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의 문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로 전국이 시끄러웠습니다. 그때 저는 말 그대로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스토킹(?)하고 있었는데요.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데,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던 김용철 변호사가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손에는 A4용지 몇 장을 들고 단상에 앉으려던 찰라 허탈한 표정으로 정말 꽤 긴 시간동안 취재진을 응시하더군요. 그 공허한 눈.
비슷한 장면이 또 있습니다. 2007년 11월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BBK 의혹 당시 입국한 김경준씨가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오던 순간이었어요. 저녁무렵으로 기억합니다. 김경준 씨가 탄 차가 정문에서 도착해 그가 내렸는데, 웃고있더라고요! 김경준 씨는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는 장면처럼 양 옆에 건장한 사내들 사이에서 몰려든 취재진을 보며 분명히 웃었습니다. 그런데 눈동자는 공허하더군요. 요상했습니다. 이윽고 그가 취재진 앞에 도착해 '촬영을 위한 포즈'를 마치고 건물로 들어갔아요. 한 30초 정도였나? 몰려든 사진기자 선배들이 중얼거리더군요.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것 같구먼'
언론의 방향성
(이제부터 말하는 것은 철저히 제 사견입니다. 저는 기자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며, IT기자를 대표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대단한 기자도 아니고, 소위 훌륭한 인간도 아닙니다. 적당히 퉁치고 살고 적당히 타협합니다. 심지어 겁도 많아요. 그래서일까요. IT업계 취재를 맡으며 좋다고 느끼는 점은, 최소한 여기는 외압으로 대표되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기자는 정치부 취재 못할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경제부도, 어익후 사회부는 더더욱 못해요. 물론 IT기자도 험난하고 어려운 일이며 0.1%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최소한 기술을 다루는 영역은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다른 분야보다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100%라고는 말 못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자본적인 측면으로 파고들어 오면, IT기자도 마찬가지로 속수무책입니다. 다행히 저는 그런 경험이 없지만(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런 건덕지도 건지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참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훌륭한 기자들이 자신의 소신대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건 믿어도 됩니다. 그러나 알음알음 우리가 듣는 퀴퀴한 소문에도 아주 약간은 진실이 묻어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 언론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책과, 아이디어를 들을 때 마다 묘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뭔가 중요한게 빠졌기 때문이에요. "신문산업이 죽어가고 온라인의 대두로 유통권력을 상실하는 한편, 로봇 저널리즘까지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는 상황에서 언론이 위기에 처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000같은 플랫폼 정책과 +++같은 로드맵을 바탕으로 디지털 퍼스트로 어쩌구 저쩌구"
네, 저도 이런 기사를 씁니다. 하지만 여기서 단 하나. 독립성에만 집중하면 어떨까요? 신문산업이 죽고 유통 주도권을 빼앗겨도 어때요. 독립성은 진정성의 다른 말입니다. 만약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설사 편향된 기사를 쓴다고 해도 큰 비판은 비켜갈 수 있지 않을까요? 스낵 콘텐츠로 가야한다? 카드뉴스? 쿼츠와 같은 대화형? 그냥 진정성이 있으면 될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배경에는 '언론불사론'이 제 머리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거 아니에요. 언론은 사라지지 않을겁니다. 아무리 초연결 시대가 온다고 해도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역사성과 의미를 달아 말해주기 위해 취재하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진정성을 더하는 겁니다. 만사 오케이?
ㅎㅎ 아니죠. 사실 이런 말은 대단히 이상적입니다. 언론도 사업입니다. 그리고 사업에는 돈이 필요하죠. 이렇게 생각하면 뭔가 더 선명해집니다. 맞아요. 독립성, 진정성...특히나 지금의 모바일 환경에서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러니 너희들이 기레기 소리를 듣는 거다' 네 맞아요. 맞는 말입니다. 맞습니다만.....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현실적인 문제와 이상의 문제. 제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 간극을 줄이는 방법!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점은 기술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대단위 자본이 투입되지 않아도 원만하게 시스템이 돌아가는 언론이 등장한다면! 외국에서는 이미 등장하고 있죠. 이겁니다. 여기에서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국민TV 정도가 있겠네요. 오마이뉴스의 10만인 클럽도 비슷한 배경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들어가 경제, 특히 IT미디어들이 더 고민해야할 지점이 있어 보입니다. 안타깝지만 국민TV나 오마이뉴스는 정치적인 판단, 즉 진보성향 매체라는 선입견이 모두에게 박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독립성을 유지하는 언론은 모두 진보매체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이는 역으로 말해 언론이 독립성을 버리고 스스로 종속의 틀로 걸어갔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 부분을 해결하고, 관념을 바꾸는 것을 IT미디어들이 하면 어떨까요? 정치성은 버리고(물론 중요합니다. 정치는 우리생활의 포인트. 다만 여기에서만 걷어내자는 겁니다) 순수하게 가볍고 빠른 기술기반의 플랫폼을 추구하는 것. 능력도 있고 여지도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초연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차용하는 것은 최초 IT미디어들만 할 수 있습니다. 익숙하니까요. 고통분담....쉽게 말할수 없으나 감내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영국 인디펜던트가 오프라인을 버렸다는 기사를 쓰며 더욱 머리에 박혔습니다. 약간 색다른 이유입니다. 뭐냐? 제가 보기에, 아예 태생적 기술 언론사는 미래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자본에 민감한 언론사도 변화에 민감합니다. 인디펜던트는 러시아 재벌 2세가 소유하고 있죠. 언론의 혁신사례 중 하나인 워싱턴포스트는 제프 베조스라는 상인이 가지고 있습니다. 쓰라립니다. 언론의 변화를 이루는 두 축 중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의 종속에서 시작된 '생존의 문제'로만 여겨지다니.
이런 상상을 합니다. IT에 기반을 두고, 정치색을 배재한 상태에서 가볍고 빠른 내적인 생태계를 구축한 언론사가 많아지면 어떨까요? 이렇게 되면 오히려 정치적인 아이템에도 더욱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 경험의 추억도 많이 달라졌으리라 믿습니다. 언론의 변화는 단 하나. 독립성입니다. 어차피 사라지지 않을 사업.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게 독립 미디어인 이코노믹리뷰에 제가 몸담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 수단적인 방법은 IT로 때워봅시다. 단, 이건 메인이 아니에요. 물론 제 의견...어설프고 황당합니다. 하지만 이젠 시간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