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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아 Jan 09. 2020

01. 처음이 이렇게 많은 게 처음이라

차승원이 내 터키 여행을 어떻게 구했느냐면


새벽 한 시의 이스탄불 공항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풍경은 여느 공항과 다를 바 없었으나 읽을 수 없는 글자들과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사방에 넘쳤다. 환승 시간을 포함해 근 하루에 가까운 비행 시간이 길다고 생각했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20시간 전만 해도 인천에 있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시내로 나가는 지하철은 아침 6시 쯤부터 움직인다고 했다. 백팩 끈이 어깨를 짓눌러왔다. 좁은 의자에 긴 시간 갇혀 있었던 팔다리는 비명을 질렀다. 편안한 장소를 찾아 좀 쉬고 싶었다. 


조금 헤맨 끝에 너무 어둡지 않고 출입구에서 멀지 않은 빈 의자를 찾을 수 있었다. 티나지 않게 팔꿈치로 안주머니 속 지갑과 여권의 위치를 확인한 뒤 내 몸뚱이만한 백팩을 보물단지처럼 끌어안고 앉았다.


여행객, 특히 아시안 여성이 더 자주 부딪힌다는 온갖 위험하고 무서운 일에 대한 경고를 눈이 빠지도록 읽고 온 터였다. 짐을 잃어버리면 여행도 끝이다. (나중에는 차에 짐을 깜빡하고 놓고 내릴 정도로 방만한 인간이 되었지만...그것은 아직 한참 뒤의 일이다.)


비행기 안에서는 너무 피곤해서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잔뜩 긴장을 하고 있으니 잠도 오지 않았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도둑놈 같이만 보여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안테나처럼 고개를 휙휙 돌려대길 한참, 주변의 누구도 나를 노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정도 깨달은 다음에야 핸드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날아오는 동안 일정을 통째로 바꿔버린 터라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알아 봐 두어야 할 것이 꽤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트램을 갈아 타고, 무슨 역에 내려서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를 확인했다. 첫 차를 타고 출발하면 점심 전쯤 첫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았다.


알아볼 것은 다 알아봤는데도, 첫 차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까딱 졸다간 제시간에 못 깰 것 같아 잔뜩 웅크리고 가방을 쥐어잡은 채 내리감기는 눈을 비비며 핸드폰에 미리 받아 온 드라마를 틀고 이어폰을 꽂았다. 차승원과 김선아가 나오는 '시티홀'. 09년 드라마였으니 이 여행 당시에도 이미 3년은 지난 상태였는데, 뒤늦게 빠져서 열심히 보던 중이었다. 못 본 에피소드를 틀어 열심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에 큰 그림자가 지더니 두꺼운 손가락이 나타났다.


"I Know him." 


내 뒤 의자에서 자는 줄 알았던 터키 아저씨가 어느틈에 내 쪽으로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었다. 소스라쳐서 비명도 못 지르고 얼어붙었는데, 가만 보니 이 아저씨는 나보다 내가 들고 있는 휴대폰, 정확히는 그 화면 안에 있는 차승원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나 이 배우 알아. 너 한국인이야?"

"응. 근데 어떻게 알아?"

"한국 드라마 좋아해. 이 사람 <아테나> 나온 사람이지?"


이스탄불에 도착한지 세 시간도 안 지나서 차승원을 알아보는 터키 아저씨를 만난다는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심지어 난 아테나는 보지도 않았는데. 


어쨌든 그렇게 차승원 칭찬으로 입을 튼 우리는 각자의 차 시간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인천-모스크바-이스탄불의 루트를 통해 왔는데, 그는 모스크바에서부터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했다. 모스크바-이스탄불 루트는 대부분이 터키인이었던 터라 몇 안 되는 동양인인 내가 눈에 띄었던 모양이었다. 


러시아와 터키를 오가며 일한다는 그는 처음에 내가 고려인이거나 아시안계 러시아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비행 시간이 10시간을 넘어선 후 떡지기 시작한 머리를 가리려 한국에서 방한용으로 가져간 귀 덮는 모자(엄마와 내가 '개장수 모자'라고 부르는)를 쓰고 있었는데, 블라디보스톡에 사는 고려인들이 그런 모자를 쓴다나 뭐라나. 블라디보스톡에 대해 1도 몰랐던 내가 들어도 아무말인 것 같긴 했지만 그냥 웃어줬다 ㅎㅎ


바로 이 모자다. 모스크바에서 환승 중 처음 쓰고서 찍은 컷.


여튼 그랬던 내가 자기 앞자리로 와서 앉더니 차승원이 나오는 드라마를 틀어 보길래 괜히 반가워서 아는척을 해 봤단다. 핑계김에 그에게 내가 확인한 차편이 제대로 된 것인지도 물어보며 알차게 수다를 떨었다. 물론 언제고 낌새가 이상하면 도망갈 생각에 다리 한 쪽은 길게 뻗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는 그냥 말하기를 좋아하는 터키 아저씨일 뿐이었다. 몇 살인지, 직업은 뭔지, 왜 터키에 여행을 왔는지(여행 내내 만난 현지인들의 99%는 이걸 물었다), 어디에 갈 건지까지 싹 호구조사를 한 뒤, 여행 중 누가 국적을 묻거든 그냥 '코레(한국)'라고 하지 말고 '규네이 코레(남한)'라고 대답하라고 알려줬다. 그러면 터키를 더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일 거라고. 이것도 믿거나 말거나지만 여행 내 잘 써먹긴 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그가 먼저 가야 한다며 일어났고, 나는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기분좋게 두어 시간을 더 기다렸다. 잔뜩 긴장해 굳어 있던 팔다리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맞지, 여기도 사람 사는 데구나. 시작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정확한 순서는 기억나지 않지만 공항에서 연결된 지하철을 타고 트램을 갈아탔던 것 같다. 내려서는 버스를 타고, 페리를 탄 채 바다를 건너고, 또 버스를 탔다. 



버스채로 올라탄 페리. 얼핏 보면 석모도 가는 길 같음.


이제 더이상은 아무것도 못 타!!!!!하고 비명을 지르기 직전이 되었을 때쯤 첫 목적지, 부르사에 도착했다. 인천 집을 나선 뒤 거의 30시간 정도가 되었을 즈음이었다.


30시간 만에 도착한 첫 목적지, 부르사.


시내의 적당한 호텔을 골라 체크인했다. 얄팍한 지갑을 생각하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게 합리적이었지만 오늘은 때려죽여도 푹신한 침대가 있는 조용한 방에서 쉬어야만 했다. 


긴장이 풀리니 뒤늦게 허기가 밀려왔다. 도착한 후 먹은 거라곤 버스를 타고 오며 집어먹은 과자 몇 쪼가리가 전부였다. 대충 씻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끌고 숙소 앞 상가로 나갔다.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불가에 돌리고 있는 되네르 케밥집이 눈에 띄었다. 


그래. 터키의 첫 끼는 케밥이 안성맞춤이지. 양고기와 닭고기 중 고르라기에 뭐가 더 맛있냐고 했더니 양이란다. 그걸로 달라고 하니 내 팔뚝 반만한 빵을 갈라 고기를 잔뜩 넣어주었다. 


동네 날라리처럼 비닐봉투에 케밥을 꽂은 채 씩씩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봉투를 찢으니 요란한 고기 냄새와 향신료 냄새가 가득 퍼졌다. 갑자기 겁이 났다. 난 그 전까지 양고기를 한 번도 먹어본 일이 없었다. 냄새가 심하다는 말에 지레 겁먹고 양꼬치 같은 안주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다.


그래도 터키로 온 이상 양고기를 한 번도 안 먹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호기롭게 첫 식사를 양고기 케밥으로 고른 것인데, 아....일단 닭으로 시작할 걸 그랬나. 착잡한 마음으로 부담스럽게 큰 케밥을 쳐다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 입을 베어물었다. 꾹꾹 씹어 삼키고 나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터져나왔다.


"와 이거 미쳤네..."


양고기를 못 먹는 사람에서 없어서 못 먹는 사람으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난생 처음 외국으로 나와서 처음 보는 차승원의 터키 팬과 이야기를 나누고, 처음 보는 동네의 처음 간 호텔에 앉아 처음으로 양고기 케밥을 게 눈 감추듯 먹은 날.


8년 전의 1월 어느 날을 이렇게 어제처럼 또렷이 기억하는 건, 스물 다섯 인생에 처음 해 보는 게 그렇게 많은 날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출발 전의 계획대로였다면 난 첫날을 이스탄불에서 보냈어야 했다. 그런데 이스탄불에서 몇 시간이나 떨어진 부르사로 오게 된 건, 앞서 말했듯 터키까지 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 계획이 통째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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