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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Nov 24. 2018

플랫폼 시대의 종말이 오는가

AWS와 KT 화재, 택배 파업의 맥락

저는 O2O부터 시작해 온디맨드의 방향을 따라가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맹신하는 것은 아닌데요. 수수료 기반의 단순 사용자 경험 증진에 따른 플랫폼 비즈니스의 한계는 명확하며, 이러한 방향성이 온디맨드의 트렌드로 수렴되며 수요와 공급의 막강한 권력을 단독 플랫폼이 독점하는 것에는 우려합니다. 


최근 이러한 우려를 키우는 생생한 일들이 벌어졌는데요. 바로 AWS 한국 리전의 서버 다운과 KT 화재, 그리고 택배 파업입니다. 이는 공교롭게도 플랫폼 비즈니스의 어두운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들이 멈추면, 모두가 침묵한다
아마존이 한국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22일 AWS의 서울 리전이 다운되며 배달의민족과 암호화폐 거래소, 쿠팡 등 핵심 앱 서비스들이 약 1시간 다운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AWS 코리아는 당일 오후 “금일 AWS 서울 리전에서 일부 DNS 서버 설정 오류로 인해, EC2 인스턴스가 84분 동안 DNS 기능을 할 수 없었다”면서 “현재 설정 오류는 해결되었으며 서버는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다양한 시사점을 보여줍니다. 먼저 멀티리전 이중화 필요성에 대한 담론을 끌어왔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핵심 인프라 플랫폼에는 멀티리전 이중화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나아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도 마련될 전망입니다.


AWS의 국내 입지에 대한 논란도 나올 전망입니다. AWS 코리아는 국내 민간 시장은 물론 공공 시장까지 의욕적으로 공략하고 있는데요, 이번 사태로 체면을 구기게 됐습니다. 지난 6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AWS 공공부문 서밋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피터 무어 AWS 아시아태평양 지역 공공부문 총괄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무어 총괄은 아태지역에서 민간 클라우드 시장을 강력하게 공략할 예정이며 한국 시장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번 사태가 AWS에게 여러모로 쓰라린 이유입니다.

다른 사업자의 반격도 눈여겨 볼 포인트입니다. 지금 IBM은 한국에 리전을 설치했고, 구글은 LG전자와 협력하는 선으로 알려졌으나 아마 내년에는 리전을 설치하지 않을까...합니다. 이들이 AWS가 보여준 이번 헛발질로 재미있는 행보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 클라우드 사업자에게도 흔들리는 거인 AWS가 보여주는 틈을 어떻게 이용할 지, 흥미롭습니다.


여기까지는 AWS 침묵 사태에 대한 표면적인 분석입니다. 다만 한 발 더 들어가면, AWS라는 플랫폼의 정체성과 만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무서운 일 아닌가요? AWS라는 플랫폼에 문제가 발생하자 배달의민족, 쿠팡, 야놀자, 여기어때 등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서비스들이 모조리 침묵한다는 점. 기반 인프라, 즉 중앙 플랫폼이 다운되는 순간 우리가 마치 공기처럼 생각하던 ICT 기술 서비스들이 단 한 순간에 멈춘다는 것은 곱씹을수록 무서운 일입니다.


KT 화재도 마찬가지입니다. 24일 오전 KT아현지사 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해 장시간 인근 지역의 통신, 카드결제 등이 마비됐습니다. 충정로 일대 식당 주인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KT가 운영하는 기반 통신 인프라가 문제를 일으키니 장사를 당분간 접어야 하는 사태가 도래했습니다. 택배 파업도 비슷해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택배 서비스가 일부 멈췄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던 중앙 플랫폼의 침묵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삶의 다양한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그래서 블록체인인가? 글쎄...
AWS의 침묵과 KT 화재, 택배 파업은 핵심 중앙 플랫폼이 무너질 경우 우리의 평범한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또 각 생태계의 서비스 공급자들이 단지 핵심 플랫폼에 기반을 뒀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연쇄적 파급력을 겪는지 잘 보여줬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술만능주의'에 대한 회의감도 나오더군요. 그러나 이러한 토론은 의미가 없습니다. 왜? 클라우드와 통신 네트워크, 택배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잘 구동되니까. 편리하니까. 모두가 만족하니까. 기회비용을 따졌을 때 '문제가 좀 있으니 믿을 수 없어. 포기하자'는 말을 하는건 미친짓입니다. 러다이트 운동은 역사의 반동이었다는 것. 잘 알아야 합니다.


클라우드와 통신 네트워크, 택배의 속성을 바꿀 가능성을 따져야 합니다. 블록체인 생각이 나는 이유입니다. 탈 중앙화와 완벽한 기록의 플랫폼인 블록체인은 중앙 집중형 플랫폼의 장점을 살리면서, 만일의 사태까지 배제시키는 신의 한 수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많은 블록체인 언론과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를 두고 블록체인의 강점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하는 것도 무리인 것이, 블록체인 생태계는 토큰 이코노미 기반의 소위 인센티브라는 동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을 완벽하게 체화하면서 모든 플랫폼을 탈 중앙화시키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명확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데다 검증도 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결국 탈 중앙화 플랫폼은 최초 보안의 단계에서, 그리고 서서히 대세로 부상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블록체인이라는 특정 패러다임에만 무리하게 묶어둘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탈 중앙화가 가능하고 편리한 부분은 당연히 추진. 그렇지 않다면 배제. 나아가 플랫폼이 탈 중앙화가 됐을 당시 나올 플랫폼의 반발을 무마하는 것과, 토큰 이코노미의 생태계를 키울 수 있는 제2의 전략까지 나와줘야 합니다. 네, 말은 쉽지요. 그러나 오랜 시간과 토론이 필요할겁니다. 그러니까...지금은 침착하게 중앙 집중형 플랫폼의 그림자를 어떻게 걷어낼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먼저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꼭 블록체인일 필요는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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