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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Jul 19. 2019

네이버와 당근마켓, 카카오와 채널톡

오묘한 충돌의 시대

국내를 대표하는 IC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최근 스타트업과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네이버의 라인이 베트남에서 출시한 겟잇 플랫폼이 한국 스타트업 당근마켓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카피했다는 의혹이 나왔고, 카카오는 플러스 친구의 진화형인 카카오톡채널 줄임말을 톡채널로 했다가 조이코퍼레이션의 채널톡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두 사건은 조금 결이 다릅니다. 네이버와 당근마켓 사례는 심각해보이고...카카오와 조이는 명칭에 대한 문제니 상대적으로 무게가 덜하다고는 생각합니다. 다만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분쟁이라는 큰 틀에서 취재 과정에서 나름의 경험이 생겼기에 기록할 겸 공유해봅니다. 두 현안에 대한 기사 모두 제가 가장 먼저 쓰거나 취재했기 때문에(!) 애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SNS를 통해 논란이 공개되고 이를 후속취재한거라 거창한 단독기사는 아니며 누군가는 기사를 썼을 것이라 큰 의미는 없지만. 걍 그 과정에서 느꼈던 단상을 공유할까 합니다. 기억 박제용이기는 하니 큰 의미는 없습니다요;;ㅎ

네이버와 당근마켓
당근마켓 대표님이 SNS에 네이버 라인의 겟잇과 자사 서비스의 카피 의혹을 제기했을 시간. 저는 태평로 삼성전자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태평하게 기사를 쓰고 점심약속을 마친 후 오후 일정까지 시간이 붕 뜨길래 어디 짱박혀 기사쓸 곳 없나 두리번거리다 웨스틴조선호텔로 갔습니다. 카페가기는 왠지 돈이 아깝고, 삼성전자 돌아가기도 뭣하고, 누굴 만나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호텔 2층 로비에 있는 쇼파에 앉아 노트북좀 두드리려고요. 그때 카피 의혹 게시물을 봤습니다.


당근마켓 컨택 포인트를 몰라서 전직 직원에게 문의를 했고 바로 대표님과 통화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취재를 시작하고 언론에 소개된 후 네이버 라인의 반응을 한 번 보는것이 대표님께 더 유리할 것이라는 감언이설...(알고도 속아주신 대표님 감사합니다.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인터뷰 엄청 하셨던데요?ㅎㅎ)로 짧지만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분쟁 취재는 엄청 민감합니다. 심정적으로는 스타트업에 더 마음이 가지만, 나중에 알고보면 스타트업이 대기업 한 번 긁어보려 술수를 벌이는 일도 많기 때문입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으면서 취재를 엎은것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죄송하지만 당근마켓 취재를 할때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근마켓 대표님이 처음 인터뷰를 고사한 순간 '아 요건 좀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조목조목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대표님의 요지는 겟잇의 유저 인터페이스가 당근마켓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지적이었고, 그 외에는 일단 새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메시지가 명확하더군요. 순서는 이렇습니다. "네이버가 한두번 다른 스타트업을 카피한 것이 아니다" "베트남이면 모를 줄 알았나" "베트남 서비스를 우리가 한다면, 우리가 후발주자가 되는 격 아니냐"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베트남이면 모를 줄 알았냐"는 멘트가 재밌더군요. 기자 입장에서는 다소 자극..적인 리드가 필요하고. 대표님이 던지신것을 넙죽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쩔 도리가 없다"는 메시지도 재미있었습니다. 힘의 역학관계에 따른 진짜 회한이겠지만. 이 메시지가 기자에게 오는 순간 매력적이면서 다소 감성적인 메시지로 활용될 수 있었거든요. 일부러 그러신건지 모르겠지만 메시지는 명확하고, 또 감성적인 부분을 잘 건들었던것 같다는 생각이..이후로는 라인의 입장을 받았고 기사를 써서 내보냈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몇 가지 기억나는 점을 꼽아보자면. 당근마켓은 확실히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구나...라는 생각입니다. 이럴 때 여론전에서는 훨씬 유리해지죠. 당근마켓을 잘 몰라서 지금까지 업계에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최초 플랫폼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이 비상사태에서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대중의 지지와 화제는 순간이고 남는 것은 조작된 기억과 실제적인 행동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이 분쟁을 오랫동안 기억하지 않을겁니다. 많은 일이 생기는 시대니까. 이후로는 마치 흘러간 강물에 바위틈에 낀 고인물처럼 변하고 정형화된 기억뿐이고, 잠잠해지면 진짜 위기가 찾아오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지금 조성되는 우호적인 감정에 일희일비하지말고, 냉정하게 후속조치를 생각해야 한다...여기서 후속조치는 네이버와 뭔가를 할수도 있는 것이지만. 지금의 우호적인 감정을 잘 살리는 방안을 고민하는 겁니다. "우리가 억울해" "네이버는 나빠" "나를 계속 지지해줘"라는 대의명분은 좋지만. 이거 오래가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극적으로 비상한 영웅에 조금의 약점이 생길경우 맹렬히 뜯어먹는걸 좋아하거든요.

네이버의 대처는 다소 아쉽습니다. 일단 겟잇에 대한 사적인 자아비판을 나오는 것도 봤을 때 그리 긍정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이 사태는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선에 머물지 않을까...일단은 카피를 부정하는 선에 멈춰있는데. 그러나 여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이버와 라인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는 별로 통용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네이버의 책임이 있고, 이후에도 대응에는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포식자지만, 외부와 내부의 관점으로 보면 든든한 대들보기도 합니다. 그 공적은 인정하면서...네이버의 스타트업 상생에 대한 진심은 폄하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뭐 사실 네이버가 스타트업과 손을 잡는 것도, 프로젝트 꽃을 이유로 소상공인을 품는 것도 당연히 네이버의 이익을 위해서지만. 이런 행보 자체가 선순환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근마켓 사태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네이버에 대한 과도한 비판에 나서는 것은 간혹이지만 걍 네이버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질투로 보이기도 합니다. 모두 옳지 않지만, 모두 나쁜것도 아닙니다.

카카오와 채널톡
어느 늦은 금요일 저녁. 한통의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모 대표님에게 제 연락처를 받아 연락한다며 제보를 한다고 합니다. 막 퇴근해서 육아전선에 뛰어들 찰라였기에 메시지를 당장 확인못했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전화를 해 봤습니다. 조이의 관계자였는데. 카카오가 플러스 친구를 개편하며 줄임말로 톡채널을 선택했는데, 이는 조이의 채널톡과 유사해 피해가 예상된다는 말입니다.


처음 든 생각은 '이게 헷갈릴 일인가?' 했습니다. 톡채널과 채널톡이 진짜 비슷하다고 생각하나? 그냥 앞뒤 단어가 바뀐건데? 일단 제보자가 알려준 조이 대표님의 SNS를 들어갔는데 다양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심정은 '이거 아리까리한데'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카카오 컴팀에 문의를 했고, 카카오 컴팀은 주말이라 현업팀의 입장을 듣기 어렵다며 일종의 보도유예를 요청했습니다. 아리까리하다고 생각한데다 무슨 북한이 쳐들어 온 것도 아니니, 게다가 조이에서도 카카오와 필요이상 대립을 원하지는 않는것 같아서 일단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스타트업 매체에서는 기사가 하나 나갔더군요.(흡..ㅠ)


생각을 달리한건 월요일이 되어서 였습니다. 카카오 컴팀의 연락을 재촉하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업계 취재를 해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조금 심각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리까리하다고 생각했던 논란은 사실 스타트업에게 매우 중요한, 생존이 달린 이슈고 중요한 현안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후 카카오 컴팀의 연락을 받았고,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입장을 받은 후 기사를 냈습니다.


다만 기사를 내는 순간까지 완벽하게 조이의 주장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기사에 '노이즈 마케팅' 가능성을 살짝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조이의 대표님에게 항의를 받았고, 왜 자기들의 입장은 기사에 반영되지 않았냐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약간 당황했습니다...금요일 제보를 한쪽이 조이였다고...취재의 시작이 그쪽이라고...그렇게 설명을 드리니 노여움이 좀 가신듯 했고. 충실한 입장을 더 반영하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에는 대표님도 제 입장을 잘 고려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당일 카카오와 조이가 미팅을 해서 잘 풀렸다고 합니다. 카카오가 조이의 아이디어를 카피한 것은 아니지만 줄임말로 톡채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제 취재가 뭔가 역할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일이 잘 해결됐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일을 계기로 스타트업의 호소를 더 집중해서 들어야 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몇 가지 단상도 있습니다. 일단 네이버 당근마켓 사례처럼 카카오와 조이의 분쟁은 크리티컬하지 않습니다. 다만 카카오는 한 발 물러날 줄 알았고, 조이도 죽자고 덤벼드는 것은 아니더군요. 요게 참 미묘한데...당근마켓은 네이버의 투자 유치를 거절한 사례가 있고, 네이버의 커버리지에서 지금은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니 강경대응을 선언할 수 있었으며 카카오와 조이는 시작부터 협력관계라 약간의 의견합일이 쉽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단순히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분쟁으로만 모든 현안을 퉁칠 수 없다는. 아주 당연하지만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일들에 대한 생각이 기억에 남습니다.


조이가 죽자고 달려들지 않기도 했으나, 카카오의 행보는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약간 억울한 감정도 있겠지만 그래도 무난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조이도 불필요한 출혈보다는 원만한 합의를 처음부터 원했고, 이를 차분하게 진척시킨 것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음...여튼 최근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뭔가 일이 벌어지면 그 안에서 경험이라도 자산으로 남겨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이런 글을 기록합니다만 쓰고보니 걍 제 이야기만 했네요. 아. 그래도 왠지 대나무숲에 쓰잘데없는 소리한번 지르고 후련한 느낌...ㅎㅎ


네이버는 진심이 있고, 그 진심을 우리가 다각적으로 인정해줄 것은 인정해야 하는거 아닌가. 다만 책임은 지고. 당근마켓은 사랑스러운 플랫폼의 효과를 살리되 후속조치에 잘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카카오는 이런 자세 훌륭하고. 좀 크리티컬한 국면에서도 비슷한 합의정신을 보여주기를. 조이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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