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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09. 2024

일생일대의 데이트

즐거울 락(樂)

즐거울 락()     

즐거움: 잔뜩 흥이 올라 마음속에서 불꽃놀이가 한판 벌어지는 기분.     


고대 로마의 풍경이 있는 화랑,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Giovanni Paolo Panini)

한 통의 전화

첫눈에만 좋은 사람이 있고 볼수록 더 좋은 사람도 있다. 첫눈에만 좋은 사람과는 대개 진심을 감추는 사이가 되고 볼수록 더 좋은 사람과는 깊은 마음을 나누게 된다. 옆집 사람에서 같은 유치원 학부모로, 또다시 친구로, 지난 12년간 변화무쌍하게 포지션이 바뀌었던 친구는 볼수록 좋은 사람이었다.      


“요즘 왜 그렇게 바빠?” 지난 1월 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며 요란하게 되뇌었던 마음속 다짐들이 점점 희미해지던 무렵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올해는 정말 내 글을 꼭 쓰겠다고 결심했지만, 그 결심을 실천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매년 그랬듯 언젠가는 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희미한 기대만 붙든 채 일상에 쫓겨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녀가 그림을 보며 글 쓰는 모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젠가 꼭 써보리라 다짐한 ‘글’과 오랫동안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 ‘그림’에 대해 함께 논하는 ‘그림 보고 글 쓰는 모임’이라니! 정말이지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모임이었다.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나도 할래!”를 외쳤다. 호기롭게 참여의 뜻을 밝히고 나니 뒤늦게 걱정이 밀려들었다. ‘미술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데 어떻게 그림을 보고 글을 쓰지?’ ‘그림은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 거지?’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대단한 글을 쓸 작정은 아니었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막연하게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그림에 관한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몇 번쯤 미술관에 간다고 갑자기 그림을 보는 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 조금은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와의 미술관 데이트가 시작됐다.      


첫 만남

그녀와의 데이트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12년 전, 우여곡절 끝에 입성한 세종에서 맺은 첫 인연이 바로 그녀였다. 이사 첫날, 모든 불을 끄고 외출하려는데 등 하나가 꺼지지 않았다. 집안의 스위치란 스위치를 다 눌러봤지만, 도무지 불은 꺼질 기미가 없었다. 관리사무소도 전화를 받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옆집 벨을 눌렀다. 인터폰 너머로 ‘옆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그녀는 웃으며 대문을 열었다. 그날의 인사가 우리 인연의 출발점이 됐다.      


그때만 해도 세종은 아파트 건물 몇 채만이 허허벌판 위에 듬성듬성 서 있는 엉성한 도시였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도시에서 그녀는 내게 커다란 위안이 돼주었다. 나의 하루는 온통 육아와 일로 가득했다. 자동차로 15분쯤 떨어진 어린이집에 아이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면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됐다. 아이를 데리러 다시 어린이집으로 가기 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번역을 하며 하루 대부분을 보냈다. 프리랜서 번역가의 숙명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나의 하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종종 우리 집 벨을 눌렀다. 그녀의 손에는 늘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갓 내린 커피가 가득 담긴 하얀 잔을 들고 나타날 때도 있었고 넉넉하게 만들었다며 파스타가 수북이 담긴 접시를 내밀 때도 있었다. 조치원 시장에서 사 왔다며 커다란 만두가 그득 담긴 검은 봉투를 내민 적도 있었다. 벨을 누르는 게 귀찮으니 집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것도, 아예 두 집 사이의 벽을 뚫는 것도 괜찮겠다며 같이 깔깔댄 날도 많았다.     


데이트

그녀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그림을 보고, 글을 쓰며 나는 그녀를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고 있다. 호감은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상대였던 ‘미술’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틈나는 대로 미술관과 갤러리를 찾아다녔다. 상당수의 문화 자원이 수도권에 밀집된 탓에 우리의 주 무대는 세종에서 적어도 두 시간은 달려야 하는 수도권 지역이었다.      


미술관 나들이를 시작할 무렵, 우리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야 했다. 첫 번째 선택지는 아침만 차려놓고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아침 일찍 서울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부족한 마음을 채우려는 것일 뿐 생계가 걸린 일도 아닌데 아이들과 아침 인사도 못 한 채 집을 나서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두 번째 선택지는 아이들을 등교시키자마자 서울로 출발해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더 별로였다. 학교와 방과 후 프로그램, 학원까지 빠듯한 일정을 모두 끝내고 돌아온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기분좋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린 끝에 새로운 답을 찾았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럭저럭 모두가 납득할 만한 방법이었다. 우리가 찾아낸 묘책은 아침만 먹인 후 등교 전에 서둘러 서울로 갔다가 오후 서너 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시간만 잘 맞추면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고도 우리가 원하는 그림 공부를 웬만큼 할 수 있을 터였다. 단,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호사를 누릴 수는 없었다. 신속하게 이동하고 기동성을 높이려면 직접 운전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생일대의 데이트가 시작됐다. 촌각을 다투며 서울로 차를 몰아 전시회를 보고는 딱 단속 카메라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액셀을 밟으며 세종으로 돌아왔다. 일주일에 몇 번씩 세종과 서울을 왕복하는 때도 있었다. 미술관 데이트는 익숙한 친구와의 편안한 관계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언니, 우리 내일 어디 갈 곳 있어?” 한창 미술관 여행이 무르익던 무렵, 그녀가 물었다. “다른 약속 잡기 전에 혹시나 해서 확인하는 거야.” 둘이 함께하는 미술관 여행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정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서로의 시간을 완벽하게 독점하는 그런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그녀의 질문을 들으며 생각했다. 일생일대의 데이트에 빠져든 게 나만은 아니라고. 나의 모든 일정을 상대에게 맞추는 뜨거운 데이트를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12년간의 세종살이를 청산하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야 할 날이 코앞이라 우리의 데이트가 더욱 신났던 건지도 모른다. 끝이 보이는 시간 앞에 선 사람의 마음은 왠지 더 절실하게 마련이니까. 볼수록 좋은 그녀와의 데이트는 미술관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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