해 보고 싶었다. 합격한 뒤 일기를 썼다. 무슨 일을 어떤 태도로 일하고 있는지 오 년, 십년 뒤에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썼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지나간 일을 기록하듯 작성했다. 보건소 소속 기관이다. 해당 구의 정신장애인과 지역주민의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일-'행복 증진을 위한 일'이라고 적고 싶다-을 하는 곳이다. 팀장 한 명 과 10명정도의 직원으로 꾸려진 작은 조직이었다. 팀장이 넓게 쓰던 자리를 반으로 쪼개 내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팀장과 마주보고 앉는 자리였다. 진심으로 대상자를 생각하는 마음, 그들을 위한 의사결정 그리고 직원들의 자기성장을 고민하는 팀장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 지를 배웠다. 팀장과 나는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대상자를 만난다. 팀장은 간호사고 나는 임상심리사다. 관점 차이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관계다. 팀장은 긴 경력을 뒤로 하고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나를 믿어주었다. 어렵고 힘든 것도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즐겁게 열심히 일했다. 첫 직장에서의 일년 반이 지났다.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조금씩 더 눈에 들어왔다.


그 때 팀장은 나를 떠났다.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났다. 꼬박 이틀을 그랬다. 그 때도 알고는 있었다. 팀장의 퇴사에 눈물이 난다는 것. 첫 직장 생활이 너무 복에 겨웠었다. 첫 팀장이 떠난 후에도 아직 나를 움직이게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사회복지사인 그녀 역시 나와 다르지만 나를 존중해주었다. 임상심리사를 활용할 줄 아는 사회복지사였다. 그녀의 새로운 시도와 추진력으로 즐겁게 일했다. 3년이 흘렀다. 입사 전에 썼던 일기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 때 미리 적어둔 삶 그대로를 살고 있었다. 신기하고 행복하고 감사했다. 꿈을 향해 잘 걸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이대로면 오 년, 십년 후에도 저 일기에 써 있는 대로 살고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새로 조직을 이끌어가는 윗 사람의 지시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대상자를 위하는 일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 상사의 지시에 대해 확인해보고 진행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일을 안 하겠다는 거네.”라는 말로 받아쳤다. 그 누구보다 즐겁게 열심히 일해온 나에게는 낯선 문장이었다. “이러니까늘 손발의 일만 하는 거야.” 더 큰 일-그의 입장에서-을 해보자며 나의 동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한 말이었나 보다. 하지만 내게는 매 순간 보람찼던 첫 직장생활 삼 년을 모두 부정하는 말로 들렸다. 신경쓰지 말고 가고자 하던 길을 가자 생각했다. 하지만 자주 방해를 받았다.


주말 근무를하고 난 뒤 수요일 대체 휴가가 생겼다. 아침에 출발했다가 그 날 저녁에 돌아오는 제주 티켓을 끊었다. 바람 쐴 생각에 들떴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어디 갈지를 검색했다. 사라오름이 공개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가보고 싶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성판악 입구로 갔다. 멀었다. 멈출 수 없어 계속 올랐다. 도착하니 진달래 대피소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사라오름을 가보고 싶은 것이 전부였다. 등산을 해야 할 줄은 몰랐다. 당일치기 여행인데 시간을 한참 썼다. 함덕으로 달렸다. 신비로운 바다색으로 기억하는 곳이었다. 도착하니 저 멀리까지 물이 빠져있었다. 바다 색은 안 보이고 모래만 보였다. 관광버스몇 대가 도착했다.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이 쏟아졌다.


김녕으로 피신 했다. 다행히 그 곳에는 바다색이 보였다. 모래사장 건너편 방파제로 갔다. 바다를 향해 다리를 떨구고 앉았다. 바다색도 바다냄새도 마음에 들었다. 사회복지사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뭐하냐기에 바다에 앉아 있다고 했다. 태풍이 오면 어쩌냐며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잔소리다. 바다 위 허공에 뜬 다리를 흔들며 앉아 있으니 너무 좋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잔소리 하느라 전화를 안 끊을지 모른다. 내가 혼자 어디를 갈 때면 호들갑스럽게 걱정해주는 사람이다.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기분이 된다. 전화를 끊고 웃음을 머금은 채로 일기장을 폈다. 내가 첫 직장에서 삼 년 간 만나 마음을 나누었던 많은 대상자들을 떠올렸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들과 나눈 시간의 가치와 마음이 깊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방해한 누군가의 말 따위는 신경 쓰지 말자 싶었다. 사실 수십 번은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제주 바다 앞에서 다시 한번 나를 설득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개를 드니 맞은 편 모래사장에 함덕에서 봤던 관광버스 무리가 도착했다. 도망가자. 다행히 공항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해변도로를 따라 공항까지갈 생각이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오 른 편에는 바다를 두고 앞으로는 해를 좇아 운전했다. 포근했다. 도로에 차를 멈춘 채로 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빵.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몇 컷 더 찍었다. 너무 예뻐 멍하게 바라보고도 있었다. 가려고 하니 뒤에 트럭이 기다리고 있다. 나보고 비키라고 한 것이었나 보다. 마을 골목 도로에서 계속 사진을 찍어대는 정신 나간 운전자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다니. 감사한 아저씨다. 계속 해를 따라 달렸다. 바다 앞 정자가 보였다. 여러 사람들이 해를 보며 서 있었다. 묵직한 카메라가 올려진 삼각대도 보였다. 나는 사진작가가 서 있는 곳은 무조건 가장 좋은 위치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차를 세우고 내렸다. 사람들 사이에 섰다. 해가 거의 바다 가까이 내려와있었다. 따뜻했다. 옆에서 누군가 “오”라고 짧게 외친다. 빨간 해 아래로 돌고래 떼가 뛰어 오르고 있었다.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귀가 멍해졌다. 해와 마주서서 돌고래를 보느라 시야는 아득해졌다. 그리고는 초점을 잃어버렸다. 붉은 느낌만 남았다. ‘마음 고생 많이 했다. 열심히 살았다. 네 시간을 망치지 않으려고 애도 많이 썼다.’ 누군가 이런 말들을하며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이 순간을 준비해두고 제주가 나를 불렀구나 싶었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차를 천천히 몰아 공항으로 향했다.


 내가 가치 있다고 믿었던 일이 다른 누군가의 한 마디로 인해 흔들렸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이해되지 않는 감정의 반복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일은 일일 뿐인데 너무 마음을 쏟았던 탓인지 떠날 때가 되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제주 바다에서 나 자신을 설득하고 노을 아래 돌고래의 위로를 받았음에도 첫 직장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곳에서 내가 정성을 담아 했던 일들과 나를 지지하고 배우게 해준 사람들과의 기억은 온전히 마음에 남겨 두었다. 제주가 주었던 선물도 함께 남아있다. 덕분에 다음 직장에서도 정성을 담아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었다.


제주로 향할 때마다 준비되어 있을 선물에 설렌다. 제주는 나에게 그런 곳이다. 언제 어떤 마음으로 가도 나에게 딱 필요한 무언가를 꺼내주는 곳. 뱃 속의 아기와 함께 가는 둘만의 여행. 혼자인 듯 둘이 떠나는 여행지가 제주여야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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