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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Oct 06. 2018

카풀이 될 것 같다? 이 때가 제일 중요하다

이익집단의 반발에 대처하는 자세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사직터널 위 좁은 원룸을 잡아 비루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전 단숨에 뭐라도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처참하게 통장을 스치는 월급과 점점 쪼달리는 생활비에 밥까지 굶는 날이 많아지고, 집에 손을 벌리기는 싫다는 오기로 모 재래시장의 야간경비일을 할 때 느꼈습니다. 그때 나 근무할 때 시장 앞 스탠래스 기둥 뽑아간 개##..갑자기 생각났는데 넌 평생 고자가 될 지어다...

여튼 이리저리 방황하다 지방자치 전문 월간지와 영유아 교육 전문 월간지를 동시에 만드는 회사에서 6개월 정도 근무한 적 있습니다. 주5일 근무가 아니라 토요일 오전에 근무를 하던 시절 이야기인데요. 3, 4일 연속 마감한다고 밤을 새우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했으나 나름 '청일점'으로 살았던 재미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아내도 이 회사에서 만났어요.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지난 6일 국회에서 벌어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토론회 난입 사건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한유총 소속 유치원 원장들이 대거 토론회장에 난입, "사립유치원 마녀사냥을 멈추라"는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뉴스 영상을 보니 원장들이 막 들어눕고 소리지르고 끌어내고 장난이 아니더군요...전 이 장면을 보며 카카오 카풀 논란의 한 축인 택시기사들의 반발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는데, 지방자치단체 취재를 위해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바로 서울로 올라와 집회현장 취재에 투입된 적이 있습니다. 한유총은 아니고, 어린이집들이 소속된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입니다. 어림잡아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대부분 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날 정확하게 대오를 갖추며 당국을 규탄하고 있었습니다.(뭔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잘...다만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을 하겠다는 으름장은 생각납니다)


그때 현장을 누비다가 우연히 집회 참가자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20대 초중반으로 추정되는 교사들이 뒷쪽에서 놀랍게도 상소리를 섞으며(...) 원장 뒷 담화를 하고 있었거든요. 대충 내용은 '교사들은 이렇게 고생하는데 원장들은 불라불라' 뭐 이런 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이집 업계의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는 바로 보육교사 처우개선입니다. 보육교사가 행복하지 않아 업무환경이 악화되면 그 피해는 온전히 누구에게 갈까요? 아이들입니다. 끔찍한 어린이집 학대사건의 기저에도 흐르는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원장들은 뭔가 당국을 규탄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때 항상 보육교사 처우개선을 주장하면서도 막상 자기의 원 관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보육교사 처우개선을 위해 당국이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각 어린이집에서는 빠듯한 긴축재정이 벌어져 교사들만 죽어 나가는 현상을 많이 봤습니다. 예전의 집회에서 봤던 그 뒷담화의 맥락에, 이러한 현장의 아이러니함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마음을 바쳐 아이들에게 신경을 쏟는 대다수의 어린이집 원장들이 많지만, 언제나 다른 측면은 있는 법이니까요.


이 고질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유치원은 이제 유아학교라는 명칭이 나올 정도로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지만 어린이집은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국가는 영유아 정책을 처음 설계하며 국가가 마땅히 보장해야 하는 보육이라는 영역을 민간에 위탁합니다. 국가가 다 처리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민간시장에 맡기고, 대신 지원금을 제공하면서 관리감독을 하는 시스템이 정착된겁니다. 그러다보니 민간에서 보육을 하겠다고 나선 어린이집과 당국의 엇박자가 벌어지게 됩니다. 국가가 보육을 민간에 위탁하는 시스템을 두고 무작정 비난하기도 어렵고, 엇박자가 나는 현상도 당연한 일이라 비난하기 어렵지만 참 안타까운 일인것은 사실입니다. 


카풀 논란을 한 번 살펴볼까요? 택시회사들은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간 사업자들이 운영하지요. 그러나 매우 중요한 영역이기에 당국은 지원금을 제공하고 관리감독을 합니다. 어린이집 상황과 비슷하죠. 그러다 보니 엇박자가 납니다. 문재인 정부는 ICT 규제 완화에 드라이브를 걸며 카풀 합법화를 조심스럽게 타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택시업계가 반발하지요. 그 기저에는, 태생부터 시작된 공공과 민간의 묘한 체질이 있다는 점.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카풀 논란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저도 잘 모릅니다. 카풀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카카오가 뛰어들었고, 택시업계는 반발합니다. 택시업계가 생존권 보장이라는 키워드를 꺼내며 헌법적 가치를 전면에 건 순간 문제는 더 어려워졌고, 카카오라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논란도 반드시 따져봐야할 순간이 왔어요.


저는 오래전 제가 취재했던 집회현장의 뒷담화에 힌트가 있다고 봅니다. 어린이집의 집회지만 그 업계는 어떻게 나눠져있나요? 원장과 교사로 나눠져있고, 이들은 영역의 시작부터 이어진 공공과 민간의 엇박자에 따라 동상이몽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원장이 갑이고 교사들이 을이지만, 만약 교사들이 보육교사 처우개선을 전면에 걸고 원장들에 강력히 반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다면?


택시업계도 택시회사와 기사들을 분리해 접근해야 합니다. 취재를 위해 만나는 기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9할은 카풀이 어떤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모든 정보는 협회나 회사로부터 들어오니까. 그 정보만 보니까. 이 부분을 공략한다면..기사들을 카풀로 돌리는데 성공한다면 어떨까요? 카풀 합법화가 24시간까지 된다는 가정을 펼쳐봅시다. 제가 기사라면 전업 카풀도 고려해보겠습니다. 개인택시와 법인택시도 나눠야 합니다. 설득의 타깃을 나눠 각자에게 ICT가 줄 수 있는 이득을 최대한 설명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집단을 세부적으로 나눌수록 성공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 말 그대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아, 물론 어렵죠. 보육교사도 을이고, 택시기사도 을입니다. 이들은 '업계'라는 이름으로 묶여 월급을 주는 사람의 말을 듣고 정보만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을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설사 그렇다 해도 제대로 설득이 될 지도 미지수입니다. 카카오는 카카오 드라이버를 출시하며 업계의 불합리함을 잡겠다면서 회사보다 기사들과 손을 잡았는데요. 대리기사들이 카카오와 대립각을 세운 전례를 보면 이러한 전략도 사실 헛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설득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이제 카풀 합법화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명령입니다. 택시업계 일각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최대한 투쟁수위를 올려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자'는 기류가 읽힙니다. 국회에 카풀 합법화를 금하는 법안이 2개 있지만, 이를 차치하고 냉정히 판단하면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돌변했습니다.

어쩌면 이런순간. 카풀이 합법화되는 순간이 더 위험합니다. 택시업계가 회사와 기사로 양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카풀이 강행되면 시장 생태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ICT 업계는 '카풀이 될 것 같다'는 쪽에만 집중하지 말고, 바로 이 순간 큰 그림을 그리며 설득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설득은, 나눠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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