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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메이 Aug 19. 2015

주저앉고 싶은 날, 꺼내보는 사진 한 장

요즘은 거리를 걸어도 어디 한 군데 편안하게 앉을 데가 마땅치 않습니다.

괜찮은 길목에는 어김없이 가게들이 내놓은 파라솔이나 테이블들이 놓여 있습니다.

음료라도 한 잔 사서 올려놓지 않으면 마음 편히 앉아있기 힘들지요.


그뿐인가요. 공항이나 터미널, 공원의 의자에는 가운데 칸막이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누워서 자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조치라지요.

어디선가 밖에서 한 번이라도 밤을 지새워본 사람들이라면, 그 의자 가운데에 있는 쇳덩이가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불편한지 알 수 있을 텐데요.


발 뻗고 누울 자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앉을 자리 하나 찾기 힘든 세상.

유난히 힘들고 지친 날이면

제주 바다에서 마주친 의자 사진을 꺼내어 봅니다.

앙증맞아서 어른인 제가 앉으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기도 하고

의자 한 개는 아예 바닥이 없지만

높이가 서로 다른 의자 두 개가 함께 놓여 있는 여름 바다의 풍경은 정답기만 합니다.


여기는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니까요.

바다가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의 품을 내어주는 것처럼

그 바닷가에 의자 2개 놓여 있습니다. 

이정록 시인의 시처럼, 사는 게 뭐 별거겠습니까. 

꼭 결혼하고 애 낳고 살지 않아도 모든 사람에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요.


누군가와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서로 등 대고 기대있는 것

누가 옆에 없더라도 의자 하나 비워두고 기다리는 것,

그러다 그 의자에 영영 누가 오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쉬어가지 않겠습니까.


미워하는 마음도, 원망하는 마음도, 힘들고 답답한 이야기도

곁을 내어주는 사람 옆에서라면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을 테니까요. 


새삼스럽게 이정록 시인의 시를 읽어봅니다. 

함께 읽고픈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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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가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갈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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