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쳐지는 대한민국 IT 인력 인프라
국내 모빌리티 업계는 전형적인 망트리로 가고 있습니다. 카카오택시는 스마트콜 좌초 후 카풀 서비스까지 어려움을 겪으며 정중동을 거듭하고 있으며 카풀 서비스 풀러스는 망해가고 있습니다. 럭시는 분루를 흘리며 카카오의 품에 안겼고요. 콜버스는 업종을 바꿨습니다. 쏘카와 그린카는 그냥 모바일에서 굴러가는 렌트카 업체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버택시 국내시장 진출이 무위로 돌아간 후 기존 택시업계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고, 사실 거기서 첫 단추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죠. 글로벌 ICT 기업, 모빌리티 기업을 배척한 후 시장을 아기자기하게 잘 나눠먹다가 한 방에 훅 갈것이라는 것을.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도 출시됐잖아요? 탑재된 카카오내비가 마냥 웃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망트리로 가던 국내 모빌리티 업계에 구원자가 등장했습니다. 포털 다음의 창업자인 이재웅 씨가 쏘카의 대표를 맡으며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무려 11년 만입니다. 그동안 공익재단 활동을 하며 좋은일 많이 했으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맞짱을 뜨는 패기를 보여주시더니 급기야 '이대로는 곤란하다'를 부르짖으며 업계 최전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쏘카 대표가 된 이재웅 대표는 비트윈 개발사인 VCNC 인수합병을 이끌며 초반부터 강력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쏘카의 미래와, VCNC 합병의 시너지를 설명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전 공지를 받지 못해 현장에 있지는 못했습니다. 도대체 쏘카와 VCNC가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 수 있을까. 데이터 측면인것 같은데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이 글에서는 이와 관련된 내용은 빼고 가겠습니다. 전 이재웅 대표의 등장. 요 하나에만 집중할까 합니다.
이재웅 대표는 국내 IT 업계의 전설입니다. 포털 다음을 창업한 인물이에요. 다음의 수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꾸준히 후진양성에 나섰고 많은 업적을 남긴 인사입니다. 그가 쏘카의 대표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뭐 일단 지분이 있기 때문일테고. 또 다른 하나는 현재의 스타트업 업계가 그의 생각만큼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답답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사를 보니 이런 말을 했더군요. 이 대표는 “창업하는 기업은 많아졌지만 소비 습관이 바뀌고, 사회 가치를 전달하는 기업은 크게 줄었다”면서 “(내가) 기업으로 복귀한 이유는 이런 기업 생태계 불일치를 해소하고, 인큐베이팅 단계부터 투자와 개발을 거쳐 사회 가치를 높이는 데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전자신문 -11년 만에 쏘카 대표로 돌아온 이재웅, '이번엔 모빌리티 신화다']
답답함을 느낀 이유는 크게 두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스타트업 업계는 잘 못하고 있으며,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자에는 저도 사실 동감합니다. 풀러스는 아무리 어려웠어도 유연근무제 드립을 신중하게 치던가, 최소한 럭시와 기본적인 협의를 해 힘을 모았어야 했습니다. '핍박받는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이라는 콘셉으로 언론 플레이를 해봤자 안통해요. 초기 서비스 런칭 당시 법적인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는데 계속 '법무법인 검토를 밭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카카오택시도...최소한 기사들과 진지한 논의를 했을지 의문이 듭니다. 뭔가 선민의식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우리가 대세인데 왜 안따라와?' 따라가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질려있는 이들에게 씨알도 안 먹히죠. 아 쏘카와 그린카요? 걍 렌트카 업체에요. 쏘카는 SK투자를 받더니 갑자기 보도자료 내고 기업의 사회적 가치 운운하더군요. 최태원 회장이 아무리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해도 너무 속보였습니다. 이런거 배우지 말았으면...(제가 너무 꼬였나...근데 보도자료 받고 그런 느낌을 받아 기사제목에 최태원 회장을 넣었더니 바로 고쳐달라는 요청이...)
각설하고. 그렇게, 그런 의식의 흐름으로 이 대표가 등장했습니다. 자. 우리는 박수를 쳐야 할까요? 저는 이재웅 대표의 등장이야말로 절망적인 한국 IT 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재웅 대표의 능력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쏘카를 훌륭하게 키워낼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현업에서 물러난지 11년이 된 경영자가 지금 이 위기의 순간에 등판한다는 개념 자체가 약간 아쉽습니다. 좀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당이 어려워지자 한때 당 대표를 지내며 대통령 후보에 두번이나 나섰던 분을 모시려 간보려 했던 어느 당이 생각납니다. 간을 봤던 그 분은 능력과 실력이 줄충합니다만, 오래전 인물을 소환하려는 마음을 품었던 순간, 그 순간은 그 당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지금은 모바일 시대가 열린지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 그 10년동안 대한민국 IT 대표 인재풀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총수가 되기싫어 발버둥치던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여전히 세계를 누비고 있고,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여전히 업계를 좌우합니다. 그가 있기에 임지훈 전 대표가 있었고, 도대체 어디에 써먹어야할지 감도 안오는 브랜딩 회사를 막대한 돈으로 인수해 새로운 대표를 데려왔어요. 그리고 이제는 이재웅 대표까지 소환됐습니다.
모바일 시대 10년. 외국은 많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업경영환경이 많이 다르니까 극단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사티아 나델라는 2012년부터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고 있고 팀 쿡은 2011년부터 애플 최고경영자입니다. 순다 피차이는 2015년부터 구글을 지휘하고 있고요. 모두 2010년 이후에 전면에 등장한 차세대 주자들입니다. 이들은 충실하게 조직에서 실력을 쌓았고, 이제 스스로의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은 모바일에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블록체인(아직은 잘..)의 시대로 변하고 있고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여기에 맞추며 세계를 주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빌 게이츠가 돌아왔네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재웅 대표는 능력이 있는 최고인재입니다. 그가 뭔가 바꿔줄겁니다. 다만 저는, 지금 이 순간에 이재웅 대표의 귀환이 썩 반갑지는 않습니다. 모바일 시대 10년의 끝에서 그동안 닷컴버블 시기 이후의 대형 IT 간판을 키워낼 기회는 많았을텐데. 인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텐데. 우리는 뭘 했나요? 차세대가 나타나면 "어린놈이..."라고 시비털고 누가 두각을 보이면 "깝치지 마라"고 윽박질렀던 것은 아닐까요? 뭔가 꿈을 꾼다면 "개꿈이야"라고 말하고 뭘 좀 하려고 하면 "꿈 깨 이 몽상가야"라고 말한 것은 아닐까요. 제가. 당신이. 1세대 간판들이. 아니 우리 모두가.
물론 스타트업 전성시대를 맞아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 등 많은 간판들이 등장하기는 했습니다. 이들은 위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은 철저히 2선입니다. 매력적이고 반짝이지만, 아직 인터넷기업의 전경련인 인기협이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해요. 갈 길이 멉니다. 결국 방법은 하나. 일단 빌 게이츠에 맡겨서 당장의 위기를 넘기면서, 지금이라도 IT 간판을 키워내기 위한 전략을 짜야합니다. 뭐.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