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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메이 Oct 14. 2015

아파트에는 빨래를 널면 안 되나요?


햇볕에 빨래 너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는 단 하나의 이유가 바로 햇빛에 보송보송하게 말라가는 빨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정도다. 며칠 전 삼시세끼 2에서도 차승원이 볕 좋은 날 수돗가에서 빨래를 한 다음에 가지런히 널어놓고 뿌듯해 하는 풍경이 나오지 않았는가? 햇빛이 질척한 마음마저 말려줄 것 같은 날, 이불이며 밀어두었던 옷가지들을 꺼내와 세탁하고 탁탁 털어 널어놓았을 때의 그 상쾌한 기분이란!  그런데 현실은 만재도도, 전원주택도 아닌 아파트. 그마나도 볕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는 경우 빨래를 충분히 햇빛에 내놓고 말리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햇빛의 힘이 약해지는 겨울에는 마르다 말다 해서 꿉꿉한 냄새가 나기 일쑤다. (아파트에서도 햇빛이 잘 드는 집이 있다지만, 모든 세대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래된 아파트에서 본 저 풍경이 너무 반가웠다. 베란다 창가에 화분을 내놓을 수 있는 화분받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이 아파트의 세월을 짐작해볼 수 있다. 가지런히 널려 바람에 날리는 수건이며 내의가 정겹다. 사실 요새 아파트는 베란다를 확장형으로 한 경우가 많아 화분 하나 내놓기도 쉽지 않으니 빨래 너는 건 아예 상상도 하기 힘들다.


홍콩에 갔을 때 가장 신기했던 풍경이 바로 집집마다 거리 쪽으로 빨래를 내놓아 말리는 것이었다.(이미지 펌)


그나마 햇빛 좋은 날, 아파트에서 할 수 있는 건 이불 널어두는 것 정도다. 그런데 요즘은 이나마도 예의가 아니라는 말이 많이 들린다. 이불을 터는 것도 창문을 열고 있는 아래집에 먼지가 들어가니 안 되고(여기까지는 그나마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이불이나 빨래는 너는 것은 '아파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일 뿐더러 '미관을 해치는 행위'라는 거다. 실제로 온라인 상에서는 '당 아파트는 서민아파트가 아닌 평수가 큰 고급아파트입니다. 낮 시간에 베란다에서 옷이나 이불을 터는 행위는 시민아파트에서나 볼 수 있는 행위이니 낮 시간이 아닌 밤 시간에 해달라'는 한 아파트의 안내문이 돌아다녀 믾은 이들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했다. 집값 떨어진다고 빨래를 널지 말라고 하는 아파트도 있다고 하니 점입가경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슬프다.

언제부터인가 아파트는 사람이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곳이요, 떠날 때 집주인에게 시세차익을 안겨주는 것이 목적인 '물건'이 되어버렸다. 현실이 그렇다고 해도, 빨래 안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야박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기 전에 햇빛에 빨래를 잔뜩 널어놓고, 햇빛을 쬐면서 커피 한 잔 하며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는 여유를 부려보고 싶다. 그냥 보내기엔, 이 가을의 햇빛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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