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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Dec 10. 2018

나는 그 택시기사의 죽음에 책임이 없을까

아마도, 혹은 어쩌면

택시기사 한 명이 10일 오후 국회앞에서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친개처럼 뛰어다니고 관련 정보를 수집했으며, 택시업계는 물론 카카오 이야기도 들어보는 한편 모빌리티 업계 인사들의 취재도 병행했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인데요. 하나는 이렇게 여러 취재원들을 들쑤셔도 어차피 나올 내용은 뻔하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분노. 누군가에게는 조심스러움. 정해져있는 취재만큼 힘 빠지는 것도 없습니다.


두번째 이유가 중요합니다. 취재하는 동안 절 괴롭힌 생각. "나는, IT 기자인 나는, 카풀을 지지하고 건전하게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기원하고 있는 나는 비록 한미하고 소소한 기자지만 그 택시기사의 죽음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을까"


기자는 취재하며 정보를 모아 일차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지만, 기계적인 중립만 추구한다면 그 역시 적폐라고 배웠습니다. 책임을 지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기사의 방향을 보여주며 또 다른 심판을 받거나 받도록 하는 것이 기자라고 배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꽤 오랫동안 모빌리티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생긴 신념이 있었습니다. ICT 만능주의는 배격하면서 모빌리티의 일부인 카풀의 등장에 우리나라 ICT 기업 규제 개혁에 대한 희망이 있다. 카풀이 된다면, 다른 것도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우버와 디디추싱, 소프트뱅크의 미친 행보를 볼 때마다 더욱 확신으로 굳어졌습니다. 시간이 없다. 어떻게든 카풀부터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


택시업계의 이야기에 귀를 닫았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 많이 들으려했다는 것 자부합니다. 청와대 1인시위 현장에도 찾아갔고 몇 번 욕먹을 각오도 하면서 부딪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적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들 중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이들은 어쩌면 적폐일 수 있다는 의심이 소소하게 솟아났다는 점.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세련되지 못한 단어와 용어에 실망했고, 이러한 생각은 확신으로 굳어 갔습니다.


택시기사의 죽음을 두고 나는 그 죽음에 책임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한 이유입니다. 물론 제가 대단한 기자도 아니고, 제가 지금까지 했던 일은 대세의 0.1%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겁니다. 다만 제가 글을 썼던 것과, 그 글들이 어떠했다는 것은 제 스스로가 잘 압니다. 제 글에 대해서는 지금도 떳떳하지만, 문제는 역시 현실일겁니다. 저는 카풀의 방향성을 주장하며, 택시기사들을 최대한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지자체의 어정쩡한 스탠스를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지적과 주장들은 지금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노곤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 앉으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이 죽었다. 나는 어설프게 알고있는 것들을 쏟아내며 그 글 아래에서 신음하고 고민하던 이들의 어려움을 보지 못했거나, 혹은 외면했던 것이 아닐까. '카풀은 택시산업을 궤멸시키지 않는데 왜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러고 있나. 답답하다'는 생각의 섬광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강렬한 죽음의 동력일 수 있지 않았을까. 저는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배 위에서 탭댄스를 추며 유식한척 굴었던, 병신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 단언합니다만. 변하는 것은 없어야 합니다. 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또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카카오 카풀은 달려야하고 카풀 2.0도 달려야 합니다. 택시기사들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원한을 말하는 그들의 마음을 돌려야합니다. 혁명에는 피가 수반된다? 이런 끔찍한 소리는 하고싶지 않습니다. 이왕 돌이킬 수 없으니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건가? 그럴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택시산업의 한계가 찾아온 것은 명확해졌고, 냉정하게 보면 ICT 기술 발전의 도입은 시대의 흐름입니다. 거스르면 거스를수록 고통의 크기는 더욱 커질 뿐입니다.


저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카카오 모빌리티. 100% 지지하지 않습니다. 계속 감시할겁니다. 다만 이번 일로 지나친 늪으로 빠져드는 것은 지양했으면 합니다. 한 택시기사의 죽음은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가십시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가장이거나 가족이었을 사람이 당신들을 원망하며 죽어갔으니까요. 더 성공시키면서, 그놈의 시너지라는 것을 찾으십시요. 모빌리티는 계속되어야 하며,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저는 지옥에 갈 수 있겠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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