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유
지난 2015년 '맥스서밋' 행사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담론이 등장했던 가운데, 당시 행사에 등장했던 우버코리아의 대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O2O(Online to Offline)라는 말은 불편하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간다? 사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가는 것도 중요하다"
300% 동의합니다. 사실 모바일 혁명과 함께 등장한 O2O라는 단어는 헛점이 너무 많아요. 온라인 기업이 플랫폼을 역할을 수행하며 온라인의 역량을 오프라인으로 연결하는 것만 존재할까? 기술의 발전으로 무분별하게 등장한 기업들을 모두 O2O 서비스로 묶기에는 너무 추상적입니다. 인도네시아의 고젝처럼 오프라인 기업이 온라인 플랫폼을 차지하며 양쪽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아가 온라인 사업자가 플랫폼 역할을 통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권력을 이동시킨다면, 너무 뻔한 비즈니스 모델만 나오는 것이 아닌가?
2년이 지난 이슈를 지금 갑자기 꺼내보는 이유는, 최근 아마존고의 등장으로 O2O의 개념을 넘어서는 O4O의 개념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방은 공인중개사와 사용자의 오프라인 연결 맞춤상담을 런칭하며 O4O의 개념을 사용하더군요. 여기어때는 호텔 여기어때를 통해 일찍부터 O4O에 집중하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는 이 단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신기한 개념이 등장했다. 박수?
2에서 4로 가면?
O2O 먼저 이야기 하겠습니다. 최근 사정이 나아지기는 했는데 지난해만 봐도 O2O의 개념을 공유경제와 섞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불성설입니다. O2O는 일종의 수단이고, 공유경제는 비즈니스 모델 그 자체이니까요.
그렇다면 O2O 자체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체가 뭘까요? 온라인 사업자가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며 온라인의 강점을 오프라인으로 전이시키는 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배달의민족이 대표적입니다. 모바일 혁명을 통해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릿해지자 이를 '연결'했기 때문입니다. 배달의민족은 배달음식점이 아니죠. 다만 배달음식점과 사용자를 연결합니다. 무엇으로? 앱이라는 플랫폼으로.
시간이 흘러 갤럭시와 아이폰 넘버링이 올라가면서 모바일 혁명은 뜨거운 화두가 되었고, 카카오가 지핀 생활밀착형 서비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었습니다. 동시에 O2O 기업도 많이 늘어났어요. 재미있는 것은 O2O가 공유경제와의 교집합은 별로 없어도 온디맨드와의 교집합은 상당하다는 겁니다.
O2O 기업은 태생적으로 플랫폼 사업을 하면서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했고, 그 과정에서 수요자의 요구를 확실하게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는 온디맨드 서비스에 제격이라는 뜻이에요. 당연히 고객의 만족은 올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후죽순. 정말 많은 O2O 기업들이 탄생했습니다. 배달의민족과 배달통, 요기요를 비롯해 여기어때와 야놀자, 다방과 직방 등등. 이들은 온라인 사업자에서 출발해 플랫폼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온라인의 강점을 오프라인에 뿌렸습니다. 기존 오프라인 플레이어들은 처음에 '이것이 뭐야?'라는 반응이었지만, 여기에는 철저하게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접근한 것도 재미있습니다. 소위 O2O 사업자들은 공급자와의 스킨십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일종의 자산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열풍을 바탕으로 O2O 사업자들은 한 때 스타트업의 동의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간간히 외국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희귀한 존재로 인식되었고, 실로 엄청나게 많은 O2O 기업들이 탄생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자. 그런데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규모의 경제적 측면의 파열음이 벌어집니다. 마침 엄청난 투자금이 몰리는 시기와 맞물리며 O2O 기업들은 소위 쩐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엄청나게 유명한 배우를 기용해 지상파 광고를 공격적으로 전개하거나, 전국의 정류장에 광고를 도배하거나. O2O 기업의 경우 한 때 투자금의 70%가 마케팅 비용에 들어간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집니다. 많아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온라인 기업이 플랫폼을 하며 온라인 권력으로 오프라인을 바꾸는 한편, 그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쩐의 전쟁을 펼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집니다. 어차피 한정된 시장이에요.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간다고 해도 최종 목적지는 오프라인에서 벌어집니다. 즉 배달의민족이 아무리 커져도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왜? 전단지 보고 전화하던 사람들이 앱으로 이동한 것은 말 그대로 시장의 창출이 아닌 '변화'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배달음식업계 자체의 규모가 커진 것은 아니죠.
혹독한 검증의 시간이 왔습니다. 기존 오프라인 플레이어들은 반발하고 소상공인은 아우성입니다. 게다가 마케팅에 엄청난 돈을 투입하다 보니 본원적 경쟁력을 가다듬는 일에 소홀해지기 시작합니다. 투자금은 마르기 시작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기업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대형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도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자연스럽게 O2O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시작됩니다. 업계는 고민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말하던, "O2O가 도대체 뭐였지?" 온라인에서 플랫폼을 통해 오프라인을 바꾼다? 전화거는 행위를 앱으로 바꾼 것? 문제는 경쟁이 치열해지며 고객들은 점점 더 특별한 기능을 요구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내가 전화를 거는 행위를 하지 않고 배달의민족으로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여기어때를 통해 모텔을 예약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라는 것을 증명해봐"라는 요구가 시작됩니다. 특별한 사용자 경험. 그러니까 "내가 왜 O2O 업체의 앱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고차원적인 답입니다. 쿠폰? 재미있어서? 모두 일회성이니까요.
이런 문제에 직면한 O2O 기업들은 고민합니다.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이제 특별한 사용자 경험을 창출해야 합니다. 경쟁도 치열해지고, O2O에 대한 기본적인 회의감도 감지됩니다. 돈줄도 마르고, 답이 없어요.
2015년 맥스서밋에서 나왔던 O2O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바로 이러한 고민에 직면한 사업자들의 뒤늦은 후회 정도로 해석됩니다. 상황이 너무 심각하니까요. 게다가 온라인 사업자가 플랫폼으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간다면. 만약 업의 이해에 정통한 오프라인 사업자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온라인을 공략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예를 들어 백종원 요식사단이 막강한 업의 이해를 바탕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돌격한다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때 아마존고가 등장합니다. 전형적인 O4O 모델이라는 찬사와 함께 화려하게 나타납니다.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바로 나와도 자동으로 계산되는 방식.
O4O는 이미 완성될 수 밖에 없었다
단언합니다. O2O 기업들은 아마존고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미 O4O를 추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온라인 사업자의 지위로 플랫폼을 활용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권력을 이동시키는 순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을 바꾸려는 시도를 벌이는 순간 이미 그것은 O4O입니다.
자세히 보겠습니다. O4O는 온라인 기업의 인사이트를 활용해 오프라인의 사업영역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매출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말입니다. O2O의 개념에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흐르고, 또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흐르는 권력의 방향성보다 하위개념이에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O2O의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방향성 고도화일 뿐입니다. 여기에 매출이라는 구체적인 목적이 연결되고요.
이미 하고 있습니다. 많은 O2O 기업들이 IT 기술을 붙이면서 테크기업으로 발전하면서, 실제 오프라인의 직원을 운용하면서, 오프라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오프라인 생태계를 노리는 순간부터, 오프라인의 고객들을 끌어들이면서 이미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O4O라는 단어 자체가 불편합니다. 물론 O2O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더욱 확실하게 파악하고 제대로 알자는 뜻, 그리고 명확하게 운용하자는 뜻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부터 이미 양쪽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고. 그건 이미 O2O의 개념에 녹아 있었다는 겁니다. 새삼스럽게 O4O의 개념을 말하지 말고 그냥 O2O의 개념으로 넣어서 정리하는 편이 더 좋다는 겁니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말. "그게 뭔 큰 일이라고"...큰 일 아닐 수 있어요. 그냥 딴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O4O라는 단어가 마케팅 용어로 굳어버리는 상태에서 또 하나의 면피성 레토릭이 되는 분위기는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바꾼다면서요. 그거 우리 다 알고 있는것 아닙니까. 만약 이를 매개로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창출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면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오프라인 사업자가 가지고 있는 업의 이해를 온라인으로 효과적으로 뿌리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인정하겠습니다. 그거 아니잖아요. 이거 마케팅 아닙니까. O2O 사업의 돈줄이 마르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나온 마케팅. 기술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바꾸는 것은 O2O의 연장선 아닙니까. 궁극적으로 생태계의 약화를 일으키는 독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통신용어 중 전 LTE를 엄청 싫어합니다. 4G를 말하죠. 왜 싫어하냐. 1G, 2G, 3G를 지나면서 통신기술은 명확한 경계가 있습니다. 전화, 문자, 인터넷이에요. 그런데 4G부터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이 없어요. 통신 및 장비업계는 고민에 빠집니다. '새로운 것이 있어야 있어 보이는데..그래야 그걸 미끼로 돈을 버는데...' 그래서 나온 것이 4G LTE입니다. 달라진 것? 속도에요. LTE라는 단어 자체가 'Long Term Evolution'의 약자입니다. 그러니까 오랜 기간의 진화....말 장난...
물론 초연결 시대 속도 중요하죠. UHD 및 가상 증강현실 구현하려면 초고속 통신망 필요합니다. 그래서 세대를 나눌 정도의 가치판단도 의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고요. LTE 한다면서 말만 번지르르...제대로 했나요? 세계 최초 논쟁만 벌이면서 상품이나 팔라고 했지. 5G가 심히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040도 비슷합니다. 뭔가 구체적인 진화의 구분도 없이 마치 020의 미래발전형처럼 여겨지려는 분위기가 스멀스멀 보입니다. 이럴거면 O2O의 개념을 정리해서 그냥 거기에 넣어도 됩니다. 심지어 O4O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오프라인 매출이라는데...이런 요건에 충족되지도 않으면서, 그냥 오프라인 전시장같은 분위기만 풍기는 곳도 일부 보여 더 걱정입니다.
그래요. O2O든 O4O든 다 중요한 개념이지만, 더욱 건실한 발전을 노린다면 정확한 개념을 세우고 욕심부리지 말자고요. 온라인 사업자가 플랫폼으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권력을 이동시켜 오프라인을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오프라인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테크 기술로 변신할 수 밖에 없는 기업들의 당연한 수순입니다. O2O의 원래 방향성이 넓었고, 거기서 정리하고 넘어가자고요. 040가 불편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