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진홍 Mar 07. 2020

어느 호수마을 이야기

(1)
그 마을은 커다란 호수옆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의 일부는 아주 오래전부터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 살아왔으며, 그렇게 자식을 키우고 삶을 살아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은 간단했습니다. 직접 호수로 들어가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다만 그냥 호수에 들어가지는 않았죠. 미끄러운 물고기의 몸통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게 장갑을 끼고 들어갑니다. 


장갑을 낀 어부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자기가 자기 돈으로 장갑을 사서 물고기를 잡는 경우. 또 다른 하나는 장갑을 살 돈이 없어 장갑을 많이 가지고 있는 길드에 소속되어 일하는 경우. 

마을에서는 장갑어부들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물고기를 잡아서 마을로 가져왔을때 사람들이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안살거면 저리 꺼져' 등의 막말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길드에 소속된 장갑어부들이 심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나중에 알았죠. 장갑어부의 인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길드가 매일 혹독한 물고기 할당량을 채우라 강요하면서 괴롭히기 때문에 장갑어부가 고통스러워하며 더 많은 주민들에게 많은 물고기를 팔려고 오버한다는 것을. 그러나 길드가 마을에서 워낙 잘 나가는 장로 중 하나였기에 사람들은 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2)
마을에 몇 남지않은 장로들 이야기로는...예전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다가 장갑을 끼기 시작했을때. 일부에서 많은 불만이 나왔다고 합니다. 특히 맨손으로 물고기를 유난히 잘 잡던, 팔이 유난히 길었던 일부 맨손어부들이 장갑착용에 극구 반대했다고 합니다. 팔이나 어께가 긴, 선택된 어부들만 물고기를 잡아야 호수의 기본적인 어로질서가 장착될 것이라는 비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헛소리죠. 오늘도 장갑을 끼고 호수에 물고기를 잡으러 나서는 어부들은 가끔 장로들이 해준 예전의 일을 농담처럼 지껄이며 장갑을 끼고 피식피식 웃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입니다. 그날도 어부들이 장갑을 끼고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데, 호수 아래쪽에 평소에 못보던 놈들이 어슬렁거립니다. 자세히 보니 아는 놈들이기는 하네요. 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 최근 마을 집집마다 편지함을 설치해 편지를 전달하며 돈을 벌던 망고길드 녀석들이네요. 이 녀석들이 호수에는 왠일이지?


어부들이 가만히 지켜보니 가관입니다. 녀석들은 분명히 물고기를 잡고 있는데, 잡는 방식이 웃깁니다. 장갑을 낀 어부들이 일렬로 호수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으며 전진하고, 그 뒤에는 커다란 빠께쓰를 든 이들이 따라가며 앞에서 미처 놓친 물고기들을 잡아넣고 있네요. 어. 지금보니 웃기는 것에 멈추지 않네요. 엄청 많이 잡네? 잘 잡네???


어부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감히 우리의 터전을 망치다니. 즉각 현장으로 달려가 멱살을 잡는 한편, 마을에 달려가 장로들과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저 놈들이 호수의 어로질서를 망친다. 저 놈들이 우리를 죽게 만든다' 장갑을 직접 산 어부나, 길드에 속한 어부나 모두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죠. 어부들은 망고길드 앞으로 쳐들어가 고함을 질렀고, 장로회 건물은 물론 망고길드의 사업장에 모두 쳐들어가 깽판을 놨습니다. 심지어 망고길드에 장갑과 빠께쓰를 납품한 공방까지 찾아가 "앞으로 우리들과는 거래하기 싫냐? 죽고싶냐?"고 으름장을 놨고. 장갑어부들의 밤낮없는 소란에 잠을 설친 한 주민이 지나가며 불만을 토로하자 한 장갑어부는 욕설을 하며 그를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망고길드는 적극 설명했습니다. 망고길드의 방식은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물고기를 제공하기 위함이고, 빠께쓰를 들고 따라다니는 방식은 장갑어부의 어로활동을 돕는 방식일 뿐이라 해명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비극도 일어났습니다. 장갑어부 중 몇몇이 망고길드의 방식에 반발하며 마을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마을이 생긴 이래 누군가 마을을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슬퍼하면서도 '과연 그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입 밖에는 못냈죠. 장갑어부들이 무섭고, 그 뒤에 길드가 무섭고, 나아가 누군가 마을을 자발적으로 떠난 것도 사실이니까요.


(3)
장로회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장갑어부들과 망고길드의 화해를 주선했습니다. 그러던 중 망고길드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겠다는 새로운 길드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어..이거 복잡하다. 장로회는 숙고에 들어갑니다. 


장로회가 마을법전을 보니, 호수에서 빠께쓰로 잡은 물고기는 돈받고 팔면 안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전 지옥같은 가뭄때 이후로 10명 이상이 빠께쓰를 들고 호수에 들어간다는 전제로는, 돈받고 물고기를 팔 수 있다고 법전에 적혀 있습니다. 망고길드가 야심만만하게 빠께스 모델을 들고나온 배경이죠.


장로회는 그러나 장갑어부들의 깽판이 너무 심하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결국 빠께쓰로 물고기를 잡아 파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기로 결정합니다. 장갑어부들의 승리. 다만 언제까지나 장갑만 끼고 물고기를 잡는 원시적인 방식을 고수할 수 없다는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일리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로회는 결정을 내립니다. '앞으로 망고길드와, 망고길드와 비슷한 사업을 준비했던 모든 길드는 장갑어부길드에 무조건 협력하라. 장갑을 끼고 물고기를 잡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이를 발전시켜라. 그리고 망고길드 소속 어부들은 모두 장갑어부 길드에도 소속되어야 한다'


장로회의 판단은 말이 협력이지, 사실상 망고길드 같은 곳에게 장갑업무 길드의 존속을 위해 복종하고 그들의 연료가 되어 사라지라는 명령입니다. 


결국 답이 없습니다. 망고길드는 장로회의 판단에 고개를 숙이고 빠께스로 물고기를 잡는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전략을 고안합니다. 어디보자...음...장로회가 장갑어부 길드와 협력해서 새로운 방식을 찾으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탄생한 것이 장갑에 최첨단 끈끈이를 장착하는 겁니다. 그럼 물고기가 더 잘 잡히거든요. 이를 지켜본 주민 일각에서는 아니 x바 이게 뭔 개짓거리야. 옆 마을에서는 배라는 걸 타고 다니면서 물고기를 잡기 시작한다는데 우리는 생각한다는 것이 장갑에 끈끈이냐는 불경스러운 비판이 나오기도 했으나 장로회와 장갑어부 길드는 행복했습니다. 아, 역시 우리는 머리가 참 좋아. 특히 장갑어부 길드는 자부심마저 느껴집니다. 역시 장갑은 중요한 도구야. 장갑이 없으면 곤란하지. 여기에 끈끈이를 부착하는 아이디어는 정말 훌륭해. 크으.


망고길드는 뭣같았지만 일단 해보기로 합니다. 장갑을 끼고 물고기를 잡는 행위를 최대한 살리면서 많은 물고기를 잡는 혁신은..일단 끈끈이가 유일한 답이니까요. 나중에 장갑에 천만볼트 아이언맨 무기를 달아볼까? 아니면... 망고길드는 뭔가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했지만, x바 돌아갈 길도 없고, 이제 노빠꾸입니다.


(4)
장로회의 결단으로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옆마을에는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고있으나 우리 마을에는 여전히 장갑어부들이 망고길드가 제작한 끈끈이를 달고 물고기를 잡습니다. 가끔 옆마을에서 배를 타던 애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오면 어떻하지?라는 불안이 있었으나 뭐 우리에게는 장로회가 있잖아요. 못 들어오게 법으로 막으면 그만.


그러던 어느날. 신박한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낚시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겠다고 나타난 놈들입니다. 망고길드의 창시자인 전설의 창업가, '미스터 독설'이 새롭게 만든 새로운 길드입니다.


미스터 독설의 길드 방식은 흥미롭습니다. 뭣하러 손으로 물고기를 잡냐. 기존 방식인 장갑낀 손에 끈끈이 붙인다고 뭐 달라질 것이 있냐. 지금까지 해오던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낚시대로 물고기를 잡자!


센세이션입니다. 1시간 기준으로 장갑낀 손으로 물고기를 잡으면 5마리, 빠께스를 동원하면 7마리 잡는데 낚시대로 작업하니 30마리를 잡습니다. 오. 오. 대박. 사람들은 열광했고. 다시 장갑어부 길드가 움직이며, 장로회가 법전을 뒤져볼 차례입니다. 신사업에는 규제가 제격이지!


법전을 보아하니...이거 좀 애매합니다. 법전에는 장갑을 낀 어부만 호수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 판매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예외조항이 있네요? 법전에 따르면, 11개 이상의 낚시대를 가지고 호수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 경우 판매를 예외적으로 허용합니다.


미스터 독설의 길드는 기세를 올립니다. 막 잡아요 막. 물고기를. 그러나 망고길드를 비롯해 장갑어부들에게 끈끈이를 제작해 납품하던 이들은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갑니다. 저거 내가 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자 다시 장로회가 나섭니다. 가뜩이나 장갑어부들의 반발도 심해졌고. 결단을 내리죠. 어이 미스터 독설 길드. 니들 물고기 계속 잡고 싶으면 돈을 좀 내야겠다. 장갑어부들 요즘 가뜩이나 힘들고 경쟁도 치열하거든? 은퇴하는 장갑어부들 돈좀 챙겨주고 해야 하니까...니들이 그 돈을 내라. 아. 이건 망고길드도 다 하는거야. 이거 안하면 변사체 된다


장로회의 말에 미스터 독설 길드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싫어. 말도앙대. 우리가 왜? 이때부터 전투가 벌어집니다. 장갑으로 물고기를 잡던 것을 낚시대로 잡는다고 그게 왜 혁신이냐 등등. 멍청한 논쟁들이 시작되죠. 아니 무슨 신발 혁신이 뭔데. 세상을 경천동지할 파격만 혁신인가? 사람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면 그게 혁신이다 이 멍청이들아...


여튼 장로회는 이 독설가의 길드를 그냥 냅둘 생각이 없습니다. 괘씸하기도 하고...그래서 법전을 바꿔버립니다. 아예 독설가의 길드를 퇴출시키는 쪽으로. 그러면서 장갑에 끈끈이를 하루 몇 개 달아야 하는지 정확한 가이드 라인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옆 마을에는 어로탐지기와 낚시대 100개로 무장한 초대형 상선이 활동하는 가운데...그렇게 이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아름다운 결말이지요. 
 



작가의 이전글 판교가 심상치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