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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아 Dec 23. 2020

02. 신과 만나는 춤

내가 부르사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터키의 첫 도시는 부르사(Bursa)였다.


오스만 제국의 옛 수도였던 부르사는 상당히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자기하고 고즈넉한 맛이 있었다. 외벽이 분홍색, 노란색, 연두색으로 칠해진 집들과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 그 사이로 퍼지는 아잔 소리까지. 터키에 도착한 지 만 하루도 되지 않은 내게는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풍경이 생생하게 다채로웠다.

 


이렇게 색이 예쁜, 오래된 집들이 골목마다 가득했다.



이곳 사람들에게도 나는 눈에 띄는 존재였다. 부르사는 흔히 셀축-파묵칼레-안탈리아로 이어지는, 터키의 일반적인 관광코스에 잘 포함되지 않는 곳이었기에 동양인 여행객은 흔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디를 가든 힐끗거리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아이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면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가게에 들어가면 사장님들이 아는 영어를 총동원해 말을 붙여 왔다. 예상치 못한 분위기였으나 관종기가 다분한 내게 이 친절을 동반한 관심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ㅋㅋㅋ



페리에서 만난 아저씨는 내 호구조사를 마치더니 특이하게도 자기를 찍으라고 했다. 저 자신만만한 표정 ㅋㅋㅋ



사실, 처음부터 부르사에 들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계획은커녕 출발 일주일 전까지는 이 도시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터키의 첫 날을 여기서 보내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춤.


본래 나는 3주 동안 터키를 시계방향으로 크게 반 바퀴 돌 예정이었다. 이스탄불에서 4-5일 정도 체류하며 현지 분위기를 조금 익힌 다음 사프란볼루, 아마시아, 카파도키아, 안탈리아, 셀축, 파묵칼레 같은 서부와 중부 도시에 가 볼 계획을 세웠다.


 

원래 계획했던 여행 방향과 범위는 대략 이러했다.



그런데 출발 며칠 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본 터키 어느 지역의 희한한 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온통 하얀 옷을 입은 남자들이 같은 자리에서 하염없이 빙글빙글 도는 춤.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 수피즘의 종교 의식인 세마(Sema)의 백미, 수도승들이 추는 수피(Sufi) 댄스라고 했다. 대단히 어려운 동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흔들림없이 한 자리에서 수십 분을 돈다는 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일이었다. 뭔가를 얼마나 진심으로 믿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 감정이 궁금했다. 직접 보고 싶었다.


콘야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했으나 위치가 애매했다. 며칠 동안 가이드북과 웹사이트를 뒤진 끝에, 이스탄불 근교의 소도시 부르사에서도 수피 댄스를 볼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여기로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지도와 가이드북을 펴 놓고 어떻게 해야 가 보고 싶은 곳을 다 갈지 고민했다. 원래 가려던 방향대로 가자면 부르사를 맨 마지막에 넣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자니 이래저래 계획한 것이 꼬이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쉬는 관광지에 일요일에 도착한다든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오만가지 경로를 다 넣어보던 나는 이스탄불이 가까워질 무렵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오로지 부르사를 위해 여행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는 것이었다 ㅎ



수정한 경로. 물론 이것도 나중에 또 바뀌게 된다...



지금처럼 숙소와 교통편을 예약해놓고 떠났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지만, 앞 편에서 말했듯 나는 첫날 숙소조차 예약하지 않은 채 왕복 항공권만 달랑 들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런 사연으로 나는 이스탄불에 도착한지 약 10여시간 만에 산송장이 되어 부르사에 떨어졌던 것이다.


.


터키 여행 둘째 날. 푹신한 침대에서 하룻밤을 푹 자고 난 후, 호텔 주인이 추천해 준 카페와 공원, 유적지를 돌아보며 해가 지기를 기다리다 마을 문화센터로 향했다. 여기서 수피 댄스를 본 다음 곧바로 야간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떠날 작정이었다.


공연장은 아담했다. 객석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남자는 1층, 여자는 2층. 남녀 동석을 금하는 이슬람 율법 때문이라지만, 혼자 다니는 여성 관광객인 내게는 차라리 그게 편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삼삼오오 모여있던 현지인들의 눈이 모조리 내게 쏠렸다. 부르사에 들리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걸 보러 온다기에 여기는 현지인보다 여행자가 더 많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이 날 센터에 외국인은 나 밖에 없었다.



내가 앉았던 2층 객석. 무대는 아래에 있다.
앉아서 보면 대충 이런 뷰가 나옴.



친절한 현지인들은 내가 공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무대와 가까운 공간을 내어주셨고, 나는 비행기에서 열심히 외워간 '테세큘 에데림(고맙습니다)'을 띨빵하게 외치며 자리를 잡았다.


곧 의식이 시작되었다.


구석에 앉은 악사들이 한참 음악을 연주하더니, 예의 긴 모자를 쓰고 검은 망토를 두른 남자들이 서로 공손하게 인사를 나누며 무대 한가운데로 나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섰다. 망토를 내리자 흰 원피스가 드러났다. 가장자리에 선 댄서들은 기껏해야 열한두어 살 쯤 되었을 듯한 어린 아이들이었다.


눈을 감은 그들은 오른 팔을 하늘로 들고 왼 손바닥을 땅으로 내린 채, 고개를 약간 삐딱하게 꺾고 한 자리에서 돌기 시작했다. 어두운 가운데 무대로만 하얗게 쏟아져내리는 조명을 받아 댄서들의 옷자락이 나풀거리며 빛났다.





생애 처음으로 다른 문화권에 날아와 마주하는 철저하게 이국적인 광경. 나는 이후 아주 오랫동안, 이 날의 공연을 적막한 가운데 흰 옷자락이 둥글게 퍼지며 빛나는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때 핸드폰으로 찍었던 동영상을 찾아서 틀었다가 요란하게 터져나오는 노래와 악기 소리에 깜짝 놀랐다. 낯선 악기와 생소한 언어로 울려퍼지는 음악이 가득 차 있었음에도 그걸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몸짓은 고독하고 차분했다.


수피 댄스는 신과 연결되기 위해 추는 춤이었다. 위로 올린 팔은 신이 있는 하늘을, 아래로 내린 팔은 인간이 있는 땅을 뜻했다. 온몸으로 하늘과 땅을 잇고 빠르게 돌면서 무아지경에 이르면 그 안에서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믿음은 욕망일까 비움일까. 나는 그들의 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어느새 뭔가를 기원하는 심정이 되어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꽤 긴 시간이 단숨에 지났다. 나는 댄서들이 돌기를 멈춘 다음에야, 내내 숨을 참았던 사람처럼 크게 호흡을 내뱉었다. 묘한 향신료 냄새와 먼지 냄새가 텁텁하게 뒤섞여 풍기는 카펫 위에 앉아 새삼스레, 이건 일정을 통째로 바꿀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



공연이 끝나고,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마음 같아서는 어디 가서 차나 술을 천천히 마시면서 본 것들의 잔상을 음미하고 싶었으나 야간 버스 출발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아쉬움을 추슬렀다.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경로는 대충 알아 두었지만, 눈 쌓인 밤길을 걸어 갈 생각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


그때, 근처 자리에 있던 또래의 젊은 여자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리곤 '어디서 왔냐'며 살갑게 말을 붙여왔다. 잘 됐다 싶었다. 말을 트고 길도 다시 확인해 볼 요량으로 마주 웃으며 덥석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녀는 반색을 하며 고개를 돌려 어딘가로 손을 흔들고는 뭐라고 외쳤다. 그러자 잠시 뒤, 친구들인 듯한 무리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잠깐 얼이 빠져 있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달려온 친구가 눈을 반짝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도 이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묯..살ㄹ이예요?"


이것은 번역이 아니다.

그녀는 한국말로 초면인 내게 나이를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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