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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 쿡 Mar 18. 2020

바가지는 좀 채워야 올라오지!

#마중물

마중물

“요즘 배달은 어떠니?”

“배달이 좀 늘었어요. 배달료를 안 받으니 늘더라고요. 그래서 배달 매장을 하나 더 낼까 생각 중입니다.”

지금 내가 알고 지내는 배달과 홀을 병행하는, 잘 나가는 식당 사장들은 대부분 배달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주호야, 배달은 지금 더 이상 키워서는 안 돼. 배달은 너도나도 다 손대려고 하고 있어.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닌 듯하다. 되도록 배달보다는 홀을 활성화하는데 힘을 더 쓰도록 해라. 배달 매출이 커졌다가 배달 시장이 망가져서 배달을 줄일 경우 홀을 살리기가 버거울 거야. 그러니까 남들 하는 거 따라가지 말고 홀에 좀 더 힘써봐.”

“아. 그래요? 저는 배달을 더 해서 매출을 늘려보려고 했어요.”

“정답은 없지만 내 느낌으로는 지금 배달 시장은 좀 기형적이야. 난 그런 거에 손 안대거든.”

“이 식당은 지금 빈사상태야. 전체 매장을 바꾸는 극단의 조치가 없으면 살리기 힘들 거다.”

“그래서 저도 형님처럼 초새우를 직접 삶아서 제공해볼까 해요.”

“지금 그건 너네 매장을 살리기에 힘이 너무 약해. 그런 자잘한 마케팅적인 요소나 기술적인 요소로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그거보다는 큰 맥을 바꿔야 해.”

어제 사고로 얼굴색이 안 좋았던 그는 점점 더 표정이 굳어졌다.

“너 이 가게 계속할 거야?”

“가게는 일단 내놓은 상태예요.”

“그래? 그럼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자. 가게를 뺀다고 치고 가게 빠지면 손에 얼마가 쥐어지니?”

“권리를 잘 받으면 4000만 원 정도고 못 받으면 1000만 원 밖에 안돼요.”

“그래? 그럼 그 돈으로 다른 곳에 가서 다시 식당 할 수 있어?”

“‘……못하겠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 봐야 이 매장 정도 크기나 배달 전문 매장 정도일 거야. 그렇다면 내가 아까 말한 대로 빚을 더 내서 여기에 한 1500 정도 투자해 이 가게를 살리는 게 피할 수 없는 답 아니겠냐?”

남은 라면 국물을 다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하며 귀를 기울였다. 말을 꺼내려 하자 한쪽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부녀 손님이 계산을 해달라며 카드를 건넸다. 그 남자 손님은 카드를 건넸지만 일어서지는 않았다.

그러자 후배는 카드를 받아 들고 두 발짝도 안 되는 카드기로 카드를 긁고 대필 사인을 해주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남자 손님은 거만한 태도로 그렇게 하라며 이를 쑤셔댔다.

손님이 나갈 때까지 서서 기다렸다가 손님이 나가자 큰소리로 인사하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물론 나도 했던 것들이지만…

“너 지금 망해서 보증금 1000만 원 빼고 3000만 원을 까먹는 경우와 1500만 원을 어떻게든 더 빌려서 다시 하다가 4500에 망하는 경우, 그 둘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니?”

“…네, 그게…”그는 말을 잇지 않았다.


국민학교 시절 우리 집은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세를 들어 살았다.

그 집 마당의 중앙에 물펌프가 있었고 아침에는 줄을 서서 그 펌프로 8명이 줄을 서서 사용해야 했다. 

그 펌프를 사용하여 물을 퍼 올리기 위해서는 마중물을 사용해야 한다. 그 마중물은 어제 받아놓은 물을 펌프질 시작 전 펌프 위에 넣어서 사용하는데 큰 바가지 하나의 양정도 붓지 않으면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또 양이 많다고 해도 물을 한 번에 붓지 않고 찔끔 부어서 펌프질을 하면 그 또한 물이 올라오지 않았다. 

난 원리는 몰랐지만 그것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1년간 어려움 속에서도 손님을 끌기 위해, 더 많은 매출을 내보려고 꽤 많은 시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물 펌프에 붓는 마중물이 너무 부족하면 물이 올라오지 않는 것처럼 그가 부어온 마중물은 물을 끌어올리기 부족한 양의 물이었다.

보통 절실함은 극적인 반전을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들을 소극적으로 만들어 '이 정도만 쓰면 되겠지...'로 마중물의 양을 줄이도록 유혹한다.

그들은 절실해질수록 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중물의 양을 점점 줄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중물마저 바닥이 났다. 이런 경우 사업을 빠르게 접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었다. 


두어 달 후 그가 연락이 왔다. 

며칠 전 내가 조언한 대로 그는 사업을 빠르게 접기로 접었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남은 식자재를 팔 수가 없어 내가 받아 사주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왜 제가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요 형님."

"... 후회는 하지 말아라. 다 과정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열심히 일당직으로 미친 듯이 일을 다닌다고 한다.


#물올라올 때

#열심히

#펌프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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