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술술 흘러간다면 플랜 B라는 말 같은 게 생겨나지도 않았을 거다. 우리 가족의 캐나다살이도 그랬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쉽게 끝나는 일 하나 없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캐나다행은 남편의 주도하에 결정된 것이었지만 남편은 취업 비자를 받지 못했다. 우리 부부와 두 아이가 캐나다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기 위해서는 내가 다급하게 학생 비자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학생 비자를 받기 위해 영어 시험을 치고 대학 합격증도 받아들었지만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다. 비자 발급을 위해 건강검진을 하던 중 예상치 못한 건강 문제가 발견됐다. 도무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한참 만에 간신히 비자를 받아들고서 흥미 유발을 위한 억지스러운 에피소드는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틀에 박힌 듯 뻔한 것이라면 뭐든 싫어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쯤 되니 차라리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예상 가능한 클리셰로 뒤범벅된 스토리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겹겹의 난관을 뚫고 간신히 도착한 오타와는 아름다웠다. 오타와의 한여름은 쾌적 그 자체였다. 온몸을 끈적하게 만드는 한국의 질척한 더위와는 달랐다. 그곳의 하늘은 단 한 톨의 미세먼지도 섞이지 않은 듯 더없이 높고 맑았다. 뜨거운 낮과 시원한 밤이 교차하는 여름이 끝나자 황홀한 단풍이 숲과 거리를 가득 메웠다. 캐나다가 단풍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제대로 보여주는 그림 같은 단풍철이 지나가자 거센 겨울바람이 불어닥쳤다. 이파리가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눈이 쌓이고 온 동네가 하얀 눈으로 뒤덮일 무렵, 전 세계인을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가 터졌다. 겁에 질린 한국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마스크를 사재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캐나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느긋했다. 인구밀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에서는 코로나가 들불처럼 번져도 캐나다는 안전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땅덩어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데 인구는 3,900만 명에 불과한 나라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캐나다의 여유는 순식간에 바닥났다. 낮은 인구밀도는 코로나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났고 세계 각국은 서둘러 국경을 닫아걸었다. 캐나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국경이 폐쇄되자 미대륙을 두루 돌아보겠다는 거창한 꿈은 물거품이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은 있었다. <도깨비>의 배경지였던 퀘벡, <빨간 머리 앤>의 고향인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로키산맥, 밴쿠버 등 캐나다 국경 안에도 갈 곳은 많았다.
다만 내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들고나는 성문을 원천 봉쇄하는 전략은 미리 성안에 숨어든 적군이 없을 때만 효과가 있다. 성문이 닫히기 전에 잠입한 적군이 있으면 뒤늦게 성문을 닫아건들 소용이 없다. 싸워야 할 대상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없는 바이러스라면 더더군다나 그렇다. 국경을 잠그고, 슈퍼마켓 출입 인원을 제한하고, 학교와 놀이터를 폐쇄했지만, 코로나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부는 더욱 강력한 대응 방안을 고민했다. 결국 주 경계를 넘는 것마저 금지됐다. 그렇게 내가 꿈꿀 수 있는 범위가 미대륙에서 캐나다로, 캐나다에서 온타리오로 조금씩 좁혀졌다.
빗장이 열린 순간
아쉬웠다. 광활한 미대륙을 돌아볼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허락된 곳이 많지 않았다. 주 경계 폐쇄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박물관, 영화관, 스키장, 골프장의 문이 차례로 닫혔다. 머지않아 거주 지역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벗어나는 것조차 금지됐다. ‘빨간 눈 괴질’이라는 정체 모를 전염병과의 사투를 그린 소설 <28>이 떠오르는 나날이었다. 봉쇄 이후 무법천지로 변해버린 소설 속 도시 화양과 달리 캐나다의 도시들은 부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찾아가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유리 벽에 둘러싸인 듯 답답했다. 같은 골목을 수없이 도는 데 이골이 날 때쯤 마침내 백신이 개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백신이 보급되자 캐나다는 빈틈없이 꼭꼭 닫아뒀던 빗장을 슬슬 열었다. 국경은 끝끝내 열리지 않았지만 다른 주로 이동하는 것까지는 허락됐다. 남편과 나는 서둘러 여행 계획을 세웠다. 프레리를 가로질러 로키산맥도 보고 캐나다 서쪽 끝에 있는 밴쿠버까지 냅다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토론토와 로키산맥 사이에 있는 몇몇 주는 다른 주에서 온 관광객의 숙박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다시 플랜 B를 세워야 하는 순간이었다.
고심 끝에 세운 플랜 B는 완벽해 보였다. 보기에 그럴듯한 계획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계획은 수도 없이 어그러졌다. 먼저 남편이 휴대전화를 비행기에 두고 내린 탓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가까스로 공항을 빠져나온 다음에는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몇 시간을 내리 굶어야 했다.
시작부터 조마조마했던 여행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캐나다 서부의 산불이 나날이 심각해진다는 뉴스가 매일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지역이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밴쿠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들이 산불의 직격탄을 맞아 인근 도로가 모두 봉쇄됐다. 머리가 띵했다. 법적으로 열린 문이 물리적으로 닫혔다. 정말 장르조차 종잡을 수 없는 개연성 떨어지는 플롯 같았다. 닫힌 문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n번째 플랜 B를 세워서라도 불확실성투성이의 여행을 이어나가는 것뿐이었다. 구글 지도와 날씨 앱을 뒤져가며 찾아낸 새로운 목적지는 프린스 조지였다.
반전의 끝자락에서 찾은 여유
수없는 반전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플랜 B 인생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프린스 조지는 예상치 못한 반전 매력을 뽐냈다. 비와 산불 때문에 어그러진 여행을 바로잡기 위해 지도를 뒤지기 전까지 남편과 나는 프린스 조지라는 도시가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인터넷을 뒤져도 뾰족한 정보가 없었기에 프린스 조지로 향하는 마음이 그리 신나지만은 않았다. 로키산맥을 벗어나니 나무의 생김새도 달라졌다. 내가 유독 좋아하는 길쭉한 침엽수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렸고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활엽수림이 등장했다.
장엄했던 로키산맥과 멀어질수록 평범해지는 풍경에 실망감이 커지려는 찰나 차도를 가로지를 타이밍을 노리며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는 곰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편이 차를 세웠다. 나는 마치 건널목 앞에 서 있는 사람한테 신호를 보내듯 “Go, now you can go!”라고 외치며 곰을 향해 손짓했다. 곰과 눈이 마주쳤다는 건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하염없이 손을 흔들어대자 엄마 곰은 아기 곰 세 마리를 이끌고 주위를 살펴 가며 도로를 건넜다.
<미지와의 조우>보다 더 설렜던 ‘곰과의 조우’는 행복한 반전의 물꼬를 텄다. 한참을 더 달려 도착한 프린스 조지는 한없이 낮았던 기대를 몇 곱절 뛰어넘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일기예보를 보고 날씨가 맑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그곳의 하늘은 그야말로 눈이 시리게 푸르렀다. 어디를 가도 새파란 하늘과 작열하는 태양, 한없이 차분한 공기가 대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에서 햇빛을 받아 부드럽게 반짝이는 윤슬은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한가로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걱정이 뭔지도 모를 것 같은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남편과 나는 마음이 늘 분주했다. 많은 것이 금지된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며 여행에 굶주렸던 우리 부부는 짧은 시간 동안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싶었다. 캐나다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 때문에 우리는 캘거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밥 먹을 새도 없이 공룡박물관으로 냅다 달렸다. 배가 고프고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들의 아우성도 외면한 채 공룡박물관을 돌고, 외계 행성을 옮겨다 놓은 것 같이 지형이 특이한 황무지를 찾아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다르지 않았다. 단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 날 듯 미리 짜둔 일정에 맞춰 빙하 투어 차량에 올라타고, 카누를 젓고, 도장을 깨듯 이름난 호수들을 찾아다니고, 관광포스터에 나올 법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프린스 조지는 우리의 정신없는 여행에 쉼표를 찍어주었다. 규칙과 금지로 얼룩진 답답한 코로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완벽한 여행을 위한 또 다른 규칙을 만들어내며 빈틈없는 일정을 바쁘게 이어나갔다. 반드시 봐야 할 유명한 관광지 목록이 없는 프린스 조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매 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그곳에서 우리 넷은 정해둔 시간 없이 지칠 때까지 물놀이를 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나서는 잔뜩 녹이 슨 옛 철길 위에 올라서서 누가 균형을 잘 잡으며 오래 버티는지 내기도 했다. 우리 가족 넷 중에 제일 운동을 잘하는 남편은 생각보다 균형을 못 잡고 가장 몸치인 나는 보기보다 균형 감각이 좋다는 사실도 프린스 조지에서 알게 됐다.
플랜 B와 반전이 난무했던 2021년 여름의 좌충우돌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계획대로 흘러간 것은 딱히 없었지만 최선의 플랜 B를 찾아내려고 애썼던 모든 순간 덕에 우리의 여행은 더욱 그럴듯해졌다. 뜻밖의 상황과 우연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 여행의 끝에서 나는 빡빡한 일정과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진짜 여행의 묘미를 깨달았다. 그만하면 괜찮은 여행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프레리를 달려 로키산맥을 지나고 다시 밴쿠버에 도착하는 그 날까지 우리의 캐나다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