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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May 17. 2016

AOA 지민과 설현을 린치하는 '미친 세상'

"본질을 봅시다"

저만 그런가요. 요즘 아이돌 보면 미드 스파르타쿠스가 연상됩니다. 아니, 로마시대 검투사들이 떠올라요. 환호하는 관중에게 말초적 흥분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단련해 바늘구멍 같은 경쟁률을 뚫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장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상처투성이 얼굴로 사람들의 환호에 휘말리는 그 절묘한 장면.


물론 극단적인 상상입니다. 차이점도 많고요. 그냥 이런 거에요. 아이돌의 열정과 노력에 감탄을 하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행보에 박수를 보내지만 마음 한켠은 쓰라립니다. 어린 나이에 철저한 시스템에 갇혀 상품으로 키워지는 인생. 뭐 본인이 선택했기에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뭔가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때로 이 감정은 'TV에서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이 나와도 좋지만, 기초과학을 위해 영혼을 불태우는 청소년의 도전을 다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기묘하게 연결될 때도 있습니다. 제가 꼰대일까요...하지만 청소년 직업 1순위 직업이 연예인인 상태에서, 아이돌 일변도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은 합니다. 그냥 다양성 측면에서요.


잠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오늘 이야기는 소위 긴또깡 논란, AOA 지민과 설현의 이야기입니다. 아, 얼마나 철저한 기획사의 로드맵에 매몰되어 살았으면 안중근 의사의 얼굴도 모를까!


모 방송에서 아이돌 AOA의 지민과 설현이 퀴즈를 하며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몰랐다고 해 논란입니다. 그를 보고 '긴또깡'으로 말하기도 한 장면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지요.(이쯤되면 노이즈 마케팅?)

후폭풍이 뜨겁습니다. 민족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얼굴도 모르는 무지라니! 가뜩이나 일본과의 역사전쟁을, 아니 현 정부와의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이는 "안중근 의사의 얼굴도 모르는 무지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배경의식을 가지고 있지요.


뭐. 당연한 반응입니다. 맞는 말이에요. 안중근 의사가 단죄한 이토는 조선을 병탄하고 만주를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벌인 자입니다. 일본에서야 영웅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원수가 맞아요. 그를 사살하고 죽음의 순간까지 대사상가이자 만주원정군 총사령관으로 남은 안중근 의사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위인입니다. 반기문 총장 일대기가 아니라 안중근 의사 일대기를 알아야 해요. 독립이 되어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그의 영원한 정신을 반드시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도가 지나친게 문제에요. 집단지성, 혹은 대중적 감정의 배설이 얼마나 위험한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를 모르는 자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격한 감정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이건 또 하나의 파쇼에요.


이렇게 되면 본질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AOA 설현과 지민에 대한 분노만 넘칠 뿐, 혹은 선망하던, 혹은 시기하던, 혹은 화려한 아이돌에 대한 가차없는 폭력만 집중할 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넘어가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설현과 지민이 역사에 젬병이었을 수 있지만, 체계적인 학습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기획사의 커리큘럼에 매몰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열어두는 것이 타당합니다. 결국 분노하기 전, 이러한 가능성에도 집중해 냉정하게 '왜'의 가설을 찾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합니다.


사실 이번 논란에 대한 분노는 복합적이라 생각합니다. 현 정부의 역사인식에 대한 불만과 아이돌에 대한 선망과 불만의 양면성, 여기에 '요즘 젊은 것들은...'이라는 마인드가 덕지덕지 붙어있어요. 하지만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이러한 대단위 현상의 단편적 현상은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풀어야 합니다.


물론 일각에서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는 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법적인 죄는 아니지만 우리역사에 대한 죄는 맞아요.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은 설현과 지민이 져야 합니다. 하지만 딱 이 부분에 대한 책임만 지는 겁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더 이해못하는 이유에요. 학생이라면 선생님한테 혼나겠죠? '이것도 몰라? 죽어라!'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연예인도 공인이라고요? 그래서 공인이기에 가혹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요?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주장은 연예인 좋아하는 우리나라와 막장 인생들이 넘치는 헐리웃에서도 약간 다르게 접근되어야 합니다. 연예인은 공인이라기 보다 그냥 파급력이 무척 큰 일반인이에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면 파급은 상당하지만 그게 우리 사회의 규범을 바꾸는 일은 드물잖아요?


공인의 잣대는 정치인, 관료에 들이댑시다. 위안부 할머니 졸속보상에 나서고 심각한 역사인식을 보여주며, 일제강점기 시절을 미화하는 그들에게요. 친일파 청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한 우리가 '감히 아이돌이(혹은 따위가) 안중근 의사를 몰라? 죽어라!'라고 말하는 것은 약간 애매해요. 큰 그림에 집중해 본질을 봅시다. 분노를 평온하게 유지하며 좀 냉정하게 접근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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