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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May 06. 2016

"왜 오랫동안 분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불편함

원칙과 약속이 무너지다

가습기 살균제 논란이 거칠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4살짜리 아이가 있는데요,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가습기를 열심히 사용하면서 '살균제를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을 했던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를 들을때마다 온 영혼이 찢겨나가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합니다. 맞아요. 이 감정은 '이 죽일놈들'이라는 분노와, '만약 나에게 벌어진 일이었다면?'이라는 공포에 기반합니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며 피해자들이 옥시 영국 본사에 항의를 하기도 하고, 소위 맞춤형 보고서를 쓴 교수에게 영장이 청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파는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은 마치 경마중계처럼 관련 사안을 집중보도하며 분노를 진열하고 있고,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진열된 분노를 패스트푸드처럼 소비하고 있습니다.


"잊지말고, 분노하고 행동하라"
가습기 피해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분노하고 행동하라"고요. 맞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잊지말고 분노해야 합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삶을 엉망으로 짖밟은 더러운 개는 오함마로 찍어 대가리를 부숴야합니다. 이에 동조하고, 묵인했던 모든 개들의 눈알을 뽑고 혀를 잡아 끊어야 합니다. 사지를 잘라 똥통에 처박고 가장 끔찍한 고통과 죽음을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연장선상일까요. 이번 가습기 피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잊지말아라"고 주문합니다. 두 눈을 뜨겁게 뜨고 이번 사태의 원흉을 반드시 기억해 단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옥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것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제품을 팔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을 단죄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불매운동이니까요.

의미있는 행동입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이고요. 하지만 여기에는 다소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우리가, 일반시민이 '잊지말고 분노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왜일까요? 물론 사안에 대한 공감, 혹은 공명을 통해 자발적인 불매운동이 벌이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시민의 힘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의무일까요?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 이건 의무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잊지말고, 분노하지 않아도' 위법이 아닐 뿐더러 지탄받을 일도 아닙니다. 


여기서 다음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가?' 왜일까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원칙과 약속이 무너진 현재사회에서 당연히 응징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너무 멀쩡히 잘 살고 있습니다. '100'이라는 체벌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1'만 받고 넘어갑니다. 그러자 분노한 대중이 나서는 겁니다. 그들이 불매운동을 하고 저주를 퍼부으며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겁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모든건 시스템의 문제다, 분노도 시스템을 향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남양유업 갑질 등.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사건에 대해 일반시민들은 너무 많은 분노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일각에서는 말합니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믿는 저열한 놈들의 술책에 말려들 것인가?"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상황판단입니다. 물론 기억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이를 바탕으로 실제적인 행동에 매 순간 뛰어들기를 강요하는 것은 사실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 세월호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시민들의 분노로 풀어야 하나요? 왜 남양유업의 말도 않되는 갑질논란을 시민들의 불매운동으로 해결해야 하나요? 이건 '메인'이 아닌 '사이드'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맞아요.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 시스템입니다. 정치부터 썪어 돌아가기 때문에 암세포처럼 번진 관료주의가 팽배해졌고, 이것이 바로 총체적 난국을 만들어낸 원흉입니다.


그냥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냄비근성 운운하며 '분노하고 행동하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건 '사이드'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여론의 담론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썪은 대한민국입니다. 시스템이고, 정치의 문제입니다. 가끔 '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명사들을 자주 만나는데, 다들 쓰레기입니다. 정치는 삶의 공기며, 시스템은 국민이 믿어야 하는 최후의 작동 인프라여야 합니다.


물론 압니다.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고 언론이 제대로 감시한다면 가능한 이상론이죠. 이게 돌아가지 않으니 국민이 분노하고 행동하는 거라는 것을요. 하지만 이러한 거대담론이 핵심이 되어버리면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당장 가습기 문제에 있어 옥시만 타깃이 되는 것을 보세요. 옥시만 있나요? 롯데는? 홈플러스는? 애경은? 아니, sk는? 감정적인 접근은 누군가의 교묘한 의제설정에 놀아날 수 있습니다.


제안합니다. 분노하는 그대여, '다른 사람들이 불매운동 하지 않는다. 이 공감능력 떨어지는 새끼들'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진짜 문제는 정치고 시스템입니다. 그 분노를 오롯이 이곳으로 돌려 냉정하게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분노하고 행동하라'는 주문은 '사이드'에서, 아니 '배경'에서 폭발적인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하자고요. 지나친 이상론이라고요? 모든 혁명은 이상을 바탕으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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