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외모 속 여린 모습을 형상화하는 김원근 조각가 (2부)
오마이뉴스(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38940)에 지면 관계상 다 싣지 못한 김원근 작가의 진심과 순정 이야기를 2부로 나누어 들려드립니다.
작가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예술을 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작가님은 왜 예술을 하시나요?
"후배한테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후배가 작업실을 찾아와서 끊임없이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런 작업을 왜 하냐고 묻더라고요. 그러고는 가버렸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는 도대체 이걸 왜 하지?’라고 자문해 봤습니다. 생각하다 보니 유명해지고 싶고 돈 벌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죠. 세계적인 거장이 돼 명성을 얻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다 좋은데 진짜 이런 미친 짓을 왜 하는 걸까?’라고 자신에게 되물었습니다. 혼자 2~3미터짜리 작품을 용접하고 시멘트를 바르다 보면 무척 힘이 듭니다. 힘들어서 후배들을 불렀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엄청난 양의 시멘트를 직접 다 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들 꽁무니를 빼더군요. 그래서 어금니 꽉 깨물고 혼자 다 합니다.
좋아서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좋아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예술 말고도 좋아하는 일은 있어요. 편하게 놀고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서 일주일 동안 고민했어요. 고민 끝에 제가 찾은 답은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계속 작품 활동을 하는 겁니다. 제가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은 거죠. 사람들한테."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품을 향해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인상에 남는 분 있을까요?
"어느 프랑스 작가가 2020년부터 제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계속 눌렀어요. 아내와 함께 제 전시회에 오셨길래 만나봤더니 콜롬비아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에서 작업 활동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미국의 인플루언서가 제 작품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신 일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게 여전히 참 신기하고 대단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만드는 캐릭터는 눈이 쭉 찢어진 참 동양적인 얼굴인데 서양 사람들이 반응을 보인다는 게 재미있어요.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작품을 보낸 후에 한동안 날개 돋친 듯 작품이 팔려나갔어요. 뉴욕에 내놓은 드로잉하고 다른 작품이 다 완판됐어요. 샌프란시스코, 햄프턴, 마이애미에서도 인기를 끌었어요. 그런 인기가 몇 년 계속되는가 싶더니 전 세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신진작가 10인에 들기도 했어요.
미국의 독립영화감독 중에 제 작품을 집에 전시해 둔 분도 계세요. 그 감독 집을 방문했다가 제 작품을 보고 반해서 컬렉터가 된 분도 있어요. 그 독일인 컬렉터를 처음 만났을 때 왜 제 작품이 좋은지 물었더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끌린다고 답하셨어요. 각 작품에 관한 설명을 굳이 듣지 않아도 다 느껴지고 이해된대요. 짝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동네 골목길을 부러 걷는 남자의 모습이라는 게 다 느껴진대요."
해외 심포지엄도 자주 다니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 심포지엄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자라섬에서 진행되는 바깥 미술이라는 야외 프로젝트에서 만난 어느 작가분의 소개로 러시아 심포지엄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흥미가 생겨서 참여하긴 했는데 영어가 잘 안 돼서 처음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지냈어요. 하지만 심포지엄이다 보니 매일 저녁 작가들이 세 명씩 돌아가면서 브리핑을 하는 일정이 있었어요. 영어의 한계 때문에 정말 간단하게 화면을 띄워놓고 작품들을 소개했는데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셨어요. 당시 한국에서는 무명작가였는데 먼 이국땅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니까 울컥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나 분과 인연이 닿아 터키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도 지금까지 8~9번 정도 참여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인도 심포지엄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도 우따라얀 국제조각 심포지엄 아트 디렉터의 초청으로 1월 8일부터 2월 4일까지 진행되는 국제조각 심포지엄에 참여했어요.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기분으로 인도로 떠났어요. 짧은 기간이지만 인도에서 지내면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인도에는 인도가 없다’라는 거였어요. 신호등도 없고, 건널목도 없었어요. 자동차들이 바쁘게 오가는 차도 위를 사람들이 태연히 걷고, 사람이 보이면 차는 적당히 알아서 멈추는 식이었어요. 그곳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겁니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보면 될까요?
"교차로 일대는 항상 너무도 혼란스러웠습니다. 서로 뒤엉켜서 고막이 터질 듯이 경적을 울리는데 그 속에서 다들 평화롭게 살아가더군요. 그런 무질서가 싫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도 삶이 있고 나름의 질서가 있는데 제가 선입견에 가득 차서 너무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돗자리 한 장을 둘둘 말아 들고 온 길이 집인 양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구걸을 하면서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웃는 가족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과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지 궁금하더군요. 오히려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걸 지키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우리가 더 불쌍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도 없고 동물, 사람 할 것 없이 누구든 길 위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인도를 다녀오고 나니 마음이 참 겸손해졌어요. 인도에서 겸손의 미덕을 배우고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정말 순수하고 착합니다. 인도에 다녀와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열 배쯤은 착해진 기분입니다. 그게 몇 달 못 가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웃음)"
이렇게 직접 작가님을 뵈니 예전 사진에서 뵀을 때보다 눈빛이 선량하고 따뜻해 보이십니다.
"인도에 다녀온 후로 지인들이 눈빛이 착해졌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웃음) 인도에서의 작품 활동도 참으로 만족스러웠지만 인도 방문 후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나니 사는 게 참 별거 아닌데 이토록 소중한 시간을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써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전부터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싶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런데 인도에서 그런 마음을 모두 비우고 온 것 같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인도에서 얼마나 멋진 작품을 만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작품을 일차적으로 마무리해 놓고 왔지만 청동 캐스팅 작업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채색이 돼 있긴 한데 이건 청동이 아닌 플라스틱 위에 채색한 겁니다."
저 같은 일반인들은 대형 조각품을 만드는 과정을 상상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작품이 완성되나요?
"먼저 흙으로 실물 크기의 작품을 만듭니다. 다 만들고 나면 석고 캐스팅 작업을 합니다. 석고 틀을 만든 다음 거기에다가 FRP 수지로 다시 캐스팅 작업을 합니다. 어릴 때 미술 시간에 석고로 손 모양 만드는 작업 하셨던 거 기억나시죠? 그런 방식으로 석고 틀을 만든 다음 단단한 재료인 플라스틱으로 다시 틀을 만듭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플라스틱을 조립해서 완성품을 만듭니다. 마지막 단계는 청동으로 틀을 다시 뜨는 건데 청동 작업은 시간이 좀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그건 내년 겨울에 다시 하기로 했어요. 일단 지금은 플라스틱 틀 만드는 단계까지 해둔 거죠.
그런데, 플라스틱 틀만 따로 세워두면 색깔이 예쁘지 않아요. 내년에 돌아가서 청동 틀을 마무리할 때까지 플라스틱 상태로 전시를 해둬야만 하는데, 그 상태 그대로 완성품처럼 전시를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플라스틱 틀 위에 채색만 해뒀습니다."
작가님이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가진 순정과 진심을 몸소 실천하는 분이 주변에 계시면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지인의 소개로 전주에서 일하시는 형사님을 만났습니다. 혹시 형사님께 누가 될지도 모르니 그냥 박형사님이라고만 해둘게요. 그분을 만나자마자 딱 제 작품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려 하고 마음이 울컥했어요. 왠지 모를 슬픔이 전해졌거든요. 형사님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순탄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셨지만 어린 시절의 고난을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한 밑거름으로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인의 힘이 닿는 범위 내에서 누구든 힘든 사람을 돕기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놓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보통 형사라고 하면 우락부락하고 거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박형사님은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어요. 무엇보다 멋진 건 남을 돕겠다고 생각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몸소 실천하신다는 겁니다."
작가님의 작품관이나 세계관이 바뀌는 계기가 된 걸까요?
"바뀐 건 아닙니다. 저도 원래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원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지만 그저 생각에 그쳤을 뿐이라는 게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저는 그냥 생각만 했고 형사님은 그런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시니까요."
박형사님이 힘든 분들을 직접 도운 사례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실까요?
"몇 년 전에 앞이 보이지 않는 초등학생이 동네 불량배들한테 괴롭힘을 당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대요. 그래서 아이를 따라다니셨대요. 누가 괴롭히는지, 아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확인하시려고요. 신호등도 제대로 못 보고 계단도 쉽게 올라가지 못하는 아이를 때리고 그 애가 가진 돈을 빼앗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셨죠. 그렇게 돕기 시작한 아이가 이제 어른이 돼서 번듯한 직장도 다니고 유튜브도 하고 있대요. 형사님의 도움이 있었기에 아이가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무사히 잘 자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권투선수 시리즈를 만드셨듯이 이 형사분을 캐릭터로 작품을 만들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박형사님은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저는 작가 생활을 하면서 나의 작품, 나의 인생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남을 돕겠다는 마음이 있었을 뿐 실천은 안 했죠. 그런데, 그런 마음을 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하는 남자를 만나니 정신적인 모티브가 생긴 느낌이랄까요. 형사님이 인연 법칙 이야기를 하셨어요. 형사님은 원래 남을 돕고 싶어 했던 사람인데 경찰이라는 직업이 형사님의 철학과 딱 맞는 거죠. 저는 이런 분들은 존경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형사님은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하셨지만 저는 한 분이라도 이런 미담을 더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경찰이나 형사가 당연히 사회의 힘든 일들을 도맡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분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으신다고 합니다. 자살 현장에 다녀와서 트라우마를 겪는 분도 있으시고, 힘든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분도 있대요. 그래서, 형사님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하는 마음에 그분들의 마음과 눈빛을 닮은 그런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직업이 형사인 캐릭터가 아니라 그분들처럼 세상을 향한 순정과 진심이 있는 그런 남자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말로만 ‘사랑해’를 외치는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 시민을 돕는, 그런 실천하는 남자 이야기를 만들 겁니다."
형사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작가님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을 한 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제가 그렇다고 감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진심남이 되고 싶습니다. 항상 진심을 다하는 사람. 진심 아니면 말하지 않는 남자. 진심을 담아 조각하는 남자요."
현재 전시회가 진행 중인 걸로 들었습니다. 간단하게 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메종바카라서울’에서 열리는 ‘Traditions in Harmony II: Baccarat Meets Korean Contemporary Art’라는 전시회에 한국 현대 미술 작가 8인이 참여했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고요. 그곳에 제 작품 <순정남>이 전시돼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보는 많은 분들이 캐릭터의 거친 겉모습보다 그 속에 담긴 뜨거운 순정과 진심을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꽃을 들고 짝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를 형상화한 김원근 작가의 <순정남>은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의 부티크 스토어인 ‘메종바카라서울’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