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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Feb 06. 2016

혼자도 좋아

육아 D+72 | 첫 혼자 외출 그리고 첫 완모

남편의 일과는 규칙적이다. 8시 30분에 나가서 23시 30분에 들어온다. 일요일은 쉰다. '지금 전철 탔어요.' 문자가 왔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다. 남편이 집에 도착했다. 아기가 잠을 자는 동안 저녁을 차려 함께 먹었다. 아기를 깨워 수유를 했다. 10시다.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엄마 잠깐 놀러갔다 올테니까 꿈꿈이는 아빠랑 놀고 있어." 처음이다.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 밖으로 나왔다. 집 앞 카페로 서둘러 걸었다. 샷을 추가한 라떼가 맛있겠다. 사과 당근 주스를 시켰다. 육아 책을 펼쳤다.

 '아기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가는 구나. 우리 아기에게는 규칙적인 일과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모유를 줄 때 이런 방법도 있구나.' 몰랐던 것이 많다. 아기에 관한 책을 읽고 있지만 아기가 많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새로운 공부를 하는 기분이다. 11시다. 카페 문 닫는 시간이다. 밖으로 나왔다. 코가 시렵다. 도로에 차가 별로 없다. 한번 둘러보고 열발자국을 걸었다. 결혼 전 기분이 든다. 신기해서 웃음이 나왔다. 상쾌하고 가볍다. 계속 걷고 싶다. 집까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해 걷기 시작했다.

친구와 여행을 가면 일찍 일어나 혼자 산책을 했다. 하루를 같이 여행할 사람이 저 쪽에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혼자 시간을 보낸다. 혼자여서 편안하다. 그리고 하루를 함께 여행 할 사람이 있어 따뜻하다. 그 기분을 좋아했다. 오늘도 그렇다.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내 사람 둘이 있다. 남편과 아기를 사랑한다. 하지만 혼자 걸어도 편안한 내가 마음에 든다. 귀가 차갑다. 그래도 웃음이 난다.

아는 언니 집에서 며칠 머문 적이 있다. 돌쟁이 아이가 있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다. 시끌벅적한 맥주집을 보며 언니는 "저런데 간지가 언젠지... 가고 싶다."라고 했다. 형부에게 아기 맡겨두고 함께 다녀오자고 나 있는 동안 하고 싶은 것 하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맥주집에 가지 못했다. 그 날 저녁 말고도 하고 싶지만 아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한 숨을 여러번 들었다. "너도 낳아봐." 낳아보지 않아서 잘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칠십 이일 밖에 키우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앞으로 아기가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내가 문 밖을 나서려 할 때 울음을 터뜨리면 어떻게 될까.

그런 날이 오기 전에 혼자도 좋은 이 밤을 걸어서 다행이다.

아기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싶다. 그래서 엄마가 문 밖을 나가더라도 곧 돌아온다는 것을 아기가 알아주면 좋겠다.




엄마가 된지 72일차. 또다른 처음도 있었다.

첫 완모.

아기가 모유만으로 하루를 살아냈다.


이틀 전부터 완모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지난 이틀은 외출하느라 분유를 한번 준 것이 전부였다. 전에는 하루 두 세번 분유가 필요했다. 한시간이나 한시간 반이면 다시 젖을 물렸다. 한 시간만에 젖을 물려 40분을 먹였는데도 곧바로 배고파하기도 했다. 그러면 분유를 탔다. 아기는 젖병을 물고 나를 바라본다. 아기를 향해 입은 웃어주었다. 하지만 몸은 지쳤고 마음은 허탈했다. 그러다 한동안은 기운빼기 전에 내가 정한 시간에 분유를 주었다. 그 다음 얼마간은 분유를 조금 먹이고 바로 이어서 젖을 물리는 방법도 해 보았다. 며칠 전부터 수유텀이 3시간 정도로 늘어났다. 모유 양이 조금 늘어난 것과 동시에 낮잠의 세계를 알게 된 덕분이다. 70일 가까이 키우도록 아기 재우는 법을 잘 몰랐다. 밤에는 혼자 스스륵 잠 드는 순한 아기다. 낮에도 잠들면 자고 아니면 말고였다. 열두시간을 깨어 있는 날도 있었다. 걱정도 됐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낮잠 재우기를 시도했다. 수유 하고 한시간반쯤 놀다가 하품을 하면 아기를 안고 집을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잠이 들면 한시간이 흐른다. 다시 수유하고 놀고 잔다.인터넷에서 본 먹놀잠(먹고 놀고 자고)과 EASY(Eat Active Sleep You)이 바로 이거였나보다. 한시간 반 단위로 흘러가던 하루가 세시간 단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내가 지쳐서 분유를 주는 순간이 사라졌다.


아직은 하루 완모에 성공했을 뿐이다. 내일은 또 배고픈 아기에게 분유가 필요할지 모른다. 나는 수술로 아기를 낳아야 했다. 하루 동안 몸을 일으키는 것이 금지되었다. 아기가 세상에 나왔지만 안아주지 못했다. 젖도 물릴 수 없었다. 스물네시간이 지났다. 배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조금만 움직여도 아팠다. 아기를 데려와 안았다. 다시 겨우 앉아 젖을 물렸다. 나도 아기도 처음이라 잘 되지 않았다. 더 어려워하는 건 내 쪽이었다. 아기는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열심히 빨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젖을 먹어주고 있다. 고맙다는 말만 계속 했다. 그 때 그 마음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 후 72일 동안 60번 모유를 포기하고 싶었다. 삼십분 넘게 유축기를 붙들고 있어도 10cc도 나오지 않았다. 유두는 지금까지도 상처 투성이다. 옷깃만 스쳐도 샤워할 때 물줄기만 닿아도 소스라치게 아프다. 유두의 상처가 가슴 전체의 신경과 연결되어 미칠듯한 통증을 일으킬 때도 있었다. 조리원에 있을 때 너무 아파서 우울증 걸릴 뻔 했다고 표현했었다. 그 통증이 집에 와서는 너무 아파서 정신증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해졌다. 참고 참다가 방문 닫고 들어가 대성통곡을 했다. 매일 미역국과 우족 우린 국물을 먹었다. 모유 양 늘리는 것에 에 좋다고 해서 40분을 수유하고 바로 또 30분을 유축을 했다. 허리와 어깨 팔목도 아팠다.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있지만 아기는 늘 배고파 했다. 그러면 분유를 탔다. 젖병을 닦고 소독하는 일까지 이중생활을 해야 했다. 나와 달리 아기는 포기하려 한 적이 없다. 모유도 분유도 열심히 먹어주었다. 혼합수유도 좋다. 하지만 나도 완모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내 존재만으로 아기가 살아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는 아기에게 포기하지 않는 엄마가 되기 위해 정한 나만의 목표지점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곳에 왔다. 아기가 나를 데려와주었다.



+ 이 꼭지를 대충 써 둔지 나흘이 지났다. 다시 읽어보니 웃음이 난다. 낮잠의 세계를 알게 됐었지. 덕분에 아기를 안고 재우려 집 안을 걸어다니느라 어깨랑 허리가 더 쑤신다. 완모는 이틀 반만에 중단되었다. 하루 한 번이지만 다시 분유가 필요한 순간이 생기고 있다. 지난 이틀간 아기는 제대로 낮잠을 자지 못했다. 노트북을 열 틈 없이 아기 옆에 붙어지냈다. 조금 전 계속 칭얼대고 잠들지 못하는 아기에게 분유를 주었다. 내 어깨에서 이십분 침대에서 십분을 자고 일어났다. 다시 재워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바운서에 앉히고 모빌을 틀어주고 화장실에 다녀오니 잠들어 있다. 바운서에서 자는 것은 좋지 않지만 오늘만 거기서 잠시 자주렴. 엄마가 허리가 너무 아프다. 혼자 외출을 다녀왔던 것이 월요일 지금은 금요일이다. 그 날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 육아 서적에 이런 말이 써 있었다. '절대 변하지않는 사실 한 가지는 아기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변함없이 함께 변하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아기가 깼다. 울려고 입을 씰룩거리고 있다. 다시 잔다. 또 눈을 뜬다. 엄마가 가서 안아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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