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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Jan 22. 2016

피키캐스트의 승무원 관련 콘텐츠에 대한 단상

"너무 잔인했을까"

기자로 살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일로 만난 사람과 너무 가까워지는 겁니다. 특히 그 사람이 기업의 홍보 담당자일 경우 치명적이에요. 확실한 기사 아이템을 잡아도 왠지 해당 기업의 홍보 담당자가 어른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위 부정 기사를 쓸 경우..저를 보며 해맑게 웃던 미소와, 그 기사를 보고 얼굴을 찌푸릴 절망이 동시에 겹칩니다.


오늘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피키캐스트인데요. 무슨 일이 있었느냐. 제 기사를 인용하겠습니다.


[흥미로운 일이 22일 벌어졌다. 피키캐스트는 자체 에디터 외 다양한 언론과 협업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미디어오늘의 콘텐츠를 활용해 1월 20일 오후 9시 게시된 '쫌만뉴스'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주인공은 '승무원 심사에 속옷입고 오리걸음?'이다.

삭제에 대한 피키캐스트의 설명을 들어보자. 피키캐스트는 게시물 삭제와 함께 올린 공지글을 통해 '본 콘텐츠는 피키캐스트와 제휴 관계에 있는 미디어오늘이 직접 취재하고 작성한 항공사 승무원 시험에 속옷 입고 오리걸음시켜 논란 기사를 미디어오늘에서 직접 재구성 해 피키캐스트에 제공한 콘텐츠입니다'라며 '해당 콘텐츠 게재 후, 댓글과 메일로 "해당 내용은 사실이 아닌 루머이며 과장이 심하다"라는 의견이 접수되어 미디어오늘 측에 직접 확인을 요청하였으며, 미디어오늘은 "콘텐츠 내용은 사실이다"라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습니다'고 전했다.

그러나 피키캐스트는 삭제를 택했다. 이에 '하지만 논란이 지속됨에 따라 피키캐스트에서의 본 콘텐츠 게시를 중단하고 미디어오늘의 원문 기사로 이동하는 페이지만을 남겨 두기로 결정하였습니다'고 전했다.

해당 콘텐츠는 무엇일까? 미디어오늘 4일자 기사인 '항공사 승무원 시험에 속옷 입고 오리걸음시켜 논란'이다. 본 기사는 중국 하이난항공이 승무원을 채용하며 다리를 쪼그리고 앉은 채 10초 이상을 걷는 오리걸음 검사를 실시했다고 전하며 비정상적인 채용 과정을 비판했다. 이를 피키캐스트에 제공했고, 피키캐스트는 재가공해 콘텐츠를 작성했다. 하지만 미디어오늘 기사 자체가 과장됐다는 비판과 동시에 피키캐스트에도 비슷한 비난이 쇄도했고, 이 지점에서 미디어오늘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기사를 내리지 않은 반면 피키캐스트는 내린 것으로 파악된다.]

피키캐스트


제 기사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뉴미디어 시대라고 하면서 피키캐스트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각광을 받는데, 과연 이 정도의 맷집을 가진 곳이 언론으로 불려도 될까? 로봇이 기사를 쓴다고 인간 기자의 인사이트를 당장 채울 수 없는 것처럼, 피키캐스트는 언론의 미래가 아니다.


흠. 사실 이 기사를 쓰기 전 피키캐스트 홍보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사실 전화를 받지 않기를 원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후 기사를 송고했고, 거짓말처럼 연락이 왔어요. 워크숍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말. 첫 전화는 그렇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전화가 왔습니다. 기사를 봤더군요. 솔직히 괴로웠습니다. 그 담당자는 제가 길지 않은 기자생활을 하면서 정말 인상 깊게 느낀 분이거든요. 강단 있고 쾌활하면서도 밀당(?)도 잘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곳의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열정이 좋아 보였습니다. 제가 그런 분들에게 약해요. 미친 듯이 일하며 미친 듯이 빠지는 사람. 존경합니다.


제게 설명을 해줬습니다. 미디어오늘과는 원만하게 협의된 것이다. 그리고 피키캐스트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콘텐츠를 내렸을 뿐이다. 등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줬고, 일부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제 소감을 말하겠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어 콘텐츠를 내렸다고 하는 것은, 피키캐스트에 악플이 없다고 자랑하는 장면과 겹칩니다. 논란이 없이 클린 하게 콘텐츠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심. 일반적인 플랫폼 사업자라면 당연히 바랄 부분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아닙니다. 언론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있으니까요. 그리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 콘텐츠를 내렸다고 말하는 것. 이는 일반적인 언론의 해결 방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내가 언론, 즉 미디어의 역할을 너무 한정되게, 편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제가 생각하는 언론은 굴하지 않고,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겁니다. 하지만 피키캐스트가 생각하는 언론은 철저히 플랫폼 역할에 충실한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중심에서 일반인 마인드로 움직이는 거죠. '공'보다는 '사'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공'에 무게를 둔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만큼이나 중요한, 생존과 직결된 플랫폼 사업자의 마인드는 피키캐스트가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피키캐스트의 처지도 이해가 됩니다.


언론은 시대의 변화를 맞아 저널리즘을 지키며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가 참 어렵죠. 그런데 피키캐스트는 후자에 충실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피키캐스트에 뉴미디어라는 찬사를 던지죠. 하지만 이는 언론의 수단적인 방향성일뿐, 절대 지향점은 될 수 없습니다. 피키캐스트가 꼭 이 길을 따라갈 필요도 없고, 구설수에 휘말릴 이유도 없죠.


그런 이유로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로봇이 기사를 쓰는 시대, 심층적이고 깊은 기사로 승부를 봐야 하는 언론은 피키캐스트의 원만한 플랫폼 전략을 수행하면서도 정신없는 논란에 몸을 던져야 해요. 하지만 피키캐스트는 절대 동시에 할 수 없죠. 스낵 컬처가 비판받는 대목도 바로 여기가 아닐까요?


아, 솔직히 글을 적으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제가 느끼는 부분의 10%도 적혀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앞으로 언론의 정의가 어떻게 정해지느냐에따라 기존 언론사와 피키캐스트의 '롤'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요. 다만 그 과도기에서, 피키캐스트는 언론이라기 보다는 포털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게 쓸데없는 논란에서 벗어나면서 미디어 '플랫폼'의 강점을 잡아가는 한 방법이 아닐까요? 언론보다 미디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뜻입니다...


..홍보담당자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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