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문화예술 사업의 성과를 논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이번 사업으로 생산 유발 효과 250억 원, 고용 창출 효과 500명을 달성했다.” 이런 수치들은 사업보고서와 언론 기사에 반복적으로 인용되며, 마치 사업의 성공을 보증하는 공식 인증서처럼 기능한다. 또한 예산심의 과정에서도 강력한 근거로 활용된다. 그 결과 문화정책의 정당성과 가치가 숫자로 환원되어야만 인정받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른바 경제 유발 효과는 특정 산업에 공공자금이 투입되었을 때 그 파급 효과로 생산이 얼마나 촉진되고 고용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계량적으로 추정하는 분석 방식이다. 이때 활용되는 기본 틀은 산업연관표(Input–Output Table)로 산업 간 투입과 산출의 상호 관계를 수치화한 통계자료를 활용해 계산한다. 문제는 이 분석 구조가 문화예술의 특성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업연관표는 표준화된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을 전제로 하지만 창작 활동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며 결과를 수치로 환산하기 어렵다. 또한 문화적 가치는 단기간에 가시화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와 개인의 삶 속에서 비가시적으로 축적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제 지표만으로는 문화의 고유한 속성과 사회적 파급력을 온전히 측정할 수 없다.
출처: 경기일보 누리집
게다가 이러한 분석 틀은 종종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를 만들어낸다. 단발성 축제가 수백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냈다고 홍보되지만, 실제로는 지역 예술 생태계나 창작 기반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고용 창출 효과로 제시된 수치 또한 행사 기간의 단기 아르바이트나 임시 고용 인력을 포함한 것으로 지역 주민의 지속적 참여나 창작자 중심의 순환 구조는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유발 효과라는 지표는 실체가 불분명한 정치적 수치로 소비되거나, 문화정책의 본질적 목표보다 예산 확보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숫자는 화려하지만, 지역의 문화적 토양은 오히려 메말라가는 역설이 벌어지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수치 중심의 논리가 문화정책의 방향 자체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계량화가 쉬운 사업, 정량적 성과가 명확한 사업이 우선되면서 실험적 예술 프로젝트나 시민 주도의 자발적 문화 활동, 공동체의 관계망을 복원하는 사업은 ‘성과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 자율성, 창의성이라는 핵심 가치는 효율성과 경제성의 논리 앞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미 국제적 차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2019년 ‘문화 2030 지표(Culture 2030 Indicators)’를 발표하며, 문화정책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정량적·정성적 지표를 통해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지표에는 기후 대응과 회복력, 문화 거버넌스, 문화예술교육, 사회적 응집력을 위한 문화 등 다양한 항목이 포함되어 있으며, 문화의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포괄하는 평가 체계를 지향한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와 문화재단은 시민 참여율, 거버넌스의 다양성 등을 새로운 성과 지표로 도입하는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문화정책이 수치 중심의 경쟁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시도들을 제도적으로 통합하고, 문화정책의 평가 체계를 가치 중심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다.
문화정책의 효과를 다차원적으로 평가하려면 문화가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회복시켰는가?’, ‘공동체의 상호 이해를 얼마나 증진시켰는가?’, ‘개인의 표현과 참여를 통해 주체성을 어떻게 확장시켰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 문화적 역량,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 참여의 공정성 등을 아우르는 복합적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 물론 수치는 정책의 결과를 파악하는 데 일정 부분 유용한 도구다. 그러나 숫자에 갇힌 문화정책은 문화의 본질을 왜곡한다. 이제는 사람의 변화, 공동체의 재구성, 창의성의 순환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평가 틀이 필요하다.
문화는 경제의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며, 문화정책은 그 삶을 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