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지원책과 홍보 전략을 앞세워 ‘국제회의 개최 도시’라는 타이틀을 얻으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이 뜨겁다. 하지만 통계청과 한국관광공사의 <2023년 국제회의 현황 조사>에 따르면, 국제회의 유치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치안 및 안정적인 사회환경'(76.8%)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도시의 국제적 인지도'(61.2%), '고급 숙박 및 회의 시설'(56.7%), '편리한 교통 인프라'(52.2%), '풍부한 문화 및 관광자원'(48.3%) 등도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반면 '정부 및 공공기관의 지원 정책'은 23.1%로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국제회의 유치를 위해 보조금·인센티브·임대료 감면·홍보비 지원 등 행정적인 수단을 앞세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국제회의 유치를 단기적인 성과 중심으로 흐르게 만들어 안정적인 치안·편리한 교통·질 높은 인프라·도시의 문화적인 매력 등 장기적으로 강화해야 할 요소를 뒤로 미루게 한다. 그 결과 일회성 인센티브로 단기 실적을 채우려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이러 식의 행정이 정치적인 성과주의와 결합하면 전시행정으로 변질될 위험이 커지며 유치 건수, 개최 규모, 참가자 수 같은 양적인 지표만 부각되고, 참가자의 체류 시간·소비 확대·지역 브랜드 가치 상승·주민 참여 확대 등 질적인 지표는 소홀해진다. 결국 국제회의가 지역의 실질적인 역량을 키우기보다 일회성 이벤트로 소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원 정책 중심의 한계와 새로운 접근
지원 정책 중심의 유치 전략은 지역 고유의 문화와 자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국제회의는 도시의 독특한 문화와 장소성을 활용할 때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현재의 지원책들은 보조금과 편의 제공 수준에 머물러 지역의 역사, 예술, 시민사회와 결합한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지 못한다. 이런 방식은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노린 형식적인 회의 유치를 부추기는 부작용도 낳는다. 주민들은 행사 기간의 교통 혼잡, 소음, 예산 낭비만 떠안는 경우가 많고, 단기적인 경제 효과를 강조하는 보고서들은 넘쳐나지만 행사 종료 후에 실제 지역 경제 활성화의 효과를 추적하거나 평가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제회의를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만들려면 유치 경쟁과 정책 지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구조적인 기반 강화와 문화적인 차별화에 투자해야 한다. 치안·교통·숙박·회의 시설 등 기본 인프라를 꾸준히 개선해 안전성과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이 국제회의 도시의 신뢰도를 높이는 길이다. 아울러 지역의 역사·예술·자연·시민사회를 국제회의 콘텐츠와 연계해 참가자가 지역문화를 직접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체류 시간과 지출을 늘리고 도시 브랜드의 가치를 강화할 수 있다. 유치 건수나 참가자 수 같은 양적인 지표 대신 참가자 만족도·지역 경제 파급 효과·고용 창출·지역 기업 참여율·주민 인식 개선 등 질적인 지표를 도입해 정책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컨벤션 센터·지역 기업·시민 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행사 준비와 운영 과정에 지역 사회가 실질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국제회의를 지역의 역량을 키우는 학습과 협력의 장으로 전환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국제회의 유치의 양적인 실적에만 집착하면 지원 정책은 세금 낭비와 전시행정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제는 숫자 중심의 유치에서 벗어나 국제회의가 지역의 가치와 미래 전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프라를 강화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와 산업을 함께 성장시키는 전략이야말로 국제회의 유치를 지역발전의 진정한 동력으로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