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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아 Jul 23. 2019

선명함에 관하여

나는 무엇을 그토록 가지고 싶어했었나.

어제 사무실에서 무슨 글을 읽다가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는 문장을 보고 멈칫했다. '선명'이라는 단어가 종일 혀 끝에서 어석거렸다. 색깔이나 화질 외의 무언가를 선명하다고 묘사해 본 것이 언제쯤이었더라. 미래와 선명이라는 단어를 한 문장에 두고 말해 본 적은. 애초에 있기는 했었던가.


직접 말한 적이야 없었다지만 나는 언제나 선명한 것들을 동경해왔다. 선명한 취향, 선명한 개성, 선명한 진로와 선명한 자신감 같은 것들. 아무리 눈을 가늘게 떠도 뿌옇게만 보이는 미래 가운데 뚜렷한 것을 하나라도 마련하고 싶어 통장 잔고를 늘리는 데 열을 올려보기도 했고 새벽까지 일에 매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건 아무것도 선명하지 않다는 사실 뿐이었다.


갓 청소를 끝낸 서랍장처럼 잘 정리되어 있던 어린 시절의 단순한 나날이 그리웠다. 그날의 생각을 그날 끝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인생은 정답이 없어 재미있는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뭔가 실재하는 것을 붙잡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아무데나 눌러도 맑은 소리를 내는 피아노 건반 같던 삶은 갑자기 손바닥만한 그늘 하나 없는 불지옥으로 변했다. 이래서 신을 믿는구나, 생각했다. 불안감에 이리저리 마음을 부딪히다 참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도 눈에 보이고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이따금 결혼한 친구들의 미소를 보면, 자신의 아이를 향하는 눈길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남은 삶을 일관되게 지탱해줄 가치를 최소한 하나는 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도 통할까. 나는 그것조차도 확신하지 못한다. 뿌연 것을 불안해하면서도 덮어놓고 하나를 믿을 박력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두려움은 아마도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사는 게 매일 똑같이 팔다리를 휘저어도 어느 날은 자유 수영 같다가 어느 날은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요즘 좀 오래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그 기분을 벗어나기 위해 이걸 해본다 저걸 시작한다 부산을 떨고 있지만 사실 그 모든 게, 뭐가 좀 보이지 않을까 해서 눈을 한껏 가늘게 떠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이걸 해결해주는 건 시간 뿐이라는 것도.


최근 한동안 묵혀 두었던 직소 퍼즐을 다시 꺼내 맞추고 있다. 도대체 이게 이 그림의 어디에 있다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던 조각이 틀림없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걸 보면 기분이 조금 부푼다. 그래, 이 정도면 됐지. 하루하루가 다시 피아노 건반처럼 성실하고 가지런해질 때까지 퍼즐이나 맞추고, 조금 더 원색에 가까운 원피스를 고르고. 그러다 보면 뿌옇던 것이 어느새 파스텔톤으로 보일 날도 있겠지.


그냥 문득 발견한 '선명한 미래'라는 말이 내가 한때 갖고 싶어 했던 것들을 상기시켜서, 두서없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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