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소비의 방식에 가깝다
CES 2018 출장 기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갑자기 내린 비, 구글 부스 침수, 정전, 시연을 멈춘 로봇, 그리고 우버였습니다. 우버가 참 많은 것을 바꾸게 하는구나를 실감했습니다. 호텔마다 우버택시 픽업존이 따로 있었고, 많은 외국인들은 우버 택시를 활용하며 도시를 자유롭게 누볐습니다. 단순한 이동의 개념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시스템을 바꿔버린 파괴적 변화.
갑자기 이런말을 하는 이유는, 지금 쓰는 글이 우버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는 겁니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할 것 같습니다.
가짜 공유경제, 온디맨드
지금은 덜한것 같지만 그래도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공유경제 기업으로 여겨집니다. 서울시도 관심이 많다는 현재의 공유경제는 무엇일까. 물품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서로 대여해 주고 차용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하여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운전을 하지 않을 경우, 이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경제활동이지요.
틀렸습니다. 우버와 에어이밴비가 '물품을 소유의 개념이 아닌 서로 대여해 주고 차용해 쓰는 개념으로 인식하여 경제활동을 하는 사업'을 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이 공유경제라는 전제는 틀렸습니다.
공유경제는 원래 소비의 방식입니다. 계급사회 당시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어떻게 잘, 오래, 또 적절하게 쓸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진짜 공유경제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이윤 창출 행위가 우선되지 않고 이미 남은 유휴재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효과적인 소비를 고민하는 것이 공유경제라는 겁니다.
소비의 방식이던 공유경제는 2008년 로렌스 레식 교수에 의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부상하며 현재의 뒤틀린 공유경제 개념으로 거듭났습니다. 계급사회 후 자유로운 계층간 이동이 가능해졌으나 새롭게 구성된 지배층, 즉 자본주의 세력이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했고 그 대안으로 소비의 방식이던 공유경제가 갑자기 플랫폼을 중심에 둔 강력한 중앙집권형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된겁니다. 우버가 2009년 셰계 경제 불평등 지수 2위이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네, 정리하자면 현재의 공유경제는 소비의 방식이던 옛날의 공유경제가 아니라 플랫폼을 중심으로 온디맨드 사업을 하는 것으로 변질됐습니다. 뭐 그냥 쉽게 생각하면 공유경제 2.0 정도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건 그냥 온디맨드 사업입니다. 남은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공유경제의 취지에 맞지만 플랫폼 사업자가 존재하고, 모든 권력이 플랫폼에 집중되어 수요와 공급이 결정되는 순간 이건 그냥 온디맨드 사업인겁니다.
온디맨드 사업은 플랫폼이 짱짱맨이 되고, 그 플랫폼에 수요자와 공급자가 모두 묶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 수요와 공급 조절을 맞출 권한이 오로지 플랫폼에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일거리를 줄 플랫폼 사업자의 정책에 따라 공급자의 일자리와 수요자의 욕구해소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온디맨드 사업은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오호라
가상화폐(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와 블록체인을 구분해야 하느냐, 같이 생각해야 하느냐. 정부는 오락가락인것 같은데 전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상화폐의 근간이 블록체인이며 많은 알트코인의 존재, 자본의 흐름, 기술의 발전을 고려하면 이건 걍 고민하는 것이 붕신이에요. 가상화폐의 투기열풍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다고 블록체인은 포기할 수 없으니 "아몰랑, 그냥 달라. 다르니까 가상화폐는 조지고 블록체인은 키울거양'이라고 말하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정말 붕신짓입니다.
모든걸 다 떠나서 블록체인을 보면, 전 블록체인이 진짜 공유경제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분산화입니다. 분산화는 왜 하는 것일까요? 걍 있어보여서? 해킹을 피하려고? 권력의 분산으로 중앙권력의 집중에 따른 폐혜를 극복하려는 겁니다. 모두가 장부를 가지고, 모두가 기록을 해 나눈다는 개념은 있어보이려고 뻘짓하는 것도 아니고 해킹 피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분산화. 그냥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겁니다.
블록체인이 진짜 공유경제라고 믿는 이유는, 블록체인이 소비의 방식이던 기존 공유경제의 순기능을 확실히 살리고 우버와 에어비앤비같은 가짜 공유경제 기업의 폐혜를 걷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분산된 권력이다보니 모든 이해 관계자는 동등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록의 실시간 공유는 공유경제의 소비에서 수익사업이라는 마법을 완성시킵니다. 공유경제는 합리적 소비의 방식이던 당시에도 '신뢰'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최씨 집에서 밭일을 했으니 내일은 최씨가 우리 밭일을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블록체인에서는 철저하게 수학적 계산으로 만들어진, 가능한 신뢰입니다. 여기에 중앙 플랫폼이 없으니 거간꾼도 없지요. 수수료를 떼가는 거간꾼이 일을 분담하지 않으니 온디맨드의 약점도 보완합니다. 졸린눈을 부비며 새벽에 막일을 나갔더니 작업반장이 쓱 한번 보고는 일을 주지 않아요? 그런데 저번 추석때 굴비 좀 찔러준 양씨는 망고땡 일 잘만 받아갑니다? 그러나 중앙 플랫폼, 중앙권력의 작업반장은 블록체인에 없습니다.
맞아요.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큰 매력은 분산화. 그리고 이를 간단하게 만들어준 신뢰입니다. 여기서 신뢰는 막 감성적이고 눈물겨운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철저하게 짜여진 계산에 따라 주어지는 일종의 대전제로 작동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믿을만한 플랫폼에 모여 거래를 하며, 플랫폼의 공신력을 신뢰로 삼았으나 블록체인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공유경제의 개념과 딱 들어맞으며, 또 공유경제 2.0으로 부를 수 있는 생산의 방식에도 손색이 없어요.
물론 탈 중앙권력화가 마냥 나쁘냐?라는 질문도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계산된 신뢰를 부여하고, 그에 맞게 실시간으로 작업을 꾸려갑니다. 아, 모든 블록체인이...모든 가상화폐가 탈 중앙화는 아니기는 합니다. 아직 질문은 사실 많이 남았죠. 그러나 확실한 것은, 블록체인은 인터넷의 최초 정체성에 가장 가깝기도 하다는 겁니다. 인터넷은 포털이 등장하기전 말 그대로 바다에 뜬 섬이나 같은 존재였으나...이제는 플랫폼 전쟁의 각축전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블록체인은 이곳에도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월드와이드웹의 가치를 다시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PS-1) 블록체인의 매력은 너무 많죠. 기록이 정교하고 추적이 용이하고..중고차 매매, 신선식품 판매 등등
PS-2) 블록체인이 현실이 될 것인가?는 좀 지켜봐야 할 듯. 기존 기득권 세력의 반항이 너무 거세어서...
PS-3) 탈중앙화가 완전히 옳은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지만 중앙집권이 투명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뒷목 가볍게 잡아봅니다
PS-4) 붕신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써서 문...죄송합니다. 모르면 걍 가만히 있기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