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메이 Aug 13. 2015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

그리운 사람을 만나는 곳,  메모리얼 파크를 가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서정주, 푸르른 날


꼭 푸르른 날이 아니어도 그리운 사람이 생각날 때가 있다. 머릿속에 그 사람을 떠올리며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사진을 꺼내 보기도 하고, 차 한 잔을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만약 납골당이나 묘지 외에 다른 곳에서도 함께 그 사람을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꼭 누군가를 추모하거나 애도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영국에 갔다가 그런 곳을 발견했다. 

키 낮은 가로등에 색색의 풍선이 매달려 있다. 아이들이 손을 뻗으면 손쉽게 만질 수 있을 만한 높이다. 공원이 워낙 많은 영국이지만, 이런 가로등은 처음이다. 

걷다보면 한 쪽에 작은 수로가 조성되어 있다. 맑은 물 속에 누군가의 이름을 새긴 돌들이 가득하다. 모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이다. 수로 주변에는 오늘 아침에 꽂아두고 간 것처럼 싱싱한 꽃다발들이 이곳저곳 놓여 있고, 'Welcome to my garden'이라 적힌 돌 옆에 귀여운 아기의 사진이 함께 자리한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적은 편지도 꽃다발 옆에 꽂혀 있다.


이 공원은 영국 미들랜드 지역 버밍엄에 위치한 '메모리얼 파크'. 일찍 세상을 떠난 발달 장애 아이들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한 공간이다. 아이들과 상관없는 누구나 편하게 공원에 올 수 있지만, 공원 곳곳에는 이처럼 먼저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늘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공간은 살아 숨쉬기 마련이다. 그 공간 구석구석에 많은 이의 사연과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힘들 때마다, 혹은 생각날 때마다 이 곳에 찾아와 꽃다발을 바치고, 함께한 기억을 떠올릴 테다. 

가까운 데 그런 공간 하나쯤은 있어도 좋겠다. 꼭 추모 공원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데에 공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작가의 이전글 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