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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메이 Aug 12. 2015

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

돼지저금통의 추억

"돼지 잡자!" 그날은 마치 가족의 축제날 같았다. 

우리는 매년 꼬마돼지 2마리와 왕돼지 1마리씩을 키웠다. 꼬마돼지는 각자가 스스로 조금씩 모으는 동전으로, 왕돼지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받은 돈과 부모님이 주머니를 털어 모아주는 동전으로 채워졌다.

술 한 잔 하고 기분좋은 밤이면 아빠는 "기분이다!"를 외치며 주머니 가득 짤랑이는 동전을 자랑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달려들어 그 동전을 받아 돼지에 넣기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재미에 아빠는 일부러 동전을 많이 갖고 오셨던 것 같다. 


1년에 한 번, 빨간 돼지들의 배를 엄숙히 모여앉아 가른다. 

10월, 50원, 100원이 제일 많고 500원은 일단 크기부터 다르니 기분좋고 1,000원짜리는 존재만으로도 감격 그 자체!

꼬깃꼬깃 접힌 그 지폐를 열심히 펴고 다리기까지 해서 가지런히 늘어놓고, 혹여나 틀릴까 액수를 세고 또 세고 그날 밤은 일단 잔다. 


다음날 아침, 금액별로 비닐로 꽁꽁 싸맨 동전을 영차영차 들고 은행으로 간다. 

창구 언니들은 꼬마 손님에게 유달리 친절하다. 

"우와, 많이 모았네! 부자됐네!"  그 돈을 통장에 넣고 특별 간식 하나씩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즐거웠던지.


동전이 안 쓰이는 시대, 다른 건 그다지 아쉽지 않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을법한 추억 하나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10원짜리는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 하나 없는 천덕꾸러기가 됐고

계산을 현금으로 하는 게 오히려 희귀한 시대가 되었으니까. 

은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전을 바꿀 수 있는 시간대가 따로 지정되어 있고

반가워하기는커녕 귀찮아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 위에도 황금빛 꼬마돼지 한 마리가 웃고 있다. 

지금이야 푼돈 아쉬울 때 가끔 꺼내쓰고, 동전으로 짤랑거리는 지갑이 거추장스러울 때만 이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돼지 한 마리 쯤은 책상 위에 놓고 있어야 든든하다. 

온 가족이 모여 돼지잡던 밤이 괜히 그리워진다. 


다들, 돼지 한 마리씩 키우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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