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 나무 Mar 16. 2016

내 엄마노릇에 희생은 없다

D+100 누구 좋으라고, 희생따위

예쁘게 눈이 온다. 꿈꿈이의 백일이 축복받고 있다. 백일은 아기가 수정된지 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아기를 돌본 것은 백일이지만 아기와 함께한지는 일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나를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가장 저렴한 상차림 대여에서 시작한 백일상은 돌상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게 많았기 때문이다. 예쁜 장식을 달고 싶었고 그 동안의 사진들을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아기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일년 전 꿈꿈이가 우리를 찾아왔을 때 뱃속에서 하루하루 아기를 키우고 낳은 것도 내가 원해서 한 일이다. 완모를 하겠다며  80일 간 사서 고생한 시간도 내가 하고 싶어 그랬다. 앞으로도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 기억하고싶다. 나의 모든 선택과 행동들이 널 위해서 너 때문에 하는게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라는 것을.

아기 얼굴을 내 왼쪽 어깨에 기대게 하고 아기의 왼쪽 어깨에 내 얼굴을 파묻고 꼭 껴안는 순간이 참 좋다. 어젯 밤 그렇게 아기를 꽉 안고 말했다. "나한테 와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백일동안 행복하게 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 임신8개월 때 혼자 제주를 걸으며 중얼거릴때마다 눈물이 왈칵 올라오던 문장이다. 어제는 아기를 껴안고 말해주었다. 다른 아기가 아닌 꿈꿈이가 다른 부모가 아닌 우리를 선택해주어 정말 고맙다.

백일을 맞은 내 딸은 오른쪽 뺨에 건선인지 습진인지 모를 이유로 약간의 진물와 딱지같은 것이 생겼고 처음으로 재채기가 아닌 기침을 몇번이나 했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안고 걷다가 넘어질뻔하면서 시멘트 벽에 머리를 세게 박아 그 작은 머리에 혹이 났다. 백하루가 되는 내일 밤에는 모든 것이 괜찮아지기를. 그리고 천일 만일을 함께하는 순간에도 오늘의 마음을 기억하는 엄마로 살고 있기를.




내가 아는 자장가는 한곡이다. 자장가는 한 곡으로만 정해 불러주는 것이 좋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다행이다. '잘자라 우리아가 앞뜰과 뒷동산에'로 시작하는 노래다. 뒷부분 가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같은 멜로디에 가사를 지어 무한반복으로 불러준다. 만들어 내는 가사에는 내가 바라는 아기의 일상을 담는다. '꿈꿈이가 너무 예뻐서 너무 착해서 사람들이 몰려와요. 항상 현명하구요, 배려도 잘 하지요. 잘 자라 우리아가.' 자장가가 길어진다. 가사는 아기의 미래까지 닿는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구요. 해낼 수 있는 능력도 있지요.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사람들이 함께하고 싶어해요. 잘자라 우리 아가.' 원하는 일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멋지게 해내는 어른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리고 그 가사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기도 하다.

아기가 태어난지 사십일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속삭이며 거실을 걷고 있었다. 그 날도 가사는 아기의 미래까지 가고 있었다. 걸음을 멈췄다. '멋진 어른으로 살면 뭐해? 그래봤자 결국에는 얘도 나처럼 애 낳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스쳤다. 갑자기 기운이 빠졌다. 순식간에 나는 집구석에서 애나 보는 하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되었고 내가 안고 있는 이 아기의 인생도 결국에는 시시해질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아기를 낳고 40일째다. 집에서 아기를 돌보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 소중한 일이다. 4년 10년이 흘러도 아이만 키우는 인생이 하찮을리 없다. 그리고 이 아기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떠오른 '집구석, 들어앉아, 하찮은, 시시한' 등의 단어는 호르몬의 영향이었을 수 있다. 출산 후 엄마의 몸과 마음은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를 겪는다. 수면부족으로 심리적 회복이 이루어지 못한 상태로 생활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쉽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떠오른 단어들이 나를 흔들었다. 일년 넘게 산후우울증 예방을 주제로 강의를 했던 과거도 소용없다. 그 후로 며칠 간 아기의 미래를 말하는 가사는 부르지 않았다.


백일을 넘기니 정신이 든다. 지금 나는 집구석에서 애나 보고 있는 아줌마가 아니다. 한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중이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만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이 있었다. 하루라도 젊을 때 찾아와주어 다행이다 싶은 마음 정도였다. 하지만 뱃속 아기의 움직임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십분 넘게 안고 토닥이며 재워 옆에 눕혀 놓은 지금까지 늘 아기에게 고맙다. 육아라는 것은 매일 같은 날을 살게 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쉼 없이 자라고 있는 아기 덕분에 매일 새로운 날을 살고 있다.


나는 의무나 희생이 아닌 행복한 엄마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아기를 키우는 동안의 나의 행동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로 채워질 것이다. 복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기도 키우고 싶고 일도 계속 하고 싶다. 아직은 선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선택이 부담스럽지 않다. 나를 위한 선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르몬의 영향에서 벗어난 덕분이다. 집구석에서 아이나 키우는 인생도 아기를 놔두고 경력 이어가기에 몰두하는 엄마로도 살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아기의 커가는 모습을 행복하게 함께하는 엄마로 살거나 밖에 나가 멋지게 일 하는 엄마로 살 것이다.


아기의 피부가 많이 건조하다. 수시로 로션을 발라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아기피부답지 않은 모습이 속상하다. 내가 속상해서 로션을 열심히 바른다. 기저귀를 갈고 옷을 다 입혔는데 로션이 저쪽 방에 있다. 귀찮다. 덜 귀찮을 때는 가져와 발라주고 심하게 귀찮으면 건너뛴다. 밤에 깼을 때도 발라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잠이 영 달아나버리면 나만 고생이다. 건너뛴다. 아기에게 무언가 해줘야할 때 내가 지금 이것을 해주고 싶은지를 먼저 묻게 되었다. 대체로 하고 싶다. 나는 엄마니까. 하지만 내가 괴로운데도 아기를 위해 억지로 무언가를 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행복한 엄마로 살고싶으니까. 먼 훗날 어느 한 순간이라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널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이런 생각이 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하고 싶은 것 다 했어. 너랑 함께여서 좋았어. 고마워' 이 말을 말해주고 싶다


+ 독박육아 말고 둘만의 여행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도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