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위, 양안, 한국, 방식, 성공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난데없이 동아시아 권력 패러다임의 중심에 섰습니다. 개인적으로 SK텔레콤의 루나, 즉 설현폰의 대항마로 꼽히던 LG유플러스의 Y6, 쯔위폰의 모델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파급력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네요. 역사에 이름을 남길 기세입니다.
[출처= LG유플러스]
처음에는 ICT적 관점에서 이번 쯔위 논란의 핵심을 한국, 중국, 대만의 삼각관계에 투영시켜 그 의미를 더듬어볼 생각이었습니다. 취재의 시작도 바로 여기였습니다. 하지만 화웨이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LG유플러스의 중저가 스마트폰 중심으로만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이번 논란이 너무 복잡하고 광범위하며, 시사하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IT여담에서는 약간 민감한 부분까지 넘나들며 쯔위 논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위키디피아]
키워드 하나. 해협양안(海峽兩岸)
쯔위는 15일 오후 소속사 JYP엔터테인먼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울먹이는 표정으로 글을 읽어가는 모습이 애처롭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은 하나밖에 없으며 '해협양안'이 하나다. 나는 내가 중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라고 말했습니다.
해협양안은 무슨 뜻일까요? '항상 대륙과 대만을 표시하는 어휘'로 정의됩니다. 즉 '해협양안이 하나다'라는 표현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과 대만이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쯔위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대만 국기를 가지고 나왔던 순간과 대비하면 묘한 술회입니다. 즉 자신이 대만 사람이라는 것을 밝혔지만, 이후 중국의 반발에 직면하자 '중국과 대만은 하나며, 난 중국인이다'라고 밝혔다는 뜻입니다.
상황을 그냥 날것 그대로 보면 약간 희한합니다. 대만 사람이라는 것을 밝혔는데 '왜 대만이냐'라고 지적을 하는 중국인들은 뭐고, 또 그걸 가지고 '난 중국인입니다'라는 '사과'를 하는 것일까?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이 지점에서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시간을 돌려 1928년으로 가보죠. 1911년 신해혁명으로 봉건 제국인 청나라가 붕괴하자 중국 곳곳은 강력한 군벌들이 지배하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듭니다. 그 과정에서 서구 열강의 이권다툼에 철저하게 이용되는 등 20년 가까이 혼란상태가 이어지다가 1928년 광동성의 군벌 출신인 국민당의 장제스가 패권을 잡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통일이 아니었습니다. 대륙 각지에는 국민당에 반하는 열강 및 공산당의 반격이 격렬했으니까요.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다음 해 만주괴뢰국을 건국하는가 하면 훗날의 역사를 상기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대만 인근의 장시성 일대에 공산당이 자신들의 공화국을 건설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국민당은 만주까지 넘어온 일제보다 공산당 세력에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합니다. 이후 공산당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3년 동안 9600Km에 달하는 험난한 퇴각에 나서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대장정'입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더욱 익숙하죠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국민당은 공산당과 협력합니다. 이후 국공합작과 난징 대학살 등의 변곡점을 거치며 대륙에는 국민당, 공산당, 일제가 상황에 따라 협력과 투쟁을 반복하며 자웅을 겨루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1945년, 결국 2차 세계대전은 서유럽과 미국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리고 당시 일제 식민지였던 대만은 1945년 8월 연합군에 양도되었고, 당시 중국의 국민당은 국부군을 파견해 대만을 접수합니다.
[출처=위키디피아]
대륙에는 국민당과 공산당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일전만 남았죠. 승부는 1949년 12월 7일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중화민국 정부를 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갈리게 됩니다.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했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시작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후 중국과 대만은 격렬하게 대립합니다.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 채택시까지 '양안'의 관계는 최악이었어요. 하지만 국제적으로 냉전의 시기가 끝나고 미국을 중심으로 패권이 정립되자 중국과 대만도 오래된 이데올로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지난해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만난 장면이 극적인 이유입니다. 당시 두 사람은 70초나 손을 맞잡은 채 악수를 하며 미소를 지어 강한 인상을 남겼죠. '하나의 중국'을 원하는 중국의 뜻은 변함이 없지만, 양안이 함께 '협력'의 분위기를 강하게 뿜어낸 것이 극적입니다. 여기에는 중국과 긴밀하게 협조하기를 원하는 대만 국민당의 의지도 작용했죠. 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9·2 공식(九二共識)의 미래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쯔위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에요. 중국과 대만이 협력의 바람을 타고 나름의 성과를 내기 시작하던 순간, 16일 차이잉원(蔡英文)이 이끄는 민주진보당(민진당)이 국민당을 누르고 정권교체에 성공한 대목입니다.
사실 쯔위 논란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중국이 '친중국' 성향의 국민당과 협력해 서로의 간극을 메우는 사이 대만에서 '반중국'을 주도하던 민진당 정권교체가 이뤄지던 순간. 절묘하게도 대선 직전 벌어진 쯔위 논란은 정치권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양안의 민심을 절묘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앙금은 사라지지 않았다'로 볼 수 있겠네요. 논란이 벌어지자 중국 네티즌들이 쯔위를 공격한 것과, 대만 총통 및 후보자들이 쯔위를 옹호하고 나선 부분은 이러한 현상의 표출점입니다. 친중국 성향의 마잉주 총통 심정이 복잡한 이유겠네요.
결론적으로 쯔위라는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중국과 대만의 반응은, 이후 반중국 성향이 강한 대만의 행보와 맞물리며 묘한 변곡점을 돌 전망입니다. 남중국해 분쟁 및 기타 범 아시아 경제블록 구성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중국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쯔위 논란은 이러한 '양안의 복잡한 셈법'을 가장 날 것 그대로, 하지만 뚜렷하게 보여주는 현상이자 '앞으로 일이 쉽지 않을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증거'입니다.
[출처=위키디피아]
키워드 둘. 한국
이번 논란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 그리고 한국은 1950년 벌어진 한국전쟁의 아픈 기억과 이후 국교 단절 및 수립이라는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또한 묘한 시사점입니다. 역사의 장난이라는 표현도 어울리겠네요.
먼저 한국과 대만의 '민심'은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대만 태권도 선수 양수쥔 씨가 베트남 선수에 9대 0으로 앞섰는데, 마지막 순간 한국계 심판의 판정으로 패배했습니다. 대만에서는 난리가 났죠. 들불처럼 혐한 감정이 들끓었던 것이 극적인 사례입니다. 대만에서는 삼성과 LG의 제품이 불타고 분노한 시민들이 한국인들을 공격하는 극단적인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이 파국의 원인은, 그 근원을 따라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에 있습니다.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까지 한국과 대만은 소위 '혈맹'이었으나, 1991년 한국 정부가 대만과 상의도 없이 중국과 수교했거든요. 당시 대만과 중국은 외교 무대에서 치열한 '내 편 만들기'에 열중이었어요. 그런데 혈맹이라 믿었던 한국 정부가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택하다니. 심지어 명동의 대만 대사관을 중국 대사관으로 바꿔버리니 그 분노는 대단했습니다.
물론 당시 한국 정부의 선택을 막무가내로 비판할 수도 없습니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은 지리적, 경제적 요인을 따졌을 때 반드시 잡아야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외교적인 절차도 매끄럽지 못했고, 방식도 세련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한국과 대만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쯔위 논란이 더욱 이채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출처=유튜브]
키워드 셋. 사과의 방식
자연스럽게 '방식'에 집중하면, 쯔위의 소속사인 JYP도 대만과의 국교 단절 당시 한국 정부와 가혹하게 닮아있습니다. 무엇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볼까요. JYP의 박진영 대표는 별도로 발표한 사과문을 통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한국에 온 쯔위의 부모님을 대신해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회사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쯔위의 모든 중국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적절한 사과일까요?
진심이 담긴 사과라고 믿는다는 전제로, 냉정하게 살피겠습니다. 먼저 사과의 주체를 쯔위에게만 너무 집중시켰습니다. 이렇게 되면 쯔위는 희생양이 되어 분노한 중국 네티즌의 먹이로 전락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중국인'이라고 말한 쯔위가 대만에서도 '아쉬움'을 남기는 것을 고려하면 아쉬운 대목입니다. 시스템과 더불어 중국 시장의 중요성에 바탕을 둔 내외부의 변화를 치밀하게 내보이는 것이 맞습니다. 쯔위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포지셔닝한다면 그것도 나름의 전략이지만, 최소한 이러한 사과문은 사태 진작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쯔위는 아직 미성년자로 정치적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는 잘못의 책임을 쯔위에게만 지우려는 극적인 심정의 발로로 보입니다.
대만과 중국을 저울질하고, 적극적으로 중국을 택하는 스탠스를 노골적으로 보인 대목도 눈길을 끕니다. 시장을 선택한 경제적인 결단이지만, 결과적으로 쯔위와 JYP, 심지어 한국 민간외교의 근간을 부정하는 뉘앙스로 들립니다. 대만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시사하는 발언이 더욱 극적으로 나왔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절차도 매끄럽지 못했고, 방식도 세련되지 못했습니다. 1991년 한국 정부와 소름 끼치게 닮았습니다. 그 뜻과 의지는 당연히 인정될 여지가 있어도, 때로는 보여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키워드 넷,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지난해 중국은 일대일로의 기치를 내걸고 추진 주변국에 인프라 구축 및 무역협정 등을 통래 경제 통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쯔위가 사과문을 발표하고 대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지던 순간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 금융질서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민 중국의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이 개소된 것이 흥미롭습니다. 아시아 · 태평양 지역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구축을 내건 AIIB는 중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경제의 천리지망입니다.
여기서 중국의 정치 및 경제적 야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대국굴기를 일으키고 있다는 뜻이에요. 지난해 양회에서 인터넷 플러스 정책을 화두로 걸고 나선 대목이 극적입니다. 인터넷 플러스는 인터넷 플랫폼과 기존의 모바일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정보통신기술을 제조업, 금융, 교육 등의 전통 산업과 융합해 산업 구조를 바꿈으로써 혁신적인 성장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전통 산업에 인터넷을 접목시켜 발전시키겠다는 국가전략으로 풀이돼요.
그 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로 대표되는 BAT와 화웨이, 샤오미 등 무자비한 ICT 라인업은 중국을 중심으로 삼는 글로벌 경제의 화두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쯔위 논란으로 대표되는 중국과 대만의 '감정대립'은 결국 이러한 일대일로를 천명하고 나선 중국의 '질주'에 대한 주변국의 단편적인 '화답'으로도 이해됩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은, 하나의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출처=픽사베이]
키워드 다섯. 성공 여부
쯔위 논란에는 중국의 야심, 한국의 방식, 대만의 정서가 복합적으로 일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중국의 이러한 꿈은 가능할까요? 현재의 패권국인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 힌트가 담겨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세계적인 문제가 생길 때 사람들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찾아오지 않고 미국을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한 자신감일까요? 자신감은 맞지만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현재의 패권국은 미국이며, 그 미래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중국은 일대일로를 꿈꾸며 스스로를 중심에 둡니다. 여기에서 중국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길을 택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다릅니다. 다양성을 표면적으로 인정하며 논란을 스스로 품어버려요. 누가 강력한 폭발력을, 영향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확보할까요? 상상은 자유지만 미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의 한계, 그리고 일말의 가능성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쯔위 논란에는 중국과 대만, 한국을 넘어 패권국 경쟁이라는 복합적인 현상들이 비빔밥처럼 뒤섞여 있습니다. 역사는 이를 어떻게 기록할까요?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