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에세이
2ko. 쌍코피가 나서 흰 수건을 던진다. 결론적으로 설득당했다.
내가 좋아하는 격언이 있다. 죽음을 기억해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다. 메멘토 모리는 옛날 로마시대 때 유래한 라틴어다. 개선장군 옆에서 노예가 이 단어를 크게 외쳤다. 여기에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자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오늘은 승리했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해라.' 본래 겸손해라는 교훈이다.
겸손도 중요하지만, 더 큰 의미가 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소중하고, 악이 있기에 선이 빛이 난다. 죽음이 존재하기에 삶이 오히려 소중하게 다가온다.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가 회생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큰 메시지가 있다. 미라클 모닝의 할 엘로드가 그랬고, ‘백만장자 메신저’의 브렌든 버처드가 그랬다. 어린 나이에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클레어 와인랜드도 그러하다. 이들 모두 삶에서 죽음이 코앞까지 찾아온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 모두 세상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죽음은 강력한 메시지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전언. 언젠간 죽을 것을 알기에, 현재의 순간은 더 소중하다. 죽음을 음미할수록, 삶은 더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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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셔니님의 서평을 읽었다. ‘은모든의 안락’ 죽음이 타인에게 가져오는 의미. 메멘토 모리를 넘어선 색다른 관점이었다. 죽음도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인의 입장에선 죽음은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독거노인이 아닌 이상, 죽음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이 남기는 잔상. 소중한 사람일수록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도, 공허함도 배가 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지는 꽤 됐다. 잊을만하면 할머니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할머니는 굉장히 신실한 불교 신자셨다. ‘옴 마니 반메 홈’은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에 귀의하는 만트라라고 한다. 할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옴 마니 반메 홈’을 암송하셨다. 장난기 다분한 어린 시절에 할머니의 암송을 방해했던 게 생각난다. 할머니는 "옴 마니 반메 홈!" 하신다. 미소 지으시며 만트라로 꾸짖으셨다. 그 시절 할머니의 포근한 냄새, 따뜻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누군가의 죽음은 남은 이들에게 추억 혹은 슬픔이 되기도 한다.
죽음이란 단어는 삶의 ‘끝’을 의미한다. 삶의 끝에서도 관계를 떠날 수 없다. 죽음도 이러할진대, 삶은 어떻겠는가. 관계없는 삶은 존재할 수 없다.
며칠 전, 한 친구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는 상당히 밝았다. 당당히 자신은 사람 보는 눈이 좋다고, 주변에 좋은 사람만 있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말을 들은 순간, 내면의 짓궂은 악마가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좋은 사람을 보는 눈이라고? 그럼 나도 좋은 사람이란 건데? 확실해?’ 그렇다. 이 녀석은 무언가 증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즉시 반대 증거를 댔다. “너는 예전에 특정 사람 때문에 많이 상처 받고 힘들기도 했다면서. 그러니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좋은 건 아니지”. 나는 겉과 속이 같은 편이다. 그렇지만 모순적일 때가 있다. 반박하면서도 설득당하고 싶어 하는 순간. 이때가 그랬다.
“상처를 주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닌 거야?” 복싱으로 치면 어퍼컷을 맞았다. 그렇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지. 나는 상처를 준 사람은 왜 좋은 사람이 아닌지 설파하기 시작했다. 내 말을 다 듣고는 친구가 얘기했다. “나는 상처는 받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1 ko. 정신이 혼미해진다.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 내가 상처 받았던 어린 시절들. 그 시절 속에 내면에 내재한 열등감. 그게 없었다면 상처 받지 않았겠지.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확고했다면, 그냥 농담으로 들렸을 말들도 많았다. “그때 당시엔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었어” 2ko. 쌍코피가 나서 흰 수건을 던진다. 결론적으로 설득당했다. 이 친구 사람 보는 눈 좋구나. 그러니 나도 좋은 사람이다. 증명했다.
이 친구와의 대화에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관계”. 죽음도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럴진대 일상 속의 삶에서 관계를 뺄 수 있을까? 상처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한 사람의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다. 단순하지만 크게 다가온다. 아들러 심리학을 좋아하는 나로서, 관계가 인생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 그저 생각만 했구나. 안 게 아니다. 죽어있는 지식. 허술하게 알고 있었다. 많은 반성이 됐다.
인공지능에서 RNN 이란 개념이 있다. 앞뒤 단어의 문맥을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감성 분석, 새로운 문장도 만든다. 문맥을 더 잘 파악하려면 단 방향 RNN보단, 앞뒤의 문맥을 모두 고려한 양방향 RNN이 더 좋은 선택이다. 뜬금없이 인공지능이 나와 당혹스러울 수 있겠다. 표현하는 데 적절한 예시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 접하는 지식에서 찾을 수밖에. 나는 단방향 네트워크였다.
평소에 던지는 말들. 그 속엔 관계를 고려하지 못한 말들이 많았다. 일방적으로 내뱉고, 상대방의 반응을 그저 보기만 했다. 최근 동료와의 대화도 그랬던 것 같다. 상사 앞에서 그녀에게 무안을 줬고, 그게 상처가 됐을 거다. 다른 친구에게 던진 말도 그렇다. 내 입장에서만 만들어진 말들, 모두 단방향이다. 관계, 양방향은 삶의 핵심이다.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삶에서, 가까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관계’를 생각하고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해본다. 양방향 네트워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