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걸리는 것이 있어요"
누군가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숨은 의도를 간파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심오한 작업이죠. 기본적인 통찰력에 대상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며 그 이상의 노림수를 알아야 하니까요. 고려의 서희 장군이 세치 혀로 거란족을 몰아냈던 이유는? 고려에 별 관심이 없었던 거란의 욕구를 간파했기 때문!
최근 페이스북이 검색의 왕좌를 노린다는 기사가 떴습니다.(내가 쓴 콘텐츠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검색 기능이 개판인데 무슨 검색의 왕좌를 노려?) 새로운 검색 엔진을 개발해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올린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하더군요. 기사를 천천히 읽어보니 이런 말도 나옵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콘텐츠 중 비공개는 걸리지 않기 때문에, 효과가 떨어질 것’이다는 말....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그거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요.
검색의 왕 포털의 역사
‘인터넷=포털’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PC방 초창기 손님들이 인터넷을 하기 위해 ‘여기 네이버 깔려 있어요?’라고 말했다죠. 당연히 아닙니다. 포털은 말 그대로 인터넷으로 통하는 관문이에요. 수많은 웹사이트를 키워드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통행료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변종 포털들이 생겨났습니다. ‘뭐하러 떠돌아다녀.. 그냥 우리가 다 보여줄게’ 네이버입니다. 네이버는 해변가에 해수욕장을 만드는 대신 세련된 워터파크를 건설해 짜잔, 우리 앞에 들이밀었어요. 이게 좋을까요? 나쁠까요? 장단점이 있지만 네이버 입장에서는 꿀 빠는 겁니다. 어마어마한 온라인 이용자를 바다에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생태계에 가뒀으니까요.
하지만 역시 포털, 검색의 왕은 구글입니다. 구글은 지금도 매우 간결하죠? 검색을 통해 신세상을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확보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칠게 말하자면 개인정보 장사를 합니다. 이 돈으로 로봇도 만들고 드론도 날리고 인공지능 육성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검색의 왕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에요. 포털은 자신들을 알리고, 효과적으로 어필하고 싶어 하는 웹페이지들을 연결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의 주체가 다수의 객체를 품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일종의 플랫폼 비즈니스를 한 거예요. 그래서 검색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페이스북, 글쎄...
다시 페이스북으로 돌아와서, 페이스북이 검색의 왕이 될 수 있을까요? 포털과 다른 점이 딱! 보이죠? 포털은 하나의 주체가 다수의 객체를 품기 위해 만든 정보들을 연결합니다. 이거 쓸모가 있죠. 어차피 그러려고 했던 거니까요. 일종의 원시적 온디맨드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콘텐츠 방대하죠. 엄청나게 많습니다. 하지만 이 콘텐츠들은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주관적인 정보들로만 꾸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인 웹페이지가 공신력 있는 단체의 정보까지 아우른다면, 페이스북은 이 대목에서 약간 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물론 보완할 수 있죠. 하지만 콘텐츠의 성격이 다릅니다.
코너 모퉁이에 카페가 있다고 상상할까요. 포털은 카페 홈페이지부터 카페에 대한 정보를 담은 주관적인 정보를 잡아냅니다. 페이스북도 할 수 있지요. 다만 페이스북은 ‘3시에 코너 모퉁이 카페에서 만나’라든가 ‘어제 모퉁이 카페 옆에 지나갔지?’와 같은 콘텐츠들이 있을 겁니다. 고도의 검색 기능을 통해 이용자의 욕구를 파악한다고 해도 기본 바탕부터 다르다는 겁니다. 검색 결과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쭉쭉 뽑아낼 수 있을까요?
물론 이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반대의 의견도 충분히 상상해봅니다. 하지만 전 하나의 주체가 다수의 객체에게 알리는 방식인 웹페이지만이 검색의 질을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그 자체의 담백한 정보를 담은 것들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피키캐스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장윤석 대표가 어느 세미나에서 그러더군요. “10대들은 궁금할 때 네이버가 아니라 피키캐스트를 검색한다”고요. 그만큼 엄청나게 인기를 끈다는 말이겠지만 정말 사실일까요? 피키캐스트는 정보를 재미있게 가공하고 일종의 주관도 가미합니다. 이걸 포털의 검색정보와 동일시한다?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페이스북은 뉴스피드 알고리즘을 무자비하게 조정해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을 알려준다고 말하는 플랫폼입니다. 정보 불균형 가능성이 열려있어요. 치명적입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해석될 수 있지요.
야심은 인정한다
물론 페이스북의 야심은 분명합니다. 중국에 대한 끝없는 구애도 그렇고, 인터넷닷오알지나 페이스북 라이트앱을 통해 끊임없이 페이스북=운영체제의 비전을 노리고 있어요. 소통의 SNS를 인터넷 그 자체로 바꾸려는 시도는 가상현실에서도 드러납니다. MWC 2016에서 마크 저커버그는 “가상현실이 미래 소통의 플랫폼”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통’을 가상현실로 대체하고 아예 온라인 세상의 모든 것을 페이스북의 파란색으로 물들인다는 주장입니다. 삼성전자 언팩에서 마크 저커버그가 깜짝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어VR을 쓰고 있어서 그에게 열광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재미있는 풍경이라 많은 패러디도 양산됐는데, 저는 이 장면이 바로 마크 저커버그가 꿈꾸는 소통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가상현실에 집중해라. 페이스북이 모든 걸 보여준다. 지나가는 사람? 뭘 신경써...” 왠지 섬뜩하네요.
하지만 최소한 검색에 대해서는 페이스북이 왕좌를 차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기술 있어요. 지금 페이스북 검색이 개판이라고 해도 기술이 없어 개편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검색 품질을 올리는 것도 방법이겠군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페이스북이 현존하는 방식으로 검색의 왕좌를 노린다면, 아마 이를 악용한 기업들의 횡포만 심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묘한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고... 이걸 또 페이스북이 노려 일종의 캐시카우를???
결론은 하나입니다. 지금 페이스북 콘텐츠로는 검색의 왕좌를 차지하기 어렵습니다. 가상현실이 미래의 소통 플랫폼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고, 모두가 기어VR을 뒤집어쓴다면 모를까. 누구나 자연스럽게 PC방 들어가며 “여기 페이스북 깔려 있어요?”라고 물으면 모를까. 페이스북 인공지능이 내 일정을 알아서 조율해준다면 모를까. 그런데 왠지 그 세상이 빨리 올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은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