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진홍 Apr 03. 2021

CBDC와 메타버스는 악마의 선물일까

세계는 점점 양극화의 시대로 접어드나

2018년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현실 기반의 새로운 세상인 '오아시스'에서 벌어지는 모험을 다룬 작품입니다. 갑갑한 현실에 갇힌 사람들이 가상의 세상인 오아시스에서 본인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이루려는 욕망을 세밀하게 다뤄 상당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레디 플레이어 원>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입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통해 1980년대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또 다른 누군가는 ICT 기술에 갇혀 '우리의 진짜 삶'을 잃어가는 현대사회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 중 하나는 'ICT 기술로 양극화된 삶'으로 봐야 합니다. 숙명에 가까운,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숙제입니다.

CBDC
최근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란 기존의 실물 화폐와 달리 가치가 전자적으로 저장되며 이용자간 자금이체 기능을 통해 지급결제가 이루어지는 화폐를 말합니다. 블록체인 기반의 비트코인 등이 탈 중앙화의 가치 아래 민간에서 발행된다면 CBDC는 중앙 집중형 권력집단인 정부가 발행한다는 점에서 '방식은 같으나 목적은 다르다'고 볼 수 있네요.


중국이 가장 앞서갑니다. 실제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일(현지시간) 왕신 인민은행 연구국장이 브리핑을 통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역외 결제를 시도하며 그 무대는 홍콩이 될 것이라 밝혔다 보도했습니다. 당장 역외 결제를 시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적 완성도만 확인되면 조만간 홍콩에서 CBDC 역외 결제를 단행한다는 설명입니다.


중국이 CBDC 발행에 관심을 두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크게 자신감, 패권경쟁, 정치적 포석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감. 중국은 비록 지금은 후회할 것 같지만 마윈 형님이 개탄했던 관치 금융 시스템 아래 오랫동안 현금거래를 지속하며 신용카드 혁명에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인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핀테크 기업들이 등장하며 QR코드를 시작으로 단숨에 간편결제 시대를 열었죠. 신용카드라는 중간단계가 생략되었으나 다들 거기에 매몰된 사이 ICT 기술의 전략적 강화로 일종의 퀀텀점프를 한 경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자신감이 DBDC로 이어졌다 볼 수 있겠네요.


패권경쟁도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 질서를 도래하는 온택트 시대 결제 생태계에서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믿음. 물론 단기간에 기존 달러 중심의 질서가 무너질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지만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지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니까.


정치적 포석도 중요합니다. 중국은 CBDC를 가동하며 오프라인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했고, 이제는 역외 결제까지 준비합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돈의 흐름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캐시리스 시대가 도래하면 빅브라더의 시대도 도래하는 것처럼, 모든 금융 흐름이 CBDC라는 마법의 주문으로 완전히 중국 당국의 눈에 공개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빅브라더입니다. 중국이 가장 CBDC에 집중하는 이유가 보이네요.


물론 CBDC를 준비하는 다른 나라도 많고, 그들도 각각의 사정이 있습니다. 반드시 자신감, 패권경쟁, 정치적 포석이라는 키워드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스웨덴의 경우 경제내 현금 이용 비중이 하락함에 따라 CBDC를 준비하는 추세고 신흥국의 경우에는 인구가 적고 현금이용이 감소추세인 경우와 더불어 지급결제서비스 등 금융서비스가 미흡한 나라(우루과이, 튀니지 등)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의 발행을 시도하는 장면도 연출됩니다.


다만 CBDC의 큰 흐름이 자신감, 패권경쟁, 정치적 포석이라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특히 여기에서 CBDC가 가지는 정치적 포석이라는 점에 착안해 더 내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CBDC와 메타버스가 만나면
글로벌 경제 위기가 모든 국가를 공포로 몰아넣던 2008년 10월. 정체불명의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이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9쪽의 논문을 웹에 공개합니다.


나카모토 사토시는 논문을 게시하며 중앙집중형을 지향하는 각 국 중앙은행의 탐욕을 비판합니다. 실제로 그는 논문을 통해 "중앙은행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뢰할 수 있어야 하지만, 화폐 통화의 역사는 그 신뢰의 위반으로 가득하다"며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는 큰 손들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비트코인의 근간인 블록체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탐욕을 부려 많은 사람들을 도탄에 빠트렸던 중앙집중형 금융권력에 대한 증오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민간 중심의 탈 중앙화라는 대처방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집중형 권력의 결정체인 CBDC가 탄생하는 순간 아마 사토시는 분노하지 않았을까요. 탈 중앙화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신의 걸작이 오히려 중앙집중형 권력의 수단이 되어버리다니. 그러나 CBDC의 흐름은 중국이 그랬듯 여러가지 의미로 추진될 수 밖에 없으며, 특히 정치적 포석이라는 점에서 더욱 부각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핵폭탄을 만들어 세계전쟁을 끝내려했던 순진한 과학자들이 이후 펼쳐진 끔찍한 냉전에 절망한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상치않은 시대의 또 다른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메타버스.


메타버스는 어떤 세상일까요. 리버럴한 자유의 세상일까요. 모두가 온라인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다양한 인생의 스펙트럼을 즐길 수 있는 수평의 장소일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메타버스는 오히려 현실의 부의 불평등을 온라인으로 끌어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더 좋은 PC, 더 좋은 기기들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아바타에 쏟아부어 메타버스의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메타버스에 구현된 서울시 노른자위 땅이 현실의 돈으로 억대에 팔리거나 인기있는 연예인들의 메타버스 공연에 수 많은 객체들이 환호밖에 할 수 없는 장면이, 저에게는 다소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만약 여기에 블록체인 및 디지털 화폐라는, 메타버스에 딱 맞는 결제 인프라가 CBDC의 형태로 구현된다면 또 지옥이 펼쳐질겁니다. 정치적 포석에 따라 만들어진 리버럴한 탈 중앙화의 상징이 자본주의에 물든 메타버스에서 정부의 '눈'이 번득이는 CBDC로 움직인다면? 오프라인이라면 집안 창고나 야산으로 잠시나마 숨을 수 있겠지만, 메타버스라는 시대의 흐름에서 CBDC와 같은 결제 인프라를 쓰는 온라인에서 우리는 어디 숨을 곳도 없습니다.

기술은 불평등을 고착화시킨다
CBDC가 실패할수도 있고, 메타버스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둘 중 하나만 성공할 수 있겠죠. 그러나 어차피 모든 온라인은 오프라인에서 출발하며 오프라인에서의 '부의 크기'가 온라인을 결정합니다. 이런 세상이 오고있는 가운데 메타버스라는 완성체가 일반화되고 CBDC와 같은 결제가 일상화된다면 우리는 더윽 끔찍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나간 해석이라는 지적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감시한 역사를 너무나 많이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술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중앙권력에게 지배의 편안함을 전제한 것들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특히 최근에는 그 정도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지배의 공고화를 넘어, 부의 양극화로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동등한 출발선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CCTV와 인공지능에 의한 감시까지 말하지 않아도, 온디맨드 플랫폼이 가져온 부의 불평등을 보세요. 공유경제라는 가면을 쓴 온디맨드는 결국 수요와 공급을 플랫폼이 결정해 그 권력을 온전히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우버가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의 불평등이 심했던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한 것이 의미심장한 이유입니다.


셀럽 중심으로 돌아가는 클럽하우스를 보며 셀럽의 마이크로 부활한 트위터를 보며 뭔가 섬찟한 공포를 느끼고, 머스크의 NFT에는 환호하지만 평범한 누군가가 만든 NFT는 아무런 가치를 책정받지 못할 세상을 생각하며 든 많은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현질을 하지 못하면 쪼랩에 머물러야 하는 게임 생각도 나네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가난한 주인공이 기어이 승리를 거머쥐고 현실세계에서의 최강자가 됩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누릴 메타버스, 그리고 탈 중앙화의 가치마저 중앙집중형의 수단으로 수렴되는 세상에서 부의 불평등에 따른 '다른 출발선의 딜레마'가 과연 <레디 플레이어 원>만큼의 짜릿함을 줄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가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