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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 쿡 Mar 19. 2020

식당의 모든 것

#계단

계단

1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내가 겪었던 것이 진통인지 성장통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고비마다 마음의 고통과 육체적 고통이 따랐고 큰 고비를 넘기고 나서도 자잘한 어려움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매출은 적지 않았고 동네 맛집 정도의 이름표로 외식업을 계속해서 확장 중이었다. 

근처 매장들 중 싸게 나온 매장들을 수개월 간격으로 잡았고 그 식당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해 보지 않는 메뉴들을 시작했다. 

무리한 확장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다는 욕심에 일을 벌였다. 

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고민해보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 사태가 일어난 후 1년 뒤 일본과 우리나라의 바다가 오염됐다는 소식에 나의 수익원의 기둥이던 초밥집의 매출이 30%가 빠지고 엎친데 덮친 겪으로 겨울이 다가오면서 냉면집의 매출도 바닥을 기었다.  또 경양식집의 주방장이 갑자기 사고를 치는 바람에 매장 문을 한 달 이상 닫아야 하는 상황에 엎친 데 덮쳐 어머니가 암에 걸리고 내 건강까지 악화되어 의욕과 재정은 바닥이 났고 다시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다가왔다. 다시 내 머릿속에는 계단이 떠올랐다. 계단은 오르지 못할 만큼 높아 보였다. 그 높은 계단을 다시 오르기 위해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다. 몇 개월간 그렇게 지속되자 자금의 흐름은 막혔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10년 넘게 장사하면서 한 번도 직원 급여일을 미룬 적이 없었는데 결국 급여일을 미루게 되었다. 

그때 내 입에서 처음으로 "이제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말이 나왔다.

그해 한 해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동안의 무리한 열정으로 투자했던 모든 일들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오래 고민해본 적이 없었고 몸으로 때우든 뭘로 때우든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적이 없었다. 열심히 하는 것을 이기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것이 문제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인의 조언으로 운 좋게도 어찌어찌하여 그 사태는 1년에 걸쳐 해결이 되었지만 내 욕심과 경험에 갇힌 대가는 혹독했다. 


몇 년 전 작은 이자카야를 운영하던 젊은 청년이 거의 망해 문을 닫기 직전에 나에게 연락을 주었다. 

어려운 식당을 도와주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며칠 뒤 그 식당을 방문해 보았다. 직원들과 알바들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영업 중이었다.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열정은 넘치는데 방향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 뒤로 며칠간 이것저것 알려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갔을 때 많은 것들을 실행에 옮겨 놓았고 매장은 기운이 넘쳐갔다. 2년여 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인천에서 꽤 유명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식당 사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며칠 전 그 사장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들을 해왔다. 들어보니 해서는 안 되는 자만심과 허영심에 찬 질문들을 했다. 

이 젊은 청년은 꽤 높은 계단을 만났다(내가 보기에 그에게는 높아 보였을 것임). 그 계단을 내일 당장 오를 수도 있지만 몇 년이 걸려도, 아니 평생이 걸려도 오르지 못할 수 도 있었다. 

내 눈에 그 사장은 성장하는 과정에 '작은 계단’에 갇혔다고 생각되었다.


예전엔 '성장'이라는 것이 마치 '눈이 쌓인 산을 스키 타고 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계속 오르려고 노력하지만 쉽게 오르지 못하고, 열심히 해도 많이 오를 수 없는, 눈이 쌓인 산.

오르는 게 힘들어 잠시 쉬려고 가만히 서 있으면 결국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즉, 안도하고 멈추는 순간 우리는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퇴보하게 된다. 그래도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는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눈이 쌓인 산은 어쨌든 결국 노력하면 언젠가 정상 근처에는 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크게 성공이나 성장해보지 못한 나의 착각이었다. 초반에 성장할 때는 계단이 작아 그냥 경사로 보여 어느 정도 열심히만 하면 오를 수 있지만 성장 후 에는 그 경사가 계단으로 바뀌어 어떨 때는 내가 오르기 버거운 높이의 계단이 나타나기도 한다. 

같은 계단이라도 개인의 능력 또는 환경에 따라 계단의 높이는 달라진다. 나에게 낮아 보이는 계단도 어떤 이에게는 절벽만큼 높아 보여서 그것을 계단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절벽처럼 높은 그 계단도 충분히 성장한 후에는 낮은 계단로 바뀌어 보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계단을 두고 어떤 이는 단숨에 오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평생 동안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 이란 긴 인생의 수많은 성장 계단에서 작은 계단일 뿐이다.

우리들은 자주 이렇게 말을 한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 손님이 알아주겠지.”

이 말은 자신이 어떻게 하면 성장할지 정확한 정보도 없는 데다가 그것을 찾는 것도 귀찮아 자신이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될 거라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생각이다. 식당으로 말한다면 손님이 뭘 좋아하는지 별 관심 없이 '나는 내 방식대로 그냥 무조건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뜻이다. 

생산고 소비를 동시에 해야 하는 외식사업은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하며 성장이든 성공을 따지기 전에 지금은 경쟁자가 너무 많아 그들을 제치고 등수 안에 드는 것은 그전보다 훨씬 더 힘들어졌다. 이런 시대에 그런 무책임한 말로 후에 자신의 실패를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미리 방어막을 치고 자신의 노력을 정당화하려 한다면 식당은 애당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이제 열심히 해서 결과를 보장받는 시대는 갔다. 그것이 보잘것 있든 없든 원하는 것을 찾아 주는 영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절벽 같은 계단을 올라서는 과정에 숨이 턱까지 차올라 꼴딱거리는 순간이 올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 무조건 타고 올라갈 것이 아니라 그 계단이 얼마나 높은지 또 어떤 장비로 오를 수 있는지 누구와 함께 올라야 오를 수 있을지 전략을 짜야한다. 

어차피 그 계단을 넘어야 비로소 이마의 땀을 닦고 다음 계단을 오를 준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성공과 성장

#계단에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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