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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Feb 10. 2016

line.co.kr 예전에는 다음카카오였지..

"좀 깊이 파볼껄"

기자로 살면서 항상 주변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뭔가 빠진 것이 없는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그런데 항상 부족하다보니 많은 것을 놓치더군요.


소프트뱅크의 쿠팡 투자가 대표적입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소뱅의 쿠팡 투자 사실을 사전에 꽤 디테일하게 인지했었습니다. 소뱅의 제4이통설 진출을 취재하며 ‘주가를 노리는 모종의 음모’라는 감을 믿고 파다가 우연히 알았습니다. 후배기자에게 취재지시를 내렸죠


하지만 직후 ‘아직 확실한 것은 없고, 민감한 사항이니 조치를 바란다’는 말을 들었어요. 순간 ‘이거 내가 뭔가 거대한 일을 망치고 있나?’와 ‘대형 오보이면 어떻하지?’라는 불안감에 떨었습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결국 기사는 빛을 보지못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사실.(두둥) 후배한테 심하게 미안했고..쪽팔렸고..가슴을 쳤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발표되기전에 알고 있었겠죠. 제 정보가 늦은 것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는 건! 제가 알기로 후배의 기사는 최초이자 단독이었습니다.(아닐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둡니다) 학창시절부터 이어온 새가슴에 쪼다같은 마인드가 어찌나 한탄스럽던지.   

 

어제와 오늘, 설 연휴를 보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변명부터 하자면 제 아들이 수술을 해서 병원에 입원했어요. 다행히 잘 이겨내서 무사히 넘어갔지만 설 연휴에 고향에도 못가고 거의 일주일간 병원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네이버 라인의 도메인 문제가 불거지더군요.  

   

2014년의 세 가지 실수

시간을 거슬러 2014년 12월 3일. 다음과 카카오가 2014년 10월 합병 이후 한동안 기사에 쓸 이미지를 찾으려고 당시 다음카카오 홈피를 자주 들어갔었죠. 새로운 이미지를 온라인 기사에 쓰려면 추상적인 분석의 경우 홈피 캡처를 주로했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무생각없이 다음카카오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다가 네이버 라인의 PC모드 홈페이지에 접속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도메인이 눈에 들어왔어요. ‘line.me/ko/’로 되어 있더라고요?(지금 기준입니다. 당시는 어땠는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확실한 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도메인 형식에 따라 line.co.kr을 써봤어요. 그런데! 다음카카오 홈페이지가 열리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이건 뭐지?’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냥 누군가의 실수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취재를 시작했는데 왜 line.co.kr가 라인이 아닌지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IT 커뮤니티를 뒤졌습니다. 그런데 line.co.kr이 다음카카오 홈페이지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제 첫 번째 실수. 저는 그 시점에서 ‘도메인을 가진 사람이 그냥 장난을 쳤을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사를 썼어요. ‘line(라인) 도메인이 왜 다음카카오로?' 네, 기사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해프닝이라고 했습니다. 취재가 곤란한 상황에서 쉽게 생각한거죠.    


그런데 기사가 나간 후 연락이 왔습니다. 네이버였는지, 누구인지 기억이 잘....하여튼 누군가 전화와서 그러더군요. ‘기사를 봤는데, 단순한 실수다’라고 하더군요. 여기서 제 두 번째 실수, 그때까지 저는 이게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부논의 후 기사를 포털에 송고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전화 온 그 분이 ‘이 기사가 계속 나가면 담당자가 해고될 수 있다’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서 기사는 홈피에만 남겨두기로 했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익명의 취재원으로부터 또 연락을 받았습니다.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더라’는 말. 여기서 제 세 번째 실수, 깊이 파고들었으면 더 재미있는 기사를 쓸 수 있었을텐데!    

정신차리자

기자가 기사를 내리는 일은 정말 드뭅니다. 그런 경험이 거의 없어요. 제가 몸 담고 있는 이코노믹리뷰는 기자의 자율성과 편집권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순수하게 좋은 콘텐츠만 생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몇 안되는 언론사 중 하나라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쿠팡에 이어 저는 네이버 라인 문제에 있어서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너무 쉽게 포기했습니다.


물론 알아요. 제가 세 가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깊이 들어가 기사를 썼어도 어차피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사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도메인에 대한 문제는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었고, 또 그럴만한 일이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깊숙이 파고들었어도 그리 가슴을 칠만한 일도 아닐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내가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라는 걸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와, 또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흥미로운 기억을 공유하는 것과 더불어, 다시는 기자다운 곤조를 잊지 말자는 제 공개적인 천명입니다. 뭔가 ‘꺼리’인거 같은데 소소하고 하찮아서 당연히 기사로는 못쓰고...그냥 브런치에 남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메인 문제

마지막으로 도메인 문제 언급할께요. 결론적으로 네이버는 큰 잘못을 하지 않았습니다. ICANN이라는 곳이 있어요. 제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상적으로 인터넷 주권은 IP와 DNS 서버의 통제권 등을 의미한다. 인터넷의 핵심 인프라인 IP 및 DNS를 가지는 쪽이 새로운 흐름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글로벌 인터넷 공간에서는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IP와 DNS를 통제하는 곳은 어디일까? 미국의 비영리 기구인 ICANN(국제 인터넷 주소자원 관리기관/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다. 한 마디로 이 분야에서 슈퍼파워를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다. 2009년 개방, 즉 '권한을 포기하는' 스탠스를 취하기도 했으나 2011년 신규 도메인 등록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며 현재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대항마도 있다. 현재 인터넷 주권은 ICANN이 가지고 있으나 UN 산하의 ITU(국제전기통신연맹/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시스템을 원하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ICANN의 문제점을 반박하며 이제 ITU 시대로 재편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곳은 중국이나 러이사 등 신흥 ICT 국가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ICANN이 정한 법칙에 따라 도메인 권한이 정해지며, 이는 주파수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주파수 경매를 한다고 통신사가 해당 주파수를 영구적으로 가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도메인도 ICANN으로부터 활용권한을 위임받는 개념이에요. 이 경우 도메인을 확보한 사람은 우선권을 가지고 있으나 도메인을 팔겠다고 제안하거나, 경쟁사로 리다이렉트하는 것은 그 권리를 부정하는 행위로 인식됩니다.     


뭔가...구글 전 직원이었던 산메이 베드와 구글의 훈훈한 도메인 협상이 부러워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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