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 에세이
동료 A와 직장 상사 S님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 S가 내게 물었다. '요즘 일은 재밌어? 어때?' 고민했다. 사실을 얘기하는 것도 괜찮지만, 상사에게 재미없단 얘긴 득이 될 게 없다. 그냥 둘러대자. 어떻게 적당히 재밌다고 둘러댈까? 말하려던 찰나, "재미없데요" 옆에서 들리는 동료 A의 목소리. 이게 무슨 일일까. 잔잔하던 마음에 폭풍우가 몰아쳤다.
최근 동료 A에게 일이 재미가 없다고 했다. 같은 팀원으로서 물어보길래 털어놓았던 것. 이게 문제의 시발점이 될 줄이야. 상사 S에게 얘기해도 상관없긴 했다. S는 온화하고 잘 들어주는 분이다. 그런데 내 판단, 내 결정을 거친 말이 아니다. 마음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잘못된 행동이야'. 소신이라 쓰고 화라고 읽는 내면의 무언가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즉각 답이 들려왔다. "S님은 다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해서 한 말이에요."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말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건 저인데, 그 결정을 왜 A씨가 하시죠? 불쾌하네요" A도 순간 죄송하다고 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분위기. 오히려 당황한 건 S님. 분위기를 수습하려 애쓰시는 모습이 보인다. 눈치 없지만 난 음식이 맛있었다. "왜 이렇게 많이 남겨요?" S의 물음에 A가 답했다. "입맛이 없어서요." 뒤늦은 현타. 동료 또한 상사 앞에서 들은 지적질에 기분 나쁠만했다. 알아챈 순간 바로 사과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화가 단단히 났나 보다. 동료에게 어느 정도 풀리면 말 걸어달라고 했다. 오해를 풀고 싶다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마 상사가 동료를 달래줬으리라. A가 말을 걸어왔다. 어떤 거 때문에 말 걸어 달라고 했냐고. "아까 사석에서 따로 말씀드려야 했는데, 욱해서 제 기분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S씨 앞에서 그런 말 들으신 A씨도 기분 나쁘셨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A는 대답했다. 성장씨랑 저랑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 힘들다고. 일하는 방식도 다른 데 이건 바뀔 수 없는 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딱히 솔직히 힘든 게 없었다.
내게 A는 고마운 존재였다. 책임감 투철하고 주도적이고, 함께 일할 때 시너지가 나는 믿을만한 동료. A에게 나는 그렇지 못하다니. 마음이 아팠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게. 얘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안하다고, 나는 A씨랑 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겠냐고. 같이 대화해보자고 했다. 내 말에 A씨가 마음의 문을 여는 게 보였다. 우리는 차근차근 서로의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힘든 점은 아니다. 단지 난 A에게 뭔가 변덕이 있다고 느꼈다. A는 내게 전 날 괜찮다고 얘기하면 난 그걸 그대로 믿었다. 다음날 A는 내게 왜 그랬냐고 말한다.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는 된다. 빠르게 사과를 한다. 하지만 한편에 자리 잡은 생각. '어제 분명 괜찮다고 한 건데 왜 저럴까?'이런 패턴이 몇 번 반복됐다. 언젠간 얘기해야지 했지만,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안 했다. 내가 사과하면 그만이고, 힘들 정도는 아니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니, A는 최근에 나에게 서운한 게 많이 쌓였더랬다. 하나는 약속 시간 문제다. 업무 관련 스케줄에 변동이 발생하면 미리 알려달라고. 그러지 못했을 때 A는 팀원으로서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사건은 이러했다. 퇴근 후 갑자기 발생한 다른 업무. 주말이 끼여 있어 A에게 얘기하기 뭐 했다. 평일이 되고 나서야, 나는 다른 업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A의 차가운 반응. 당황스러웠다. A는 주말에라도 미리 말해주길 원했나 보다. 그녀는 계획이 틀어지거나 차질이 생기는 걸 무척 싫어했다. 사과를 잘하는 나로선, 이해는 됐기에 바로 사과했다. 잘 넘어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얼마 전 우리는 대회 출전 준비로 바빴다. 자료 제출 마감 기한 전이지만, 그전에 내부 피드백을 받기로 했다. 여러모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하는 데까지만 하려고 했다. 마감 기한 전엔 야근을 해야겠지만, 내부 피드백은 내게 그리 중요치 않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난 퇴근하고 내 삶을 살았다. 반면, A는 밤늦게까지 자료를 만들었나 보다. A의 말을 들어보면, 일할 때 뭔가 혼자 외롭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A에겐 내부 피드백에서 받는 비판도 크게 다가온다고, 그래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얘기했다. 물론 나는 마감 기한 전 날 늦게까지 야근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나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런저런 사건에 오해와 갈등이 커져갔다. A에겐 나란 사람이 너무나 다른 존재로 다가왔을 것이다. 마치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미안했다.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게 이해가 됐다. 내가 개인주의가 심했음을 인정한다. 나는 같은 팀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하다가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개인만큼 팀도 중시하기.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보기. 계획 변동 미리 알리기. 서로의 사적인 얘기는 하지 않기. 마지막 규칙은 내가 원하는 바였다. 일과 관련한 사적으로 한 얘기를 회사 사람에게 하지 않기. 서로 지키기로 했다. 나는 A에게 평가해달라고 했다. 연말이 돼서 각 원칙을 얼마나 지켰는지. A 또한 같이 지켜나가자고 했다. 꽤 훈훈하게 마무리한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누군가 나를 포기한단 건 슬픈 일이다. 내 모토인 성장과도 어긋난다. 그 사람의 피드백을 통해 성장할 기회가 닫히기 때문이다. 다른 마음도 있다. 두려움.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릴 때부터 빠르게 사과를 한 것도, 미움받는 게 두려워서가 아닐까 싶다.
친구에게 오늘 일을 털어놨고 위로받길 원했다. 그 과정에, 그 친구가 내 얘기를 제대로 이해 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다가온 서운함은 평소보다 많이 컸던 듯싶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 "내 얘기 제대로 안 듣네" 가시 돋친 말을 했다. 자신의 기분이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가 오늘 보인 모습이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깎고 또 깎는다. 상대방에 맞게, 세상에 맞게. 모난 돌을 깎는 것처럼. 너무 많이 깎아내면 오히려 한쪽 끝이 더 뾰족해질 수 있다. 오늘 친구에게 드러낸 태도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나를 깎으려는 게 잘못된 게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 받고 불편해진다면, 스스로를 다듬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타인의 아픔을 무시한 채로 살아가는 게 잘못이다. 나로 인해 세상이 불행하단 건 참으로 슬픈 일이다.
가다듬지 않은 원석이 너무 뾰족하다면 부드럽게 다듬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나라고 너무 나를 막대하지 말자. 성급하게 너무 깎아내면 다른 쪽에 새파랗게 날이 선다. 나 스스로 나의 훌륭한 조각가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도 나를 깎는다. 성장이란 명목 하에. 세상이란 틀 속에. 깎고 깎은 끝에 남은 나는 행복할까? 마모되어 나라는 정체성은 사라지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모른다. 세상에 무조건 맞추는 게 아니다. 내 생각, 내 선택에 따른, 옳고 좋은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 끝에 무엇이 있든, 내 선택이기에 겸허히 받아들이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