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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슐리 Apr 22. 2024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인이 된다

초보 엄마의 작은 다짐


크게 아픈 적 없던 아이가 크게 아프다. 인생 17개월차에 맞이한 첫 시련, 폐렴이다.


이비인후과에서 감기약을 처방 받고 온 날 밤. 없던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아이의 호흡이 힘겨워 보였다. 잠에서 깨니 숨 쉴 때마다 쌕-쌕- 소리가 났다. 그래도 약을 먹였으니 곧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유난히 품에 매달리는 것 같았지만 컨디션이 좀 안 좋나보다, 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는 것 같은데?” 남편이 말했다.

“코가 막혀서 그런 거 아닐까?” 답하면서도 어딘가 쎄했다.


아기의 심장은 원래 어른보다 빨리 뛴다.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말하지 않았다면 의식하지는 못할 정도로 미세한 차이였다. 나는 예민하지만 엄마로선 둔한 반면, 남편은 둔하지만 아빠로선 예민한 편이다. 남편 말을 듣기로 했다.


집앞 소아과에 갔다. 웬만한 증세에는 처방도 잘 안해주는 시크한 의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불친절하다는 평 때문에 늘 한산하다. 대기가 없으니 빠른 진료가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보수적인 의사의 청진기가 꽤 오랜 시간 아이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 시간에 비례하여 빨라지는 내 심박수. 이내 큰 병원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 입원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심장이 발등 위로 쿵 떨어졌다.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는 게 큰 산이었다. 의료 파업의 여파가 피부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의사는 30분 거리 떨어진 서울역 소화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혹시나 해서 인근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가까운 은평 성모병원은 당일 예약을 받지 않았다. 다음으로 가까운 일산차병원은 소아과 호흡기 의사 인력이 없다고 거절 당했다. 기력을 잃어가는 아이를 일단 차에 태웠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처럼 주유 경고등이 켜졌다.


나는 운전면허 취득 2년차. 운전은 제법 익숙해졌어도 주유 칸을 확인하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경고등이 뜨기 전에 주유를 하라는 남편의 잔소리를 7번 정도는 들은 듯 하다. 하필 LPi 차라 가까운 곳에 충전소가 없어 20분 거리를 또 가야 했다. 서울엔 왜 이렇게 충전소가 부족한지, 아니 우리는 왜 하필 LPi 차를 산 건지. 애먼 곳에 물음표를 던져댔다.


충전소로 향하는 길,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아이의 몸은 더욱 축 늘어졌다. 모든 게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남편이 119에 전화를 했다. 3분 만에 구급차가 왔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옮겨 탔고, 나는 충전소에 들렀다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얼마 못 가 전화가 왔다. 응급실이 없는 병원에는 구급차가 갈 수 없단다. 아기 엄마였던 구급대원 중 한 분이 가까운 아동병원을 알려주셨다. 엄마만이 지을 수 있는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서. 입원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했지만 다행히 입원 가능한 병실이 있었다. 충전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게 찾아온 원흥 아이제일병원. 금요일 낮 12시 경이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의료사고라도 났던 곳인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는 다정하고 친절했다.


진단명은 세균성 폐렴. 응급 상황으로 판단해 진찰과 검사, 입원까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병원은 사람들로 가득 붐비기 시작했다. 종교는 없지만 신께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은 입원 3일차. 3주 같은 3일이다. 아이는 다행히 장난도 치고 애교도 부릴만큼 살아났다. 빠르면 내일, 늦어도 모레면 퇴원 예정이다. 같은 날 폐렴으로 입원한 아기들 중 가장 회복이 빠르단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링거를 꽂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아기들이 마음에 채인다. 그들의 부모도.


17개월차 엄마가 된 나도 아이와 함께 첫 시련을 겪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고 느낀 죄책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이는 아프면서 큰다. 어른도 그러하듯. 마음은 똑같이 아프겠지만, 죄책감은 갖지 말자고 작은 다짐을 해본다. 엄마로서 10cm 성장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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