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마트 1위 신세계 이마트가 흥미로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오프라인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든 가운데 강력한 온라인 플랫폼 전략을 가동하는 한편, 최근 <월간가격>이라는 매거진 형식의 쿠폰북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마트에서 진행되는 할인 이벤트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종의 쿠폰북에 가깝습니다.
<월간가격>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형마트는 지금까지 알리고 싶은 할인 이벤트가 있으면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거나 할인 페이지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오프라인 종이신문의 몰락이라는 말이 상징하는 것처럼, 이제 신문에 끼워 할인정보를 알려도 신문을 보는 사람이 없으니 효과가 미비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마트가 직접 할인정보를 알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입니다.
여기까지는 무너지는 오프라인 신문의 존재감을 설명하고 증명하는 선에 그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대목은 <월간가격>의 성격입니다. <월간가격>은 단순히 천편일률적인 할인가격 정보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매거진 형태로 발간됩니다. 단순 정보제공을 넘어 특정 상품에 대한 소개와 효능, 일종의 스토리텔링 기능을 덧대는 매력적인 콘텐츠로 무장했습니다. 와인에 대한 할인정보를 제공하면서 '와인과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등을 소개하는 형태입니다. 정기간행물 등록을 하지 않은 쿠폰북이지만, 손에 잡으면 술술 읽히는 브랜디드 콘텐츠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브랜디드 콘텐츠 시대
브랜디드 콘텐츠의 사전적 의미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와 브랜드 광고의 결합입니다. 즉 의도를 가지고 콘텐츠 내부에 브랜드의 특정 메시지를 녹여내는 방식으로 이해됩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작업은 간접광고 형식으로 진행되는 분위기였으며, 특별한 존재감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굳이 콘텐츠에 브랜드 메시지를 실어보내는 복잡한 작업 대신, 광고의 직관적인 메시지가 작동하는 편이 더 나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대가 복잡해지고 강력한 플랫폼들이 맥을 추지 못하며 벌어집니다. 광고의 주된 플랫폼이던 언론 권력이 ICT 플랫폼 시대를 맞아 그 영향력을 크게 상실하는 한편, 다양한 플랫폼들이 생활밀착형의 콘셉으로 등장했습니다. SNS가 강력한 네트워크가 되고 유튜브가 언론사를 대신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기업들은 브랜디드 콘텐츠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누리고자 하는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가운데 내린 결론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보자'로 수렴됩니다. 브랜드의 메시지를 광고 형태로 만들어 언론사에 제공하는 것보다, 브랜드의 메시지를 누구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브랜드 스스로가 다양해진 플랫폼을 통해 전면에 나서는 계기입니다. 삼성전자의 뉴스룸이 대표사례입니다.
다양한 ICT 서비스를 진행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카오도 현재 대언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합류한 별도의 브랜디드 콘텐츠 팀을 준비하고 있으며, 금융 플랫폼 토스의 비바리퍼블리카는 자체 블로그 토스피드 등을 통해 직접 사람들과 만납니다. 기업용 SNS 플랫폼 서비스 잔디도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핵심 인물과의 인터뷰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자기들이 속한 영역의 콘텐츠를 직접 소개하며 이를 콘텐츠로 구축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인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외연을 확장하던 MCN(다중채널네트워크) 사업자에게도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이들은 기성 언론 플랫폼이 아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유튜브 등 새로운 플랫폼을 매개로 삼아 크리에이터와 시청자의 간격을 빠르게 좁히던 참이었습니다. 잘 차려입은 연예인이 등장해 상품을 대놓고 설명하는 것보다, 나와 채팅으로 소통하며 상품을 소개해주는 소위 인플루언서들이 각광을 받습니다. 이들은 현재 MCN과 이커머스의 결합, 그리고 MCN과 브랜디드 콘텐츠의 결합을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브랜디드 콘텐츠가 확산되며 기존 언론과 같은 플랫폼의 지위는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콘텐츠 제작 전문가로의 특수성이 희석되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콘텐츠 플랫폼 성격이 달라진다
복잡한 전략의 충돌이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가운데, 다시 이마트의 사례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마트의 <월간가격>은 오프라인 기반 매장에 퍼지고 있다는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이 시대정신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오프라인이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마트 매장에 오는 고객들은 당연하지만 물건을 구매하러 온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오프라인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공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제 브랜디드 콘텐츠를 구사하는 플레이어는 명확한 타깃층에 명확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그 무대가 오프라인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의 브랜디드 콘텐츠를 관통하는 2개의 핵심 키워드. 명확한 타깃층과 오프라인. 전자에 집중하면 '내가 가진 생태계를 300% 활용하는 것'과 '이를 통해 내가 가진 생태계의 구성원들을 더욱 타이트하게 당겨올 수 있다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후자에 집중하면 '오프라인에 기회가 있다' 정도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