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진홍 Aug 24. 2018

플랫폼 짱짱맨 시대

쿠팡 플렉스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라이더와 함께 일하는 플랫폼 사업자 관계자와 식사를 하던 중, 관계자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다고 목소리를 낮춥니다. 최불암 시리즈인줄 알았으나 라이더와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관계자는 자기가 일하는 플랫폼의 문제 중 하나가 '라이더 관리'라면서 "그 분들은 참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으셔서, 관리하는 것 자체가 힘들때가 많네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도 재밌지 않아서 제가 작년에 들었던 끝내주게 웃긴 콩나물 뽑기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때 관계자가 말합니다. "일반인을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라이더로 활용하는것이 어떨까...생각하고 있어요" 어, 그건 좀 재밌었습니다.


쿠팡의 재미있는 실험
쿠팡 플렉스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포스터만 보면 경단녀 탈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일까요? 아이를 가진 여성이 얼마나 짐을 나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여튼 흥미롭습니다. 지원자가 자신의 스케줄에 따라 원하는 날짜를 근무일로 선택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며, 운전이 가능하면 지원자의 승용차를 배송차량으로 활용해 거주지 근처 쿠팡 배송캠프에서 배송상품을 직접 수령 후 자신의 차량으로 고객에게 상품을 전달하고 운전을 원하지 않으면 아파트 단지에서 해당 단지에 쿠팡의 트럭이 배달해 주는 상품을 수령 후 롤테이너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상품을 배송하면 된다고 합니다.


처음 든 생각. 쿠팡이 한국의 아마존이 되고 싶어하는구나. 아마존은 2015년 아마존 플렉스를 시작했습니다. 걍 똑같아요. 이름도 플렉스인걸보니 쿠팡도 굳이 감추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최근 아마존은 자가차를 가진 사람과 멤버십 계약을 맺어 배송을 맡기는 실험도 시작했지요.


또 하나는 아마존의 물류시장 본격 진출입니다. 물류 자회사 만든다더니 본격적으로 이쪽에서 뭔가 해보고 싶어하는구나.


곰곰히 생각을 더 해보면, 사실 이 발상은 현재 의외로 상용화(?) 됐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뭔가를 배송하고 운반하는 주체를 일반인에게 맡기는 장면 말입니다. 우버의 우버이츠가 그렇죠. 최근 종로에도 진출했다던데 축하합니다. 야놀자와 만났다는거, 박수칩니다.


자, 쿠팡 플렉스는 성공할까요? 전 모르죠. 다만 장점과 약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선 배송업의 특성.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쿠팡 플렉스로 얼마나 배송과 관련된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일반인은 쿠팡 직원이 아니니까 자기가 있고싶은 곳에 있겠죠? 효과적인 배송이 잘 될지도 의문입니다. 오늘은 하고 내일은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일단은 시간이 정해져있으니 이 부분은 넘어가도 될 듯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배송하는 사람이 일반인이라는 점이에요. 그들은 전문가가 아니죠. 라스트 마일 운운하던 사용자 경험은 어떻게? 실버택배의 아쉬움이 생각나는건 저뿐인가요?


장점은 명확합니다. 일만 잘 풀린다면 쿠팡은 꽤 효율적으로 거대한 물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강력한 큐레이션 전략으로 고객의 성향을 데이터를 확보해 완벽히 습득했다면 금상첨화. 고객의 구매 패턴을 예측할 수 있고, 충만한 쿠팡 플렉스 인프라가 갖춰지면 더할나위 없는 최고의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쿠팡이 원하는 경단녀 탈출 프로젝트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약간의 공익적 성격도 있습니다.


그런데...
쿠팡 플렉스가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약간 다른 측면을 보려고 합니다. 바로 온디맨드 플랫폼과 노동시장의 상관관계에요.


공유경제라는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모든 관련 기업은 온디맨드 기업입니다. 플랫폼 사업자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해요. 쿠팡 플렉스도 동일합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온디맨드 플랫폼과 노동시장입니다. 자. 보자고요. 온디맨드 플랫폼은 수요와 공급을 만나게 해줍니다. 이때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수요? 공급? 플랫폼 사업자죠. 공급자와 수요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은 플랫폼이니까. 주도권도 플랫폼이 가져갑니다.


쿠팡 플렉스는 성공한다는 가정으로 보면, 플랫폼 권력이 엄청나게 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경단녀처럼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쿠팡 플렉스로 돈을 벌게되고 중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종속성이 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흐름이 강해질수록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압니다. 물론 멀리 간 이야기지요. 그러나 쿠팡 플렉스를 차치하고, 일반적인 온디맨드 플랫폼 시장을 보면 조금씩 전업자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쿠팡 플렉스의 전업자가 많아질 가능성은 낮지만, 전 쿠팡 플렉스같은 온디맨드 플랫폼 확장형 비즈니스 모델이 점점 나올수록 큰 틀에서 노동시장 경직성에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쿠팡 플렉스가 잘못됐고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서비스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플랫폼의 권력을 너무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입니다.

하여튼 재미있습니다. 평생직업이라는 개념도 없는 시대. 온디맨드가 재미있는 방향을 제시할 것 같은 기대감도 듭니다. '플랫폼, 너 다 가져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데이터도 다 가져라. 뭐 그렇습니다. 네? 뭐라고요? 콩나물 뽑기 이야기가 뭐냐고요? 아, 참. 이런거 막 말해주면 배꼽 찾기 어려우실텐데. 에이, 뭐 그럼 살짝 맛을 보여 드릴까요? 예전에 엄청 매운 콩나물국을 먹은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 사람이 콩나물국을 먹고 씻으려고 샤워실에 갔다가...

작가의 이전글 여러분, 배달이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렸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