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진홍 Jun 21. 2016

한국형OOO에 대한 어설픈 변명

나눠서 쓰여져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격언처럼 회자되는 말인데,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지나친 국수주의적 발상’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로컬의 대단위 전략을 위해 꼭 필요한 말’이라는 주장이 충돌합니다. 글쎄요. 이견이 있겠지만 이 말은 맞기도, 또 틀리기도 한 말인 것 같습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지난 19일 제22회 서울국제도서전의 '한국문학 세계화 포럼'에서 K-문학, 즉 ‘한국형 문학’ 등의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데보라 스미스는 “문학을 성공 처세술을 다루는 경영서처럼 다루면 곤란”하다며 “국가의 브랜드 가치 등을 높이기 위해 이를 활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전했습니다. 나아가 “문학은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며, 채식주의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 중 하나는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문학과 번역문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동시에 이는 걸핏하면 글로벌 무대의 트렌드를 무리하게 끌어와 ‘한국형’으로 포장하려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만약 글로벌을 지향한다면 무리하게 ‘한국형’으로 포장하지 말고, 우리 나름의 실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정교한 계산아래 전략을 짜야합니다. 글로벌 무대는 ‘한국형’이나 ‘한국’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어 글로벌 무대에 무리하게 올린다고 소고기 묵을 수 있겠습니까? “한국에서 만든 알파고래!”라며 세계인들이 환호합니까?     


물론 무조건 하지 말자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도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야지”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한국형”은 국가 브랜드 제고에 희한하게 천착하는 정부가 주도하는 사례가 많으며, 그러니 될 일도 않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데보라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어요. “창작자들이 자신의 길을 걷고, 정부기관은 이들을 돕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고요. 구글과 애플의 성장을 통해 자생적인 생태계 전략은 대세가 아니라 거의 시대정신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압니다. 실적에 눈 돌아간 일부 공무원들이 그럴 리 없겠죠. 그래도 바로잡아야 하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트렌드를 따라가야지”라는 전제입니다. 이건 타당합니다. 인공지능 붐이 글로벌 무대에서 불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으니 부화뇌동하지 말자”고 말한다면 이 또한 직무유기입니다. 한국형 나와줘야 합니다. 다만 이는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저변 인프라를 확충하며 바닥부터 다져야 합니다. 화려하지 않겠죠. 실적에 눈 돌아간 일부 공무원들이 변수입니다.    


제안합니다. ‘한국형’은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바람이 우리의 상황에 맞고, 매우 필요할 경우 쓰자고요. 한국형 발사체, 한국형 미사일 등은 가능하리라 봅니다. 글로벌 무대의 신기술을 산악지형이 많은 국내사정에 맞춰 개발하거나 변화시키면 그건 좋은 일이죠. 이럴 때는 한국형 단어 씁시다. 선진문물을 우리의 상황에 맞게 내수용으로 쓰는 경우!    


다만 글로벌 무대에서 유행이라서, 우리도 한 발 담궈야겠으니 ‘한국형 OOO'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말하지는 맙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에 약간의 의심을 해보자고요. ‘한국형 OOO’의 긍정적인 쓰임새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남발되는 경향이 보여 걱정됩니다. 세계는 한국형에 관심이 없습니다. 부디, ‘실적 때문에 뭐라도 해보자’는 철저한 내수용 마인드로 ‘세계로 향한다는’ ‘한국형OOO'를 떠들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싸이월드... 뜨거운 녀석과 일촌 맺어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