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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Dec 27. 2016

둘에서 셋으로 가는 여행

두 번째 임신

 밤새 뒤척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갔다. 테스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색이 변하고 있다. 첫 번째 줄이 있어야 할 위치를 그냥 지나친다. 두 번째 줄은 선명하게 나타났다. 쉬운 일이 아니구나 생각한다. 설명서를 다시 읽었다. 3분 후에 판독하라는 말이 쓰여 있다. 괜히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어설프게 생긴 테스터는 그동안 써본 것들과 사용법도 다르다는 것일까. 하나 가격에 세 개가 들어있을 때부터 짐작했어야 했다. 조금 더 기다려봤다. 첫 번째 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조금씩 선이 생긴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물을 마시고 와야겠다. 잠시 후에 다시 보니 선이 더 진해져 있다. 남편을 깨웠다. 남아있는 테스터를 쥐어 주고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했다. 남편은 당황했지만 착한 사람이다. 한참을 지켜봤지만 한 줄이다. 임신인 것 같다.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나와(상단) 남편의(하단) 테스터 ㅋ


 작년 3월이었다. 그날도 뒤척이다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다. 남편을 깨웠다. 테스터를 쥐어 주고 나 어떡해라고 한 뒤 돌아누웠다. 남편은 그럴 리가 없는데 라는 문장을 반복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게 무슨 말이냐 그 말 하지 말라고 하고 다시 누웠다. 결혼 4개월 차였다. 나는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고 신혼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게 첫 번째 임신은 그 모든 것에 대한 종결을 알리는 신호였다. 복잡한 마음 정리를 거쳐 뱃속 아기와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작년 11월 그 아기를 품에 안게 되었다. 첫 임신을 알았을 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첫 아이에게 미안한 일 중 하나다. 두 번째 임신은 계획된 것이었다. 임신 테스트 직후 기뻐 날뛰는 것 또한 계획해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설픈 테스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임신이므로 테스터를 들고 방방 뛰는 것은 이번 생에는 못하게 되었다.


 첫 아이는 딸이다. 착하고 순하다. 이 아이가 19개월이 되면 동생이 태어난다.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하지 않은 숙제가 저 한구석에 있는 기분이 별로였다. 아이를 낳게 된다면 둘은 낳고 싶었다. 두 명이면 그 둘이 놀테지만 한 명이면 내가 계속 그 아이와 놀아줘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럽다. 두 아이가 사이좋게 노는 찰나의 순간 이외의 힘든 순간들은 모른 척하기로 한다. 임신 3개월 차이며 배는 이미 5개월 때만큼 나왔다. 둘째는 배가 빨리 나온다고 하지만 이건 그냥 내 배인 것 같다. 나는 곱슬머리다. 결혼 이후 이년 간 파마를 하지 못했다. 첫 임신 중이었고 출산 후에는 모유수유를 했다. 그리고 단유를 하기 전에 두 번째 임신이 찾아왔다. 임신 6개월 이후에는 머리를 해도 된다지만 아토피로 고생한 첫 아이를 생각하면 못 할 것 같다.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는 것 같은 몸과 함께 곱슬머리는 거울을 피하게 만든다. 어제부터 결심했다. 외출 전 고데기를 열심히 하기로 한다. 오분만 투자해도 한결 낫다. 첫 아이가 일주일 전부터 밖에서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오늘 둘이서 밖에 나갔다가 후회했다. 평지를 함께 걸을 때는 행복했으나 아이가 계단에 집착하니 팔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첫 번째 임신 때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것 이외에는 내내 누워서 빈둥거렸다. 잠이 쏟아졌었다. 그 하루들이 허탈하기도 했다. 두 번째 임신인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하루 종일 굴러다니며 자고 싶다. 착한 딸이 잠깐씩 혼자 놀아주는 시간에 감사하며 쪽잠을 잔다. 두 번째 출산 이후에는 이 쪽잠도 그리워질 것이 짐작된다.


둘에서 셋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억지스럽게 들릴 수 있다. 그래도 쓴다. 여행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은 마음을 담는다. 다시 할 수 없는 여행이다. 뱃속의 아가를 어루만지며 다른 한 손으로는 눈 앞의 딸을 쓰다듬는다. 조금 짜증 나는 순간도 눈물 나게 힘들거나 행복한 순간도 소중히 경험하고 기억해두려 한다. 지금은 지금 뿐이니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걸음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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