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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 쿡 Mar 10. 2020

니들이 친절을 알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어젯밤 인천에서 소고기 국밥집을 하는 후배가 술 한 잔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한동안 강의와 컨설팅 일로 바빠서 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후배라 흔쾌히 만나기로 했다.

그는 매장 평수 80평에 1층 월세 650만 원짜리 업장에서 불고기와 소고기 국밥을 주메뉴로 팔고 있는데 외식업을 시작한 지 1년 반 밖에 되지 않는 새내기였다. 전에 IT업계에서 잘 나가는 회사원이었지만 과감히 퇴사 후 외식업으로 뛰어들었다.

1년 반 동안 나름 우여곡절을 겪고 이제는 안정된 매장으로 잘 꾸려 왔다.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그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침 튀기며 떠들었다. 

1년 반 동안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것들을 배웠고 또 자신이 손님에게 친절하게 하니 손님이 늘어났고 손님들이 저만 찾는다는 둥 자신의 자랑 아닌 자랑을 귀엽게 늘어놓았다.

그런 많은 이야기를 듣던 중 여기까지 찾아온 동생에게 한 가지 일침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내심 그도 그런 일침을 듣고 싶어 왔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늦게 들어온 손님들이 이야기가 길어지면 제가 믹스커피 한잔씩 타주며 ‘제가 타면 스타벅스 커피입니다~’라는 멘트를 날리면 손님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고요.ㅋㅋㅋ 저도 기분이 좋고 손님들도 좋아합니다. 직원들이 좀 그렇게 하면 좋은데 아무리 친절하라고 해도 표정도 안 좋고 친절하게 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저같이 하면 손님도 더 늘고 친절한 가게로 소문날 텐데 말이죠.”

“그래? 손님들은 좋아하겠네. 근데 국밥아 친절하게 하면 손님이 더 늘어날 것 같니?”

“당연한 거 아닌가요? 형님. 당연히 친절하면 손님이 아무래도 더 오겠죠.”

“ㅋㅋ그래? 근데 내 생각엔 식당은 자동차와 같아. 그중 친절을 자동차의 시트로 비유한다면 시트가 엄청 후져서 다시는 타고 싶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시트가 엄청나게 좋다고 손님이 그 차를 또다시 타고 싶어서 찾진 않는다는 거야. 다시 말하면 친절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거지.

누군가는 친절해서 손님이 늘었다고 말하지만 메뉴의 가격과 맞지 않는 친절은 식당을 운영하는데 전체적인 밸런스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어. 직원들에게 과도한 친절을 요구하는 것도 직원들을 괴롭히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친절도 일종의 에너지잖아. 과도하게 되면 부하가 걸리지. 직원이 피곤해져서 쓸데없는 친절로 다른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업주도 거기에 너무 집착해서 오히려 직원들에게 불친절한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하지.

식당은 항상 적절한 밸런스가 필요해. 친절해서 손님이 늘었다는 곳은 사실 증명된 데이터는 없거든. 업주의 감일뿐이지. 그렇다고 친절하지 말란 말은 아니야. '불친절'과 '친절하지 않다'는 좀 다른 이야기야.

손님이 늘어난 이유가 과연 친절해서 그런 것인지, 또 손님이 늘었는데 그 이유가 친절이었는지 아니면 상품력이 그동안 강해졌는지, 그전에 너무 기본도 안 되는 친절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어.

친절하지 못하면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기도 하지만 어느 시점에 가면 친절로 손님을 늘리는 이유가 되기는 어려워.”

“하지만 저는 손님한테 그런 서비스하는 것이 그냥 좋더라고요.”

“그럼 넌 계속 그렇게 해. 직원들에게 강요하지 말고. 직원들은 지금 당장 물 묻은 숟가락 닦아서 수저통에 다시 넣기도 바빠. 그런 그들에게 한가롭게 시간 때우는 손님에게 커피 타주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장이 그렇게 커피 타 줄 시간에 직원 일을 좀 더 도와주는 것이 직원들에게 친절을 유도하는 일은 아닐지 생각해봐. 직원들도 시간이 남아 한가했다면 커피를 타 주지는 않았을까?

네가 커피 타주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다면 그렇게 하면 돼. 근데 그거 꾸준히 문 닫을 때까지 항상 해야 할 거야. 네가 저번에 커피 타 준 손님을 기억 못 하고 티브이를 보거나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그 손님은 네가 이제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리더로서 역할을 하는 사장은 항상 생각해서 행동해야 해.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어떤 것이 더 유리한지 생각해야 할 거야.”

많은 식당 사장들은 이'친절'이라는 부분에서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호소한다. 어느 정도가 친절한 것이고 어느 정도가 불친절한 것인지 기준도 불분명하고, 또 아무리 직원들에게 친절하라고 말해도 직원들은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 어떻게 보면 직원은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손님에게 사장이 원하는 만큼 친절할 이유는 없다.


그러데 과연 그럴까?

내가 아는 고깃집 후배는 인상이 참 더럽다. 식당을 안 했다면 조폭을 하면 딱 어울릴 얼굴이다. 그 고깃집은 손님이 항상 넘쳐난다. 하지만 그 동생은 인상도 더러운데 손님한테 친절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은 아니다. 원래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친구여서 애당초 식당에는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집이 그렇다고 고기가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니다. 

안양에서 횟집을 하는 후배는 인상은 더럽지 않지만 친절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 친구의 친절은 좀 독특하다. 손님이 오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이지만 손님이 식사하는 동안에 그 친구가 해주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받으면 그 친구만의 친절 방법을 알 수 있다.

어떤 대박집 사장님이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친절 덕분에 손님이 많아져 대박이 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진짜 그 식당이 친절해서 손님이 많아졌을까? 어쩌면 그 식당의 음식이 맛있는 데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니 손님이 늘어난 것인데 정작 본인이 손님이 많아진 이유를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닐까?

이렇듯 식당이 잘되는 조건에 반드시 친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서비스 전문가들은 친절하지 못하면 식당 할 자격도 없고 그런 식당은 반드시 망할 거라는 예측을 한다. 그들에게 꼬집히면 어떠냐고 물으면 그들은 꼬집혀보지도 않고 아프다고 말하겠지만 사실 많이 꼬집혀본 사람은 '짜증 난다'라고 말한다. 현실과 예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식당을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친절은 차의 일부인 바퀴와 같다. 바퀴는 너무 후져도 안되지만 너무 좋을 필요도 없다. 바퀴가 너무너무 좋아도 그 차를 살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이렇듯 식당에서 친절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만 너무 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친절은 식당에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는 친절이 돈 안 드는 서비스라고 표현 하기도 하지만 장사를 오래 해보면 이 친절이라는 것도 에너지이기 때문에 결국 많이 쓰면 바닥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직원이 덜 친절한 것이 아니고 불친절하다면 그 직원과 굳이 함께 일할 필요가 없다. 그 친구에게 친절을 몸에 베개 하는 것은 내 경험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좀 덜 친절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타박해서도 안된다. 식당은 그냥 그 식당에 적절하게 친절하면 된다. 

'진짜 친절'은 그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손님도 그 친절을 받아들이고 그 식당이야말로 오래갈 수 있다.

우리 집 손님이 요즘 좀 늘었다고 '내가 요즘 손님한테 친절하게 했더니 손님이 늘었구나'라는 착각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

#하지만

#미소는

#충분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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